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율 40%대를 돌파하며 1위를 독주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 이 후보는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말 실수 등을 경계하며 거리 유세도 줄이는 등 막판 몸조심에 나섰다. | ||
물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여전히 기적의 승리를 꿈꾸고 있다.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국민들이 결국 평가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선거일 직전 단일화 깜짝 쇼에도 기대를 건다. 특히 여론조사 응답률이 극히 저조하다는 점을 내세워 ‘말하지 않는 대중’이 결국 정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으로 희망한다. 그럼에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선거를 며칠 남겨두고 3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지지율이 뒤집히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제 17대 대통령 선거는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우세가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기적적인 역전극이 일어날지 그 동인이 되는 파이널 변수들을 짚어보았다.
막판 대 역전극을 꿈꾸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웬만한 전략은 이미 모두 썼다. 그럼에도 선거 상황은 여전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 후보 측이 ‘하늘에 바라는’ 막판 변수는 몇 가지 남아 있다. BBK 사건을 둘러싼 새로운 상황 변화와 그에 따른 부동층의 막판 결집, 그리고 선거 직전 ‘살신성인’ 단일화 깜짝쇼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먼저 정 후보 측은 여전히 BBK 사건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정 후보는 유세에서도 “5일이면 진실의 시한폭탄이 터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 데다 객관성을 상실한 검찰의 BBK 사건 수사에 대한 규탄과 검사 탄핵 정국을 통해 ‘반이명박 전선’이 형성된다면 막판에 국민 여론이 움직일 것이라는 전략이다.
그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16일 BBK 설립 문제와 관련한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돼 막판 선거전에 파문을 일으켰다. 대통합민주신당 측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력한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사검사 탄핵안은 민주당 등의 협조를 받지 못해 오히려 헌정을 유린하는 무차별한 정치공세라는 역풍을 맞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해 집권 여당의 일원으로 여겨지는 검찰총장을 대통합민주신당이 공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론’이 대세인 민심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BBK 사건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대통합민주신당이 네거티브에만 주력한다는 이미지만을 고착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후보 측은 투표일 직전까지 계속 새로운 사실이 터져 국민들도 생각을 달리할 것이라며 최후의 승부수를 거는 모양새다.
정 후보 측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내지 않는 ‘말하지 않는 대중’이 투표일에 대거 민주세력 깃발 아래 결집할 것으로 기대한다. 일종의 부동층 결집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먼저 이번 선거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선거를 열흘 앞두고 부동층이 대략 20~23%였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연구실장은 그 이유를 “이명박 대세론이 선거 초반부터 형성되면서 관망층이나 부동층이 이명박 후보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층은 일단 지지후보를 정했지만 흔들리고 있는 유권자를 말한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40% 대세론을 거역할 만한 막판 대 변수가 없는 이상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응답층이 2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은 여전히 정 후보 측에 희망을 주고 있다.
▲ 지난 6일 명동에서 BBK 수사 결과에 대한 검찰 규탄대회에 참석한 정동영 후보. 범여권은 아직도 후보 단일화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편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측 또한 단일화 제의에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동영이 드롭하면 정동영이 산다. 하지만 우리가 드롭하면 우리도 죽고 저쪽도 별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협상 실패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는 흐름도 문 후보의 ‘완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문 후보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정동영 후보와의 힘겨루기에서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이번 대선에서 독자 완주한다고 하더라도 실탄(자금)만 소비한 채 대선에서 의미 있는 지지율 획득에 실패할 경우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정동영 후보 측은 “이대로 정권을 넘겨주면 문 후보로서는 총선정국에서 설 땅이 없을 것이다. 민주세력 분열 장본인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여 사퇴가능성은 열려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측의 단일화 ‘쟁투’는 이미 그 약발이 다 됐다는 게 중론이다. 부재자투표까지 끝난 판국이어서 현실적으로 단일화가 어려울 뿐더러 단일화를 해도 그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은 대선 막판까지 단일화 노력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각자 범여권의 ‘구심점’임을 부각시켜 총선에 이니셔티브를 잡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범여권의 단일화 작업이 꽉 막혀 있자 일각에서는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당장 두 후보의 지지도를 단순 합산하면 30%를 상회해 이명박 후보를 10%p 차로 추격 가능하다는 ‘단순한’ 계산 때문이다. 여기에 이념성향이 다른 두 후보의 ‘좌우 합작’ 단일화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선 “아무리 급해도 기름에 물을 섞는다고 자동차가 가겠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반드시 불가능하다고만 할 수 없다며 결론을 유보한다.
여기에 대세론을 누르기 위해 선거 막판 터질 마타도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에 대해 “신당이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없다고 보고 흑색선전, 마타도어 등 구태를 또다시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런 ‘잔수’는 이미 BBK라는 큰 변수를 거치면서 효용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측면이 있다.
이명박 후보 측은 막판 몸조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세 도중 말실수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중대한 실수를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다. 가두 유세를 가급적 줄이고 민생 현장 방문이나 정책 발표 중심으로 막판 선거운동 방식을 조정한 것도 ‘관리 모드’로 레이스를 마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대선은 지난 12월 5일 검찰의 BBK 발표로 사실상 끝났다는 게 한나라당 측의 중론이다. 그러나 단 한시간이라도 있다면 아직 시간은 있다고 비이명박 측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정치 분석가들은 그 너머를 보고 있는 듯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