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불리며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온 방 씨는 한마디로 자유분방한 ‘돈키호테식 마이웨이’의 삶을 살아온 인물로 통한다.
방 씨는 일흔을 넘긴 현재도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보디빌딩 장년부 우승을 목표로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 시대 최고의 ‘괴짜’다.
이번 책을 통해 풀어낸 그의 이야기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얼마 전 출소한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와의 ‘만남’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다. 52세 때인 1986년 그는 김태홍 씨(현 열린우리당 의원)의 피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대공수사관들에게 붙잡히게 된다(김 씨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이었는데 <말>지의 보도지침을 세상에 덜컥 공개해버린 사건으로 당국에 의해 수배 중이었다).
당시 안대를 한 채 악명 높던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던 방 씨. 책 속에서 그는 “안대를 푼 순간 붙박이 책상과 침대, 허리 높이의 분리대를 경계로 욕조와 좌변기가 보였다. 늘어뜨려진 전선 아래 알전구가 매달려 있는 작은 밀실에서 공포감에 숨이 턱 막혔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가 밤새 수십 차례에 걸쳐 자술서를 쓰고 진이 빠져 있을 때 “도대체 어떤 새끼야? 10년 만의 휴가였는데 나를 이런 식으로 돌아오게 해?”라는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이것이 남영동 분실에서 ‘이 중위’로 불리던 이근안과의 첫 만남이었다.
책에 따르면 그때 방 씨는 최고급 간첩을 뜻하는 ‘제1분자’로 몰려 알몸 상태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이 씨는 ‘국산 거짓말 탐지기’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각하, 이제 시작하겠습니다”라며 청와대 쪽을 향해 경례를 붙인 뒤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시작했다고 한다. 피를 흘리지 않게 때리는 기술, 상처 없이 관절만 빼놓는 고약한 고문 노하우를 갖고 있었던 이 씨의 고문수법에 대해 방 씨는 “74년에 당해본 전기고문도 ‘장난’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빨갱이입니다’라는 자백을 듣기 위해 이 씨는 갖은 고문기술을 이용해 방 씨에게 고문을 가했고 그 결과 방 씨는 몸 전체가 잉크를 뿌린 듯 멍이 드는 동시에 온몸의 관절이 빠져 흐느적거리는 연체동물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
방 씨는 이 씨에게 당한 고문의 기억에 대해 ‘내 생애 최초로 맛본 처절한 패배’라고 언급하고 있다. 얼마 전 이 씨가 출소한 것에 대해 방 씨는 “이 씨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그물망에 걸린 그를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씁쓸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씨에게 당한 끔찍한 고문이 비록 육체적으로는 패배했을지라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적 승리를 맛보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