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당선인이 윷을 던지는 모습. 여야를 막론한 최근 정치권은 당내 양편으로 갈려 무서운 생존게임을 치르는 중이다. | ||
군소정당들의 사정도 심각하다. 신당 측과 통합을 재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은 지도부 사퇴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창당 8주년을 맞이한 민주노동당은 내부 노선 투쟁으로 분당 위기에 직면해 있다. 1일 창당식을 갖고 본격적인 총선체제로 돌입한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자금 사건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고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공동대표를 제외한 지도부 전원이 사퇴하는 등 심각한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 전체가 갈등과 반목을 넘어 극심한 분열상을 연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4월 총선을 겨냥한 정파간 생존전쟁이 불가피한 만큼 정치권 전체가 대대적인 지각변동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서바이벌 공천 전쟁을 넘어 여야 모두 피 말리는 정계개편 모드로 진입하고 있는 흉흉한 설 정국을 진단해 봤다.
한나라당의 공천갈등은 단순한 지분 문제를 넘어 감정싸움으로 비화되면서 극심한 분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부정부패 전력자 공천 불허’ 당규를 놓고 정면 충돌 위기로 치닫던 MB계와 친박계 간의 공천 갈등은 지난달 31일 공천심사위원회의 긴급회의를 통해 일단 봉합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하지만 ‘문제되는 신청자의 자격 여부를 별도로 심사한다’는 공심위의 결정이 양측 논란을 완전히 잠재운 게 아니라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아 갈등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김무성 최고위원이 공천을 신청할 경우 김 최고의 범죄경력 등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고 공심위의 결정에 따라 양측은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심위 결정을 전해들은 박 전 대표 측이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죽이려는 의도를 드러낸 사람이 칼을 내려놓았다고 바로 악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도 양측의 재충돌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 측은 공심위 발표를 전후해 잇따라 대책회의를 갖고 일단 입장을 유보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일부 강경파는 MB에 대한 신뢰가 깨진 만큼 탈당을 포함한 특단의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의원은 “공심위 결정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시간을 벌기 위한 미봉책”이라며 “우리가(친박) 토사구팽을 당할 경우 집단 탈당 후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 살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MB 측의 지연 전략에 자꾸 말려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MB와 박 전 대표의 앙금이 깊어지고 있어 양측 모두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루비콘 강을 건넌 만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치열한 이별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란 얘기다. 친박계 주변에선 이번 공천심사 논란 배경에 MB 측의 배후 내지는 고도의 음모론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무성 최고위원은 이미 탈당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고 김학원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도 행동통일을 결의하고 있다. 김 최고는 30일 “정치보복이고 토사구팽이다. 한 번도 당적을 바꾼 적이 없는데 당에서 쫓아내니 당적을 버릴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탈당 카드를 꺼내 들었고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 친박계 35명도 이날 “김 최고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일부 핵심 측근들은 극비리에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면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친박계 중진인 K 의원은 31일 기자와 만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며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에 박 전 대표도 교감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K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격앙된 내부 분위기를 잘 알고 있고 일부 측근들이 신당 창당 플랜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박 전 대표의 최종 결단만 남았을 뿐 친박계가 내부적으로 생존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양측의 공천 갈등은 일시 봉합국면을 맞이하고 있지만 갈등 불씨가 또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양측은 분당을 포함한 대혈투를 피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도파인 강재섭 대표까지 권력투쟁에 적극 가세하고 있어 당내 공천 파문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자리잡고 있다.
신당 측도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현역 의원 이탈이 잇따르고 있고 호남 물갈이론 등 대대적인 인적쇄신 폭풍이 몰려들고 있다. 여기에 신당 최대 주주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설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그야말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풍전야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충청권 의원들의 이탈 현상은 대규모 탈당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실제로 유재건(30일) 박상돈(31일) 의원이 탈당, 자유선진당에 입당한 이후 당내 충청권과 보수 성향 의원들의 이탈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충청권 의원들의 집단 탈당 움직임은 올 초부터 감지돼 왔던 것으로 박 의원(충남 천안을)의 이탈이 집단 탈당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의원의 탈당은 대선 이후 7번째로 신당 의석은 135석으로 줄어든 상태다.
