▲ 지난 25일 열린우리당 긴급 비상총회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정동영 의장. | ||
가슴에 ‘싹쓸이를 막아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단 참석자들의 얼굴은 ‘침통’ 그 자체였고 회의장 분위기도 비장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 사건 이후 완패 위기에 몰린 여당이 전대미문의 ‘대국민 호소문’ 발표라는 극약처방전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박 대표 피습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5·31 지방선거를 이끈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나 책임론이 제기될 법도 한 분위기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비상총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비상총회 이후 여당의 자중지란 내지는 계파 간 갈등이 폭발할 것이란 일부 언론의 예상도 빗나갔다. 내홍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많은 취재진이 몰렸지만 정작 방송이나 신문 지면에는 호소문과 정 의장의 정치적 복심을 전달하고 분석하는 내용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이처럼 별다른 계파 간 충돌 없이 비상총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정 의장의 치밀한 ‘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정 의장 측은 비상총회 소집 통보 후 소장파 및 반대 계파의 신랄한 비판을 예상하고 당 지도부에게 총회 30분 전인 9시 30분에 ‘티 타임’을 갖자고 정중히 요구했다.
정 의장은 전직 당 의장 출신인 문희상 의원을 포함한 고문단과 최고위원,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티 타임’에서 총회 소집 배경을 설명하고 아직 선거가 끝나지 않은 만큼 지도부가 솔선수범해 마지막날까지 단합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취지로 도움을 청했다는 후문이다.
지도부도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책임론 등을 거론할 경우 자중지란에 빠져 선거 참패는 물론 여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감에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당 지도부 인사들은 총회 때 정 의장을 전혀 공격하지 않았고 계파 수장들의 이런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정 의장계와 라이벌 계파에 속한 소장파들도 별다른 비판없이 총회를 마쳤다.
하지만 5·31 지방선거가 여권의 참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선거 이후에는 정 의장 책임론 등 잠재된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당권과 대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위기에 처한 정 의장이 어떤 비책으로 위기국면을 돌파할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