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국회에서 ‘이명박 특검법’이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통과 되었다. 사진은 분주한 대통합신당 의원들(위)과 씁쓸한표정을 짓는 한나라당 의원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자를 겨냥한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을 놓고 정치권과 보수·진보 세력이 또다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은 그 여세를 몰아 다음날(20일)부터 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고 보수 변호사 단체는 특검법 폐지 내지는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전날 청와대가 특검법 거부권 행사를 사실상 거절한 것과 관련해 “다시 검토해 보기를 촉구한다”며 “선입견을 갖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통과됐는가 하는 경위와 위헌적 요소가 없느냐를 차분하게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신당과 민노당 등 정치권은 “당선은 당선이고 법적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청와대도 당초 계획대로 특검법 공포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오충일 신당 대표는 한나라당의 거부권 행사 요구에 대해 “현재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도 많은데 이런 것을 그냥 안고 가면 대통령으로서 통치가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민노당 황선 부대변인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된 것과 의혹규명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전제한 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국민의 요구에 따라 의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특검을 당선됐으니 유야무야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권위적인 발상”이라고 비꼬았다. 또 시민사회 진영은 21일 성명을 통해 “선거 결과가 곧 BBK 의혹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는 만큼 이명박 당선자는 특검에 협조하고 결과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대선 이후 국민의 압도적인 선택을 BBK 사건에 대한 면죄부로 연결지으며 특검을 무산시키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분석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검 무력화를 위해 범여권과 전면전을 치를 수도 없는 입장이다. BBK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압승을 이유로 파상공세를 펼칠 경우 자칫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검 강행을 주장하고 있는 범여권도 내심 후유증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다. BBK 사건에 대한 전방위 폭격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과반수 정도가 MB를 지지했다는 사실과 특검정국이 현실화 단계로 접어들 경우 인수위와 내각 구성 등 국정운영을 준비해야 할 당선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이 강행된다 해도 검찰 수사 발표와 다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부담이다. 만일 특검이 검찰의 수사결과를 뒤엎는 결과를 내놓을 경우 범여권은 MB의 정통성을 문제 삼으며 공세 수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여기에 MB를 기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국은 예측불허의 극심한 공황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이에 반해 특검이 검찰과 별반 차이 없는 수사결과를 발표할 경우 총선을 코 앞에 두고 범여권은 또다시 극심한 분열상과 함께 유권자들의 표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특검을 피하고자 하는 한나라당이나 특검을 위기 타개용 내지는 총선 정국에 활용하고자 하는 범여권이나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고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특검이 양 측 모두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당한 선에서 대타협 내지는 정치적 빅딜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즉 진실 공방전을 떠나 MB가 먼저 BBK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대국민 사과 등을 통해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드러난 민심과 원활한 국정 인수인계를 명분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논리다.
지난 21일 MB는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노 대통령과의 빠른 시일 내에 회동을 갖기로 하면서 “전임자가 존중받는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할 것은 새로 시작하는 좋은 전통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덕담을 건넨 것도 대타협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