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각 당 안에서는 치열한 파워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공천은 아직도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통령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인사들은 앞으로 5년 후를 내다보며 국회 내에 기반을 잡기 위해 바쁘고 여야의 금배지를 노리는 인사들로서는 한시가 바쁘다. 압도적 대선 승리를 거둔 한나라당은 공천 갈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총선에서의 대승을 기대하고 있다. 야당으로 돌아가야 할 대통합민주신당도 내부 문제가 복잡하지만 주요 인사들의 뇌리에서 출마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이회창 신당’을 창당하는 이회창 전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등의 총선 도전도 눈여겨볼 점이다.
현재 제18대 국회의원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후보들은 전국 243개 선거구에서 1500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같은 경쟁률은 지난 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12월 말 예비후보 경쟁률 10 대 1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야 각 당이 대대적인 체제 개편과 함께 내부적인 공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는 데다 ‘이회창 신당’과 창조한국당의 총선 참여로 다당·다자 대결구도가 펼쳐질 예정이어서 18대 총선은 정치 신인들의 대거 등장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과 함께 매듭지어진 뜨거웠던 한 해를 뒤로하고 이제 총선을 향해 뛰고 있는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대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은 지도부 선출 문제로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따라서 아직 총선에 대해서는 어떤 전략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내부에서는 이대로 간다면 총선마저 참패를 면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우선 대선 후유증 처리가 시급하다보니 손도 못 쓰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대선 참패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정동영 전 의장에게 지역구였던 전주나 고향인 순창을 버리고 서울 강남이나 종로에서 나와야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전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4월 총선에서 우리 지역구(서울 서대문을)에 센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무소속 이회창 전 대선후보와 겨뤄볼 것을 제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전 의장으로서는 비록 대선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호남 지역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지켜낸 만큼 옛 지역구에서 출마한다면 당선은 ‘떼 논 당상’일 수 있다. 그러나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 전 의장으로서는 편한 길만을 고집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신당의 주요 인사들 모두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유시민 의원. 유 의원은 “(대선 참패에 대해) 책임있는 행동으로 보여주자”면서 친노세력 등 책임 있는 인사들의 ‘동반퇴진’을 공개 촉구하고 적진인 대구 수성을 출마를 예고한 상태다. 지역구인 경기 고양 덕양갑을 버리고 한나라당의 본거지에 단기필마로 뛰어들 태세인 유 의원은 “당과 정부를 끌어온 책임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으로부터 손을 떼는 게 합리적”이라며 “불출마하실 분들은 불출마하시고, 강세 지역에서 프리미엄을 갖고 정치를 해온 분들은 그것을 포기하고 한나라당 강세 지역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 조순형 의원의 전례도 있고 상대가 이명박 당선인 대변인을 맡고 있는 주호영 의원이라는 점에서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도 신당 대선 경선에서 패했던 손학규 전 경기 지사는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 지역구인 경기 파주에 출마 예상자로 올라 있다. 아직은 신당의 지도체제 문제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당 대표로 선출 된다면 비례대표가 유력시되나 그렇지 않을 경우 출마냐 백의종군이냐를 놓고 고민할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노원구 병에서 본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으나 이지역에는 민노당 노회찬 의원의 출마도 결정돼 있어 관심이 간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PK의 ‘간판 얼굴’로 부산 해운대 기장을에서,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경남 남해 하동에서 각각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광부 북 갑), 조영택 전 국무조정실장(전남 강진·완도),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전남 함평·영광) 등 무소속 출마를 고민 중인 참여정부 장관 출신 인사들의 총선 결과도 관심사다.
친노 그룹들의 행보도 주목의 대상이다. 백원우 의원은 경기 시흥 갑, 이광재 의원은 강원도 태백 영월 평창 정선에서,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은 충남 논산·계룡·금산에서 출마한다. 이강철 전 청와대 정무특보는 대구 동구 을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과 대결할 태세이며 염동연 의원은 광주 서구 갑에서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의 도전을 받는다.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경기 부천 소사에서,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경기 안산·상록 갑에서, 최인호 전 청와대 부대변인은 부산 해운대구·기장군 갑에서 각각 출마를 준비중이다. 또 전재수 정 청와대 제2부속실장이 부산 북구·강서구 갑에서, 하귀남 전 청와대 행정관이 경남 마산 을에서,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이 경남 양산에서, 정영두 전 청와대 행정관이 경남 김해 갑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경기도와 경남 부산이 친노그룹의 주무대가 될 전망이다. 구속 중인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도 부산 사상구를 노리고 있다.
