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의 뒷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국정실패 책임론 등으로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그래도 도덕성만큼은 자신해 왔던 노 대통령이 각종 악재로 씁쓸한 퇴임을 앞두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로스쿨 선정 개입설은 선정에서 탈락됐거나 정원수에 불만을 품고 있는 대학들이 집단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진 것이어서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논란의 진원지는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윤 전 수석은 지난달 31일 자신이 홍보수석으로 재임할 당시 전북 익산 출신의 언론계 인사를 법학교육위 위원으로 포함시켜 결국 원광대가 로스쿨을 유치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야기했다.
윤 전 수석은 논란이 확산되자 “조금 과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청와대도 “청와대 차원에서 법학교육위 위원 선정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고 TF가 구성된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정치권과 각 대학들이 윤 전 수석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있고 일부 대학에서는 법적투쟁도 불사한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4일 “청와대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이 깊어지고 있는데 당사자인 청와대는 부인만 하고 있다”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다. 양형일 의원 등 대통합민주신당 일부 의원들도 “윤 전 수석뿐만 아니라 민형배 전 청와대 비서관도 31일 논평을 내고 로스쿨 선정과정에서 정치적 개입이 있었다고 폭로했다”면서 진상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상문 비서관의 수뢰 의혹도 노 대통령의 시름을 더해주고 있다. 검찰은 정 비서관이 2004년 초 자신의 사위였던 L 씨로부터 “중견 해상운송업체인 S 해운의 450억 원대 소득 탈루 및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 원을 받았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 씨는 검찰 조사에서 “2004년 3월 정 비서관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1000만 원짜리 현금 뭉치 10개가 든 가방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정 비서관의 딸 이름으로 된 계좌에 2004∼2005년 사이에 모두 5000만 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용처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비서관은 “L 씨가 돈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돌려보냈다”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등 정치권은 “권력형 비리가 또 터졌다”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정치공방전으로 확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S 해운이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국세청과 검·경 관계자들에게도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폭을 확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변양균 전 정책실장에 이어 정상문 비서관까지 비리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으니 노무현 정권은 최고 권부인 청와대가 바로 비리의 온상이었음이 또 드러난 셈”이라며 청와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고향 봉하마을 일대 개발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측은 봉하마을 일대를 개발하는 데 국고보조금 211억 원과 지방비 284억 원 등 총 495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것과 관련해 예산 투입 경위 및 사업 타당성 등에 대한 특별감사나 정밀조사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인수위 측은 거액의 중앙·지방정부 예산이 투입돼 추진되고 있는 봉하마을 일대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현황파악에 나서는가 하면 해당 부처에도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5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과정에 정치적 압력이나 편법이 있었는지 여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새 정부 출범 후 특감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의 사저 조성에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다”며 인수위 측의 특감 가능성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반발 기류에 인수위는 3일 “‘새 정부 출범 후 봉하마을 특감’ 제하 기사는 사실과 다르고 인수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한 발 물러난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새 정부의 칼날이 봉하마을 특감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에 대한 향후 검찰 수사 추이 및 그 결과는 노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행보와 맞물려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5일 ‘방북 대화록’ 유출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 원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노 대통령은 20여 일을 머뭇거리다 11일 겨우 사표를 수리했다. 청와대는 검찰 내사 결과를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한나라당을 비롯, 사방에서 사표 수리를 미룬 배경에 대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왔다. 검찰도 현직 국정원장을 상대로 한 내사는 한계가 있는 만큼 자연인 신분이 됐을 때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는 방침 때문에 이제껏 수사를 미뤄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기대 이상의 ‘대어’가 낚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선 노 대통령이 김 전 원장의 사표 수리를 머뭇거린 배경에는 ‘북풍 공작설’ ‘정상회담 대가설’ ‘아프간 피랍인 몸값 지불설’ 등 대형 의혹 사건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레임덕 현상이야 권력의 속성상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봉하마을 특감과 김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 추이는 참여정부 도덕성은 물론 노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구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지뢰밭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