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총선이 임박해오면서 출마자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직 출발 총성이 울린 것은 아니지만 스타트라인에 모여드는 ‘후보’들 사이엔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지역마다 단 한 명의 승자만 살아남는 생존게임. 과연 누가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을 것인가를 두고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22일 현재까지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예비후보자 수는 전국 245개 선거구에 2130명에 이른다. 평균 경쟁률이 10 대 1에 가까운 셈이다. 그중 몇몇 지역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전국적인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의석 하나’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는 곳도 있고 ‘거물’들의 대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역도 있다. 무수한 뒷얘기를 낳고 있는 화제의 지역구 5곳의 판세와 해당 출마자들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들여다봤다.
1 서울 중구, 나경원 VS 정범구 VS 신은경
서울 중구는 ‘미모 여성’ 간의 대결로 화제가 되고 있는 지역구다. 한나라당에서는 대변인을 지낸 나경원 의원이 공천을 받았고 자유선진당에서는 아나운서를 지낸 신은경 대변인이 입당과 동시에 출마 선언을 해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신 대변인은 남편인 박성범 전 의원이 이곳의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남편을 대신해 출사표를 던졌다. 두 사람은 미모의 소유자인 데다 각 당의 전·현 대변인이기도 해 여러모로 대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은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도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다. ‘나경원 의원이 40.4%, 신은경 대변인이 1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지난 20일 중앙일보 여론조사 보도에 대해 신 대변인 측이 ‘발끈’하고 나선 것. 신 대변인 측은 “477명인 여론조사 표본수가 너무 작아서 우선 신뢰성이 떨어진다. 이틀 전에 출마를 결정한 후보와 당 대변인 등을 역임하고 집권당 공천을 받아 이미 일주일 전부터 예비후보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신 대변인 측은 ‘나경원 의원이 50.4%, 신은경 대변인이 49.6%’로 대등한 수치를 기록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신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조사한 바는 언론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와 전혀 다르다. 50 대 50으로 거의 비등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 의원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주당 후보가 확정되지도 않았을 때 단 둘이 비교한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신은경 후보만 후보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이 지역에는 통합민주당에 입당한 정범구 전 의원이 뒤늦게 출사표를 던진 상황. 출마 선언 직후 중구에 있는 숭례문에 다녀왔다는 정 전 의원은 “숭례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고자 방문했다. 지역주민들의 가슴이 참 아팠을 텐데 개발주의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문화재와 전통의 훼손이 또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모교인 중구의 성동고등학교를 방문해 동문들의 격려를 받은 그는 “결과가 어떻든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다른 두 후보와 마찬가지로 정 전 의원도 새천년민주당 시절 대변인을 지낸 경력이 있다. 정범구 전 의원이 포함된 지난 19일 조선일보·SBS 여론조사에서는 나 의원이 35.9%, 신 대변인이 17.7%, 정 전 의원이 17.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2 서울 노원병, 홍정욱 VS 노회찬
노원 병은 지난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임채정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김정기 후보를 무난하게 누르고 당선된 지역. 애초엔 임 의장과 이곳에 도전장을 내민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와의 경쟁에 관심이 쏠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임 의장의 불출마로 노 대표가 손쉬운 싸움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던 가운데 변수가 생겼다. 한나라당이 동작갑 공천에서 탈락했던 홍정욱 전 헤럴드경제 대표를 이 지역에 전략 공천하면서 다시 뜨거운 격전 지대로 변하고 있는 것.
지난 20일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회찬 대표가 24.6%, 홍정욱 전 대표가 23.7%를 기록해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 전략공천될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일찌감치 선거사무실을 열고 지역주민들과의 대면접촉에 힘써온 노회찬 대표가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노 대표는 임채정 의장의 불출마 선언 이전 여론조사에서도 임 의장을 앞서는 결과를 기록한 바 있다. 노 대표 측은 “결과에 대해 낙관적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17대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던 노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노원 지역을 택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노 씨이고 어머니가 원 씨여서 노원을 택했다”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호응을 얻기도 했다. 노 의원 측 관계자는 “새벽에 전철역에서 출근 인사를 시작으로 하루 일정을 연다”며 “식당, 대형할인점, 약수터 등 가리지 않고 ‘전 방위적’ 선거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뒤늦게 선거전에 가세한 홍정욱 전 대표 측은 노회찬 대표와의 경쟁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이 지역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지만 노 대표에게 뒤진 것에 대해서도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그러나 한나라당 관계자는 “홍정욱 전 대표가 워낙 유명인사인 데다 정치권에는 처음 진출하는 참신한 인물이어서 지역주민들의 호응도 좋다.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낙후된 노원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교육 정책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세워 승부를 걸 계획이다.
3 대구 수성을, 유시민 VS 주호영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유시민 전 장관의 대구 수성을 출마 선언은 이번 총선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 중 하나였다. 유 전 장관은 지역구인 고양 덕양갑 대신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대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이 지역 현역 의원인 주호영 의원과 대결을 펼치게 된다. 주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윤덕홍 후보를 큰 표 차로 누르고 압승을 거두었다.