공천 물갈이론과 혁명적 인적쇄신론과 맞물린 계파 간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30일 공천 칼자루를 쥔 공천심사위원장에 임명된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은 “현역의원이라도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총선에) 나가지 않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해 기득권 포기 등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한 상태다. 손학규 대표도 “무난한 공천은 무난한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며 혁명적 인적쇄신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신당 주변에선 벌써부터 호남 물갈이론, 친노세력 배제론 등이 거론되고 있어 공천 작업이 본격화될 경우 살아남기 위한 계파 간 갈등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손 대표 체제 이후 소외감과 함께 고사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정 전 장관과 계보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3지대 신당 창당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극심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본격적인 정치활동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계룡산 산행 후 가진 비공개 워크숍이나 정통들 모임에서는 계파 생존 전략을 포함한 향후 정치 행보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 탈당이나 신당 창당론도 이 자리에서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손 놓고 있다간 계보 전체가 고사 위기에 몰릴 수 있는 만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호남권 의원들이 신당 창당설을 주도하고 있다. 호남 물갈이론이 확산되고 있는 위기감과 함께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동영계가 탈당을 선택하는 것은 명분이 약할뿐더러 정치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낮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탈당 및 신당창당 카드로 호남지역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는 동시에 공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투영돼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공천 칼날이 정동영계와 호남권 의원들에게 집중될 경우 정 전 장관과 계보 의원들이 마지막 승부수로 탈당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소정당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신당과의 재통합 카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민주당은 쇄신파를 중심으로 박상천 대표 등 지도부 사퇴론이 불거지는 등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양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1차 통합이 무산된 만큼 지분문제는 일절 논의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공동대표제 문제 등으로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동대표제와 관련해 신당 측은 수도권 민심을 겨냥한 손학규 대표 체제가 흔들릴 수 있고 자칫 ‘호남당’ 이미지만 더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당대당 통합시 공동대표는 기본 상식이라며 신당 측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심 쟁점인 공천권 등 지분협상에 돌입하기도 전에 통합 무산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손봉숙 의원과 김경제 전 의원 등 당내 쇄신파가 30일 박 대표 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갈등은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들 쇄신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 이후 모든 정당이 당의 얼굴을 바꾸고 쇄신을 첫 번째 모토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는 아무런 쇄신과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통합논의가 원점을 맴돌고 있고 몇 사람의 공천을 보장하라는 명단이 오갔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결국 시간벌기용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창당 8주년을 맞이한 민노당은 당내 노선 투쟁이 격화되면서 분당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혹독한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 일부 강경 평등파 사이에서는 신당 창당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평등파는 한국사회당, 초록정치연대 등과 함께 대안 진보정당 건설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0일 창당 8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심상정 비대위 대표가 “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으나 투병 중”이라고 한 발언은 민노당이 직면한 현 주소를 잘 반영하고 있다.
1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총선체제로 돌입한 자유선진당은 2002년 대선잔금 수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검찰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할 당시 한나라당이 823억 원을 불법모금한 뒤 154억 원이 남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138억 원은 삼성에 채권 형태로 돌려준 뒤 국고에 귀속됐지만 나머지 16억 원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이후 검찰은 이 돈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회창 전 총재의 차남인 수연 씨가 삼성에서 받은 채권을 현금화하는 데 개입했다는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연 씨의 친구인 J 씨가 삼성 채권 7억 5000만 원 어치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자금세탁’을 한 혐의를 일부 포착했고 이 돈이 대선잔금 16억 원의 일부일 가능성에 대해 수사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검찰은 수연 씨와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를 출국금지 조치한 데 이어 조만간 이들과 외국으로 나간 수연 씨 친구 J 씨 등을 소환해 대선잔금 용처 및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검찰의 향후 수사 추이 및 수사 결과는 자유선진당과 이 전 총재의 정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국현 공동대표가 주도하고 있는 창조한국당은 창당 3개월 만에 와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 대표는 지난해 대선에서 137만여 표(5.8%)를 얻는 등 정치신인답지 않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대선 이후 구성원 이탈이 지속되면서 내홍에 시달려 왔고 급기야 30일에는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문 대표를 제외한 당 지도부 전원이 사퇴키로 결의했다. 대선 때 문 대표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이용경 이정자 공동대표를 비롯해 김영춘 정범구 전재경 최고위원 등이 모두 물러나면서 ‘문국현 1인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 대표는 오는 17일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진로 문제 및 자신의 지역구 출마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나 그의 향후 정치행보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