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장의 장녀는 현재 KBS 국악관현악단에서 활동중인 이슬기 씨(25). 국립국악고·서울대 국악과를 거쳐 서울대 대학원에서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는 이 씨는 지난 3월 재즈가수 곽윤찬 씨와 함께 앨범 <인 더 그린카페>를 발표했다.
최근 ‘퓨전 국악’이 인기를 끌면서 해금 등의 악기를 이용한 크로스오버 음반은 여러 차례 발표된 적이 있지만 가야금 음반은 아직까지 흔치않다. 이 씨가 발표한 음반은 가야금 앙상블이 아니라 25현 가야금을 이용해 처음으로 도전한 크로스오버 음반이다. 이 씨는 음반 발매를 기념해 지난 4월 15일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문제는 이 씨의 음반을 신한은행이 대량 구매했다는 점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신한은행은 음반 제작사인 신나라 레코드 측으로부터 이 씨의 음반 2만 장을 일괄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음반의 시중 가격은 1만 원. 대량 구매할 경우 특판가(시중가의 50%)가 적용된다는 게 신나라 측의 설명이다. 특판가를 적용했더라도 신한은행은 1억 원이라는 거액을 이 씨의 음반 구매에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측은 “지난 4월 1일 공식 출범한 신한-조흥 통합은행 발족식 이벤트 행사의 하나로 VIP 고객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음반을 구매했다”며 “이러한 마케팅 행사는 우리 은행뿐 아니라 다른 시중은행들도 가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물로 돌리기에는 가야금 음반은 다소 생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은행 측은 “고전음악과 퓨전음악이 접목된 <인 더 그린카페> 음반은 전통을 중시하는 조흥은행의 기업문화와 도전정신과 주인정신을 핵심으로 하는 ‘신한정신’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어 통합은행 출범 컨셉트에 맞아 떨어져 선택한 것”이라고 답했다.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는 “전혀 사실 무근이다. 구매 담당자는 이 씨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정원 측은 2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 씨의 음반 발표와 은행측의 음반 대량 구매 경위 및 통로 등은 사적인 문제로 국정원이 간여할 바가 아니다”며 “다만 이 씨의 모친이 유명한 국악인이고 이 씨 또한 가야금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어 은행 측이 음반 구매를 결정한 게 아니겠냐”고 답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음반 시장에서 비주류로 분류되고 있는 가야금 음반을 2만 장이나 구입한 것은 왠지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신나라 측에 확인한 결과 이 씨의 음반이 시중에서 팔려나간 것은 1000장(7월21일 기준)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야금 분야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이 씨 개인의 능력과 상품성보다 최근 가야금 인간문화재가 된 어머니(문재숙)의 후광이나 고위 공직자인 아버지의 영향력이 ‘2만 장 대량 구매’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