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도권 민심이 이탈하며 한나라당내에서는 총선 필패론이 나돌고 있다. ‘이명박 브랜드’도 인사 파동에 밀려 점차 힘을 잃는 분위기다. | ||
먼저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등의 편파적 인사가 호남민심을 결집시켜 수도권 등에서도 신 지역주의가 부활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개혁공천도 ‘칼잡이’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에게 이미 그 주도권을 빼앗겨 실효가 없을 것으로 지적된다. 아직은 우려 섞인 진단이기는 하지만 점점 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한나라당 총선 필패론을 따라가 봤다.
“이대로 가다간 여소야대 정국이 도래할 것이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총선 패배로 인해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발목을 잡힐 것이다. 하지만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총선 승리를 위한 획기적인 기획 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4·9총선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저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뭔가 하나 둘씩 꼬여가고 있다”라고 걱정한다. 그 이유로는 인수위원회에서 보여준 아마추어적 정책 수립, ‘고소영’으로 대표되는 편중 인사,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핵심 요직 독점 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결정적 요소로 꼽힌다.
여기에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대중적인 정치 이벤트 부재’를 지적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역대 정권에서 보면 초기에 민심에 부응하는 이벤트성 정치 소재가 있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으며 집권한 김대중 정권은 금모으기라는 이벤트를 통해 정권 초의 위기를 수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었다.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김대중 정권이 연착륙하는 데는 도움을 주었던 게 사실이다. 또한 노무현 정권도 한나라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발의해 2003년 2월 정권 출범과 함께 대북송금 정국을 조성했다. 이는 김대중 정권과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동시에 노무현 정권 초기의 불안정성을 대북송금 정국이 희석시켜준 효과가 있었다”라고 전제하면서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은 현재 어떤 화두를 국민들에게 던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작 나오는 얘기라고는 대통령의 지시에 맞춰 ‘아침형 공무원’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정도가 관심거리다. 청와대도 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 브리핑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직 정권 출범 초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현재 터져 나오는 ‘고소영’ 인사 편중 현상 등의 악재가 국민적 관심을 끄는 정치 이벤트를 만들 공간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제는 어떤 정치 이벤트를 내놓아도 ‘대증요법적인 쇼’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총선을 한 달가량 남겨 두고 특별한 대책을 내놓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일고 있는 총선 필패론은 ‘대선 직후 민심 관리 실패-인수위원회 성급한 정책 남발-편중 인사-개혁공천 실패’라는 잇단 악재가 점증적으로 발생,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기 일보 직전이라는 해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분위기를 뒤늦게 체감하고 한나라당 내 소장그룹을 만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총선 필패론을 인식하고 자신이 직접 공천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것은 지난 3월 초 자신이 아끼는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연쇄 접촉하며 가감 없는 민심을 전해 들었으며 그 후 곧 바로 이규택 한선교 의원 등의 친박근혜 계보가 1차로 대거 물갈이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당 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중진 의원이 수시로 청와대와 직접 접촉하며 공천안을 조율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후보 한 사람씩을 직접 거명하며 왜 공천하면 안 되는지 그 구체적 이유까지 제시한다는 소문도 나온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소장파 의원과의 면담에서 국민들로부터 공감 받는 공천, 개혁 공천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내긴 했지만 구체적 공천 기준 제시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소장파 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여당의 과반 확보가 가능한 ‘총선 컨셉트’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안을 수립해보라는 지시도 함께 내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이 직접 총선 전선에 뛰어들 만큼 현재 한나라당의 기류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는 지난 2월 27일 중앙일보 조인스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57.7%였지만 인사파동이 휘몰아친 직후인 3월 5일 조사에서는 50.7%를 기록해 최근 조사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14.2%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한나라당이 월등히 강세이긴 하다.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18대 총선과 관련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안정론이 최근 51.2%에서 1.8%p 하락한 49.4%로 하락한 반면 견제론은 34.7%에서 36.3%로 1.6%p 상승한 조사 결과를 보면 여론이 한나라당 하락-견제론 상승의 흐름을 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인사파동과 더불어 공천 갈등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성급한 정책 발표 등으로 인해 민심이 점차 이반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반 한나라당 정서의 상승은 두 가지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수도권의 호남민심 결집에 따른 신 지역주의 현상과 통합민주당 따라잡기식 개혁공천의 실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 이상득 부의장(왼쪽). | ||
한국 정치 풍토상 과반 획득은 난공불락의 성과 같다. 왜냐하면 대선이 전국 선거인 것에 비해 총선은 지역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을 뽑기 때문에 지역별로 우세한 정당이 각각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도 통합민주당이 호남에서, 선진자유당이 충청 일부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영남권에서 우세를 유지할 것이다.
