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한 장면. 사건현장은 영화처럼 욕조에 장미꽃이 뿌려져 있었다. | ||
현재 치밀하게 맞아떨어지는 증거에도 불구, 피고 크리스틴 로썸(26)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3일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그녀의 불륜상대의 앞뒤 안맞는 행동과 너무 완벽해서 되레 의심받는 증거들이 샌디에이고 주민들을 여전히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2000년 11월6일 한 남자가 욕조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오른손엔 결혼 당시 사진이 들려 있었고 욕조엔 새빨간 장미꽃잎들이 뿌려져 있었다. 이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부검결과 밝혀진 사인은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추정했다. 하지만 6개월 뒤 그의 아내 크리스틴 로썸의 계획적인 살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수사는 전면적으로 재개되었다. 죽은 남자의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던 진통제가 아내 크리스틴 로썸이 근무하는 연구소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배심원들은 재판을 시작한 지 8시간 만에 그녀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전례 없는 초고속 판결이었다.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것은 사건 당일 그녀가 산 빨간 장미꽃과 그녀가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없어진 다량의 ‘펜타닐’이었다.
죽은 남편이 바로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 하지만 너무도 완벽한 증거는 타인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높다. 변호인측은 각성제 중독이었던 그녀가 각성효과를 지닌 펜타닐을 연구소에서 빼내온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 유죄평결을 받은 크리스틴 로썸. | ||
또한 유력한 증거가 되었던 사건 당일 그녀가 산 장미꽃은 당시 내연의 관계에 있던 마이클 로버트슨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버트슨은 그녀로부터 장미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작 배심원들은 사건 전날 둘의 부부싸움에 관심을 보였다.
연구소 상사 로버트슨과의 불륜과 그녀의 마약복용을 두고 한바탕 크게 싸웠다는 사실을 검사측에서 들고 나온 것이다. 검사측은 남편이 이러한 사실을 그녀가 근무하는 연구소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로썸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배심원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로썸과 내연관계에 있던 마이클 로버트슨이 또다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의 진술이 주변정황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 그는 경찰에서 로썸이 남편에게 약을 먹인 사실을 자신에게 털어놨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로썸은 자신이 마약을 다시 시작한 일로 남편과 싸웠을 뿐 그렇다고 남편을 죽인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더욱 미심쩍은 점은 로버트슨이 로썸과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는 것이다. 주변정황은 그가 로썸과 사귀었던 것이 확실한 데도 그는 단지 ‘친구관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녀의 직장 동료에 따르면 로버트슨이 로썸에게 보낸 카드 때문에 로썸 남편이 분개했다고 한다. 또한 남편은 로버트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서 멀리 떠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정황상 로버트슨이 범인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버트슨이 로썸으로부터 사건당일 꽃다발을 받은 적이 없다는 주장이 로썸을 범인으로 단정짓게 했다. 로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바로 <아메리칸 뷰티>로 사건 현장이 영화의 한 장면과 너무 흡사하다는 점이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현재 로버트슨은 국외로 잠적했다. 과연 로썸이 진범인지 샌디에이고 주민들은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이연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