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같은 살생부를 일선 기자들과 여의도 정가에 유통시킨 사람들이 주로 친박계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친박계 인사들이 이번 공천 과정에서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실제 살생부 내용을 들여다 보면 친박계 인사들뿐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지는 친이계 의원들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각 살생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살생부에 오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수도권의 모 중진 의원. 대선 때 맡았던 화려한 직책에 비해 활동이 미미했고,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도 역시 일반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다지 깊지 않다는 평이었다. 수도권에서는 주로 친박계 의원들, 친이계 의원이지만 대선 당시 활동이 미미했던 의원들, 과거 윤리 문제가 일었던 의원들이 살생부에 올랐다. 먼저 중진인 L 의원과 또 다른 L 의원은 친이계 의원으로 꼽히지만 ‘제거 대상’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앞의 L 의원 같은 경우 공천 신청자 중 뚜렷한 경쟁자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지역에서 탈락한 경쟁력 있는 신청자가 공천을 대신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뒤의 L 의원은 일찍부터 이 대통령 쪽에 섰지만 대선 과정에서 별다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한 게 단점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K 의원은 과거 여의도 입성 전에 금품 수수 사건에 연루됐던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G 의원은 뒤늦게 ‘친이 인사’임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경선 때 보여준 ‘친박 행보’ 때문에 살생부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경선 당시 중립을 표방하다 양쪽 캠프로부터 모두 ‘미운털’이 박힌 또 다른 K 의원과 ‘한나라당 의원 같지 않은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지적이 많았던 제2의 G 의원도 살생부에서 빠지지 않는 인사들. 이밖에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로 꼽히는 초선의 H 의원, 중진 L 의원과 또 다른 L 의원 등도 일부 살생부에서 수도권에서 ‘손봐줄 대상’으로 꼽혔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 텃밭이기도 한 영남권은 어지간한 중진 의원들은 모두 살생부에서 한번쯤은 거명됐다고 보면 된다. 이는 영남권에 워낙 경쟁력 있는 정치 신인들과 이 대통령이 ‘챙겨줘야 할’ 측근들이 많다보니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K 의원은 정부 요직을 줄 테니 출마를 포기하라는 이 대통령 측 메시지를 거부했지만 결국 ‘팽’ 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나마 K 의원은 행복한 경우. 살생부에 따르면 상당수 영남권 중진들이 졸지에 무직자 신세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때마다 공천 탈락설 1순위로 거론돼온 J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도 빠짐없이 살생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J 의원은 공천심사위원회 명단이 발표되자마자 공심위원들 개인 이력에 관한 각종 비밀서류를 한 보따리 입수했다는 후문이다. 공심위원들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낙천시키려면 시키라는 엄포용인 셈.
중진 A 의원과 지난해 추문에 휩싸여 언론에 오르내린 L 의원, 술자리 추태를 보였던 K 의원 그리고 대표적 친박계 인사인 4~5명도 살생부에 따라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들로 회자되고 있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