이럴 경우 과반수 획득의 최대 결전장은 수도권이 된다. 전체 의석의 40%가량이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17대 때 열린우리당은 수도권 의석의 70%를 차지했다. 지난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수도권에서 60% 정도를 얻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과반에 조금 못 미쳤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려면 수도권에서 적어도 60~70%의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대답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수도권 민심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그는 “각 8도의 지역민들이 모여 사는 서울 수도권에서는 ‘특정 지역에 너무 인사가 치중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이런 여론이 상당히 돌고 있다. 그럴 경우에 좀 소외된 지역 같은 곳에서는 민심 이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국정원 등 사정기관을 영남인사들이 독식하도록 만든 이명박 정권의 인사에 우려를 표시했다.
선거전문가들도 4·9 총선 최대 격전지 수도권에서 신 지역주의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유는 앞서 지적한 대로 청와대 수석과 장관인사에서 호남이 소외당하면서 호남이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뭉치고 있다는 시그널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수도권에 사는 호남출신 중 50%가 약간 넘는 사람이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고, 38%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4·9 총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지지층 38%가 민주당 지지로 대거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신 지역주의로 수도권에 사는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이 이번 선거에서 뭉치게 될 경우 한나라당 후보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에 사는 호남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자영업자가 많아 대통령선거에서는 경제를 살릴 대안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으나 인사소외뿐만 아니라 라면과 기름값 등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주가가 하락하는 등의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야당 견제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경제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에 호남 지지층의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수세력이 한나라당 실용보수와 자유선진당(이념보수)으로 갈리면서 수도권 선거가 3당구도로 형성돼 민주당이 ‘어부지리’ 당선을 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또한 선거 이슈 메이킹에서도 ‘강부자’(강남 땅부자) 정부 이미지 논란 등이 주 소재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나라당으로선 더욱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할 돌파구로 개혁공천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칼잡이’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에게 그 명분을 빼앗겨 여의치 않을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그룹 인사는 이에 대해 “문제는 이상득 부의장이 개혁공천의 관건이었다. (이상득 부의장 공천 저지 실패를 지적하면서) 우리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그 결과 앞으로 영남권 중진 몇 명을 날린다고 해서 국민들이 그것을 개혁공천이라고 인정해주겠느냐 하는 점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반면 민주당은 박재승 위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높아지면서 개혁공천에 대한 명분을 확실하게 쥘 수 있게 되었다. 강재섭 대표가 뒤늦게 ‘우리가 개혁공천 원조’라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전형적인 뒷북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서울과 영남권에서 현역 의원들을 대거 날리면서 개혁 공천을 이루었다고 자평해도 국민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당 일각에선 이상득 부의장의 공천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총선 필패론은 점점 가능성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분위기다. 이는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대선의 결과를 잘못 해석했던 것에 따른 후폭풍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낸 것은 그들에게 경제를 살리라는 특명을 준 것이지 그것을 무기로 인사 편중 등의 전횡을 휘두르라고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뒤늦게 민심을 듣는 방향으로 국정 컨셉트를 잡아가고 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갈 것이고, 회복은 더딜 것이라는 게 뼈아픈 지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당내에선 “‘이명박 브랜드’로 총선에서도 승리하자”라는 안일한 목소리도 쑥 들어가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이제야 대선 승리를 만끽하던 축배의 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있는 것 같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