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한나라당 인사들과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당선자의 인사 첫 작품은 12월 26일 경 발표될 인수위원장 자리다. 이어 25명 내외의 인수위원이 선정되면 이명박 정부의 방향타를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년 초쯤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요직을 우선 발표하게 된다. 곧 이어 내각 인선도 마무리해야 한다. 행정부와 함께 당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내년 4·9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 이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5년 정권 명운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초기 인사의 걸개를 정리해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람 쓰는 것에 대해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다. 일각에선 “이 당선자는 인사엔 불도저가 아니라 거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인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얘기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 캠프를 꾸릴 때도 실무 초안이 만들어진 뒤 두 달 만에 인선안을 발표한 바 있다. 대선 후보가 된 이후에도 후보 비서실장과 사무총장 등 핵심요직을 발표한 뒤 필요한 후속 인사를 하는 데 무려 23일이나 걸렸다.
그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이 후보가 중요한 인사일수록 꼬치꼬치 따지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편이다. 시간은 걸려도 신중히 듣고 분명한 답을 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일단 사람을 뽑고 나면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견제를 해도 웬만해선 지켜보는 편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 인수위 구성은 말 그대로 시간이 많지 않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들은 보통 일주일에서 최대 2주일 만에 인수위 구성을 마무리지었다. 이 당선자의 기존 인사 방식대로라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당선자가 대선 전에 이미 비선 라인으로부터 인수위, 조각 등과 관련해 몇 차례 보고를 받으며 인사작업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에는 정두언 선대위 전략팀장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한나라당과 관가 주변에서는 인수위 참여를 두고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때 실무형 학자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인수위에서 활동한 25명(위원장 제외) 중 6명이 장관직을, 11명이 청와대 중요 직책을 맡았다는 점을 볼 때 인수위 로비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인수위에서 짰던 큰 틀이 각 부처에 이어지면서 5년 내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이명박 당선자로서도 인수위 인선이 첫 인사라는 점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먼저 그는 당선자 첫 기자회견에서 “가능하면 정치인은 배제하고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가벼운 실무적 인수위를 꾸리겠다”며 큰 틀의 인수위 구성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인수위 규모는 기존 인수위보다 3분의 1가량 축소된 100명 내외로 꾸려질 전망이며 기획과 정무 분과를 비롯해 총 7~8개 분과로 구성될 예정이다.
▲ 이재오 전 최고위원(오른쪽)의 공천심사위원장 컴백설이 돌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심기도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 ||
그동안 흘러나온 인수위원장의 인선 기준은 “경제마인드를 갖추고 있고 관료경험이 있는 비 정치인 가운데 발탁한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일각에서는 “정치형과 실무형이 각각 단점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이면서 정치인 경력도 있는 절충형 인사가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다”라는 말도 나왔다.
아무튼 이 당선자는 우선적으로 ‘비정치인’을 인수위원장으로 고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나경원 대변인은 22일 이에 대해 “인수위원장이 누가 될지는 당선자 이외에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당선자께서 (현역 정치인 이름이 거론된) 기사를 읽어보면서 ‘정치인은 아니라는데 왜 이렇게 하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해 현역 정치인 출신 인수위원장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만 당 장악력 등을 고려해 인수위 부위원장은 정치인이 기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여러 가지 기준이 오가며 인선작업 초반에는 당선자의 대학 후배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과 풍부한 국제감각을 지니고 있는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인수위원장 자리에 한발 가까이 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후보군이 난립하는 과정에서 CEO 마인드로 대학 개혁을 이끈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영원한’ 대권 후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전경련 부회장 출신의 손병두 서강대 총장 등이 인선 작업 막판에 급부상하기도 했다.
정치인 중에서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희태 전 부의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당선자측에서는 “대통령 당선자는 새 정부의 참신함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신선한 인물을 원하는데 자꾸 추측성 보도가 나와 조금 언짢아하고 있다”라며 첫 인선 작업의 어려움을 전했다.
이 당선자는 인수위 구성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국무총리 인사를 포함한 조각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취임식인 2월 25일에 앞서 내각 구성도 끝낼 방침이다. 이에 따라 1월 말이나 2월 초께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 윤곽이 확정될 전망이다. 조각의 큰 틀은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하고 ‘일하는 사람들’로 내각을 채울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 야당 등으로부터 허니문 기간을 보장받는 6개월여 동안 부담 없이 이명박 정부의 큰 틀을 짤 수 있기 때문에 실무능력을 검증 받은 전문가 그룹이 내각에 대거 포진할 것으로 알려진다.
먼저 국무총리 후보 1순위는 앞서 살펴본 인수위원장 후보들 가운데 나올 가능성이 있다. 역대 인수위에서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배출된 점을 감안하면 논리적 근거가 있다. 여기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이 당선자의 국정운영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총리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 당선자 측에서 총리 자리 제의를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선 전 입당한 정몽준 의원도 총리감으로 알려지는데, 본인은 총리직보다는 당에 착근해 차기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정보계통 일각에서는 고려대 인맥에서 밀고 있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고려대 법대 출신·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총리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명박 정부 조각의 핵심은 바로 경제부처 관련으로 인사의 백미로 꼽힐 전망이다. 이 당선자가 줄곧 경제대통령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 자리는 향후의 정책 기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황금 요직으로 분류된다. 경제부총리의 경우 현직 관료, 재무부 출신 의원, 실무에 밝은 경제학자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 강만수 전 재경부차관,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윤진식 전 장관이 선두주자로 분류된다. 그는 이 당선자의 고려대 경영학과 직속 후배다. 참여정부 초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뒤 서울산업대 총장으로 재직하다 이 당선자의 부름을 받고 곧바로 총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 당선자는 그를 경제, 특히 금융 부문에 밝아 경제난을 헤쳐나갈 인물로서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이 당선자가 경제기획원 출신보다 실무를 잘 알고 위기대처능력이 있는 재무부 출신을 좀더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경제 분야와 관련해서는 이 당선자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번 대선의 정책 개발 실무 책임자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청와대 경제수석 1순위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평가다. 아니면 경제부처 장관직 발탁 가능성도 있다.
국무총리와 조각 인선이 대충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내년 4월 총선을 대비한 공천심사위원회도 구성해야 한다. 이 당선자는 차기 국정 운영의 핵심으로 국회를 꼽고 있다. 최근 이 당선자 측에서 당정분리는 여당에는 맞지 않다며 대통령이 당의 공천에도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의 기존 당헌 당규와 배치되는 것으로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 세력과 치열한 당내 갈등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이 당선자가 대선 기간 내내 “여의도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지 18대 총선 공천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점에서 공천심사위원장부터 이 당선자의 ‘복심’을 심어 놓고 창당 이래 최대의 개혁 공천을 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친박그룹과의 갈등 끝에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 이재오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컴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 의원이 최고위원직에 물러날 때 친박그룹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내년 4월 총선의 공천심사위원장 자리를 보장받고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개혁공천은 경제 살리기와 함께 정치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것이란 게 이 당선자 측의 대체적 분위기다. 이 당선자 측근들은 과거처럼 정치적 셈법에 의한 공천이 재연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계파를 중심으로 한 공천 갈라먹기보다는 철저히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일할 사람을 공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명박계나 박근혜계를 갖고 공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전형적인 여의도 정치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친박과 친이의 구분 없이 능력 중심으로 하겠다는 이 당선자 측의 주장은 일종의 ‘립 서비스’로 해석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가 자신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해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제부터 박 전 대표도 정몽준 의원 등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에 접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의 세력을 배려해주는 공천을 한다기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 친박그룹 고사작전에 나설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