‘참여정부’의 실세였던 유 전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현 정부 실세인 두 사람의 경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는 상황. ‘적진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이곳을 택한 유 전 장관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열세에 놓여 있다. 지난 3월 9일 중앙선데이 여론조사에서 유 전 장관은 13.1%를 얻어 63.6%의 주호영 의원에게 큰 폭으로 밀렸고, 지난 19일 매일신문과 대구·포항·안동 MBC 조사에서는 주 의원 지지율(49.2%)의 4분의 1에 불과한 12.2%에 그쳤다.
하지만 유 전 장관 측은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지에서 직접 주민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반응은 예상 외로 뜨겁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 측 관계자는 “특히 기초노령연금제도나 출산지원제도 등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성과와 정책에 대한 호평이 많다”며 “서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들이어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유 전 장관은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나왔고 유 전 장관의 어머니가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지인 네트워크’가 두텁다고 한다. 거리 유세를 나가면 “내가 네 엄마를 안다” “내가 너희 이모의 친구다”라고 ‘아는 척’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 그중에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만 내 친구 아들이니까 찍어주겠다”는 할머니들도 있다고 한다. 유 전 장관 측 관계자는 “한나라당 후보는 공천만 받아도 너끈히 당선되기 때문에 허리 굽히고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 같다. 골목 곳곳을 다녀보면 ‘국회의원 처음 본다’는 분들이 정말 많다”고 설명했다.
또 유 전 장관은 주호영 의원에게 ‘토론회를 통해 정책토론을 해보자’고 제의했지만 주 의원이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유 전 장관 측은 “세 군데의 방송사에서 뉴스 인터뷰를 잡았다가 주 의원 측에서 하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도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 의원 측은 “토론회를 하자는 것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른 후보들도 있는데 유 후보와 둘이서만 맞장 토론을 하는 것은 모양새도 우습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유 전 장관 측은 주 의원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높은 지지율’만 믿고 있는 안이한 자세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 의원 측은 ‘말발’에서라면 밀리지 않는 유 전 장관과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면서까지 얻을 것이 많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부산 사하을, 조경태 VS 최거훈
부산 사하을은 17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 18개 선거구 중 유일하게 ‘비한나라당’ 후보인 열린우리당 조경태 의원을 당선시킨 ‘의외의’ 지역구다. 당시 조 의원은 39.13%로 한나라당 최거훈 후보(36.99%)를 누르고 ‘뜻 깊은’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도 두 사람이 다시 맞붙어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통합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꾼 ‘야당’ 소속 조 의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수’를 해야 하는 지역이고, 최 후보는 17대 때 패배의 아픔을 갚아야 할 입장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조경태 의원이 최거훈 후보(부산 사하 을 당협위원장)를 앞서고 있다. 지난 3월 5~7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조경태 의원이 31.7%, 최거훈 후보가 16.4%를 기록한 상황. 하지만 최 후보 측은 지난 총선과 이번 총선의 상황이 다르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박종웅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한나라당 지지층이 분산되었지만 이번에는 양자 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변인 격인 박 전 의원은 복당 조치가 마무리 되지 않아 결국 공천 서류 신청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무소속 출마에 대해서도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 후보 측 관계자는 “4년 전에는 전략공천을 받아 지역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지만 이후에 지역 순방을 꾸준히 해왔다”며 “자체적인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월등하진 않지만 오차 범위를 벗어난 수준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역 의원인 조경태 의원 역시 자신이 ‘근소한 차로 이길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조 의원 측 관계자는 “의정활동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평가가 매우 좋다. 한나라당이라는 간판만 달고 지역구 의원이 된다면 오히려 안이하게 일할 것이라는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조 의원은 특히 부산지하철 1호선 다대선 연장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번에도 한나라당 ‘싹쓸이’를 막아내고 재선에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5 전남 목포, 박지원 VS 정영식 VS 이상열
전남 목포는 우여곡절 끝에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은 정영식 전 목포시장과 공천에서 배제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박지원 전 비서실장, 역시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현역 이상열 의원 간의 치열한 3파전 구도가 형성되면서 호남지역 최대 격전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DJ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는 제헌 총선 이후 지난 제17대 총선까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거물급인 박 전 실장과 현역인 이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측근들의 민주당 공천 배제 이후 침묵을 지켜왔던 DJ가 민주당 지도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등 측근 후보들에 대한 지원사격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목포 선거는 호남권 무소속 열풍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번 목포 선거는 민주당 후보와 박 전 실장, 현역 의원이 맞붙은 만큼 선거 막판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접전이 불가피 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박 전 실장이 공천에서 배제된 직후 9일 실시한 중앙선데이 여론조사 결과 박 전 실장과 이 의원(공천 탈락 전)은 각각 19.2%와 24.1%로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인 바 있다.
민주당의 텃밭 사수냐, DJ의 복심이냐, 현역의 조직력이냐. 누가 ‘목포의 눈물’의 주인공이 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