이밖에 신당 내에서도 가장 경쟁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역시 호남. 전북 익산 갑 지역은 현역인 한병도 의원 외에 같은 당의 강익현, 김재홍, 김상기, 김상민 의원 등 무려 14명이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익산 을 지역 역시 통합신당의 조배숙 의원 외에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11명이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이광철 의원의 지역구인 전주 완산 을도 장세환 전 전북 정무부지사 외 10명이 넘는 인물이 오르내린다.
광주 지역은 통합신당의 현역 의원들 외에 민주당, 청와대 인사들까지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동구에서는 통합신당 양형일 의원과 민주당 박주선 전 의원의 출마가 예상되고, 서구 갑은 염동연 의원과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이 경쟁할 전망이다. 한편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유력 인사들 중 유일하게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인 이정현 부대변인이 광주 남서구 을 지역 출마를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 이 당선인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당권 싸움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 당선인의 사람들이 대거 출마를 준비 중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백성운 인수위 행정실장이 고양 일산 갑에서 한명숙 의원과 맞붙게 될 것으로 예상돼 관심이 쏠리는가 하면 서울시 정무보좌관을 지낸 조해진 공보특보는 불출마를 선언한 김용갑 의원 지역구인 밀양·창녕에 출마할 예정이어서 공천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 지역은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인 김형진 전 보좌관의 출마도 거론되고 있어 양측의 대결에 관심이 더 모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밖에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의 서울 서초 갑 출마가 거론되고 있고 이태규 인수위 전문위원이 남양주 갑에서, 김해수 전 이명박 후보 비서실부실장이 인천 계양갑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대구 달성군이 지역구인 박근혜 전 대표는 4선을 노리며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명박 당선자를 지지하며 다시금 급부상한 정몽준 의원은 울산 동구에서 6선을 노린다. 강재섭 당 대표는 대구 서구에서 출마하고 이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지역구가 경북 포항 울릉이지만 2선 2선 퇴진설도 나돌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그런가 하면 3선인 김용갑 의원(경남 밀양·창녕)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 한나라당 내에 물갈이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가 거세지고 있기도 하다. 한나라당에서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김 의원이 처음이지만 중진 의원 또는 ‘자격 미달’ 의원에 대한 대폭 물갈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왼쪽부터) 유시민, 이재오, 허경영.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역시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이회창 전 총재가 창당할 신당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가 총선 정가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이 전 총재 본인도 선영이 있는 충남 홍성·예산에서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역시 상징성을 내세워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총재 측은 아직까지 총선 출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입을 열지 않고 창당 작업에만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비례대표 가능성도 높다.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략기획팀장을 맡았던 강삼재 전 사무총장과 역시 이 후보를 지지했던 김혁규 전 경남지사 등이 지역기반이 탄탄한 영남 지역을 주로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강 전 사무총장은 다섯 번이나 당선됐던 과거 지역구 경남 마산을 출마 가능성이 높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총재는 대전 서 을에서, 조순형 의원은 서울 성북 을에서 출마할 예정이며 대표민주당 이인제 의원은 지역구인 충남 논산·계룡·금산에서 출마해 신당의 안희정, 한나라당의 박우석 당협위원장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는 4·9총선의 목표 의석을 30석으로 잡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어디서 출마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다. 얼마전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떤 한 지역에 너무 몰입되는 것보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전문정당으로서의 창조한국당과 저 문국현을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며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최근에는 ‘출마를 위해 위장전입은 않겠다’고 말해 주거지인 강남 갑 출마설도 나오고 있다.
민노당의 비례대표 의원들 중 노회찬 의원은 서울 노원구 병에 출마할 예정이며 심상정 의원은 고양 덕양갑에 출마해 한나라당을 통해 출마 선언을 한 유정현 전 아나운서와도 싸움을 벌이게 됐다.
이번에 사면 복권된 인사들의 출마도 주목된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목포 출마를 겨냥하고 있으나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의원에게 지역구 무안 신안을 넘겨준 한화갑 전 민주당 총재도 목포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어 대결이 흥미롭다.
이밖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도 경남 거제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