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 분쟁이 여전하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사건은 지난해 1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자 조 아무개 씨는 이날 A 병원에서 두 번의 척추 수술을 받았다. 조 씨에 따르면 당초 경추 C3-4의 척추관 성형술과 요추 L3-4 유합술을 하기로 동의서를 작성한 뒤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도중 보조의가 실수로 볼트를 신경위에 박아 극심한 통증과 마비 증상을 느껴 재수술을 받게 됐다.
조 씨는 “재수술 이후 오른쪽 다리와 왼팔에 마비가 왔다. 수술 후 회복 기간을 일주일로 예상하고 입원했으나, 병원에서는 치료를 하지 않고 전원을 요구했다. 전원하기 전 MRI 촬영과 집도의 면담을 신청했으나, 집도의가 면담을 회피했고 이후 병원 법무팀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자 회진을 왔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볼트를 신경위에 박아 재수술한 것에 대해 집도의가 “보험이면 보험, 돈이면 돈으로 배상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으며, 현재 여전히 통증이 가시지 않고 염증 수치 또한 높아 2차 병원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것이 조 씨 측 입장이다. 또한 조 씨 측은 지난해 9월 말부터 올해 2월 초까지 5개월 가량 회진을 오지 않는 등 병원 측이 적극적으로 진료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씨는 수술 이후 마비 증상을 겪었던 것이 두려워 다른 병원을 찾아갔으나, 다른 병원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현 상태로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하기 어려우므로 처음 수술을 했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 씨는 다시 A 병원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조 씨는 “수술 중 실수로 고생을 겪었던 병원에서 다시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았으나, 마비증세가 올 것이 우려돼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괜찮다고 하지만 여전히 극심한 염증과 통증을 겪고 있다. 끝까지 모든 치료를 병원에서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반면 병원 측은 환자가 현재 호전된 상태로 보전적 치료 외 특별한 치료가 없기 때문에 퇴원을 하고 전원하거나 외래치료를 받으라는 입장이다. 급성기 치료가 끝나 거동이 가능하므로 현재 받는 통증 약물과 재활치료는 2차, 3차 병원에서 받으라는 것이다.
병원 측 관계자는 “250일 정도 입원한 환자다. 대형병원의 특성상 치료가 급한 급성기 치료환자나 중증환자가 많이 오는데, 그 환자분이 병실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환자들의 치료가 어렵다. 다른 병원 같으면 일주일 만에 퇴원시킨다. 협력병원으로 전원해 치료를 받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인데 왜 이를 거부하는지 모르겠다”며 조 씨의 장기 입원으로 인한 피해를 강조했다.
또한 수술 시 고정 기구가 신경을 건드려 재수술한 것에 대해 “수술을 할 때 신경을 건드리는 등 후유증이 있을 수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후 CT 촬영을 했다. 이를 통해 신경을 건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마비 증상이 올 수 있는 것을 확인해 다시 재수술을 통해 수정해준 것”이라며 “과실적인 측면이 있는지는 더 확인해봐야 알겠으나, 통상 있을 수 있는 후유증”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술로 인한 후유증 등은 의료과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해배상보험을 들어 제3자인 손해사정사에게 의뢰해 장애가 있는지 문제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수술 이후) 처음에 마비 증상이 있었으나, 현재 반신불구나 위험한 상황이 된 것이 아니고 거동이 가능한 상태다. 의료적 불만이 있는 것이지 장애나 이런 부분은 아니다. 장애 등급을 받을 경우 그것에 대해 보상을 해줄 수 있으나 현재 환자의 상태는 계속 좋아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병원의 주장을 조합해보면 대형 대학병원은 급성기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곳이므로 재활치료 등으로 인한 장기입원 환자를 받기 어려우나, 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키거나 협력 병원으로 회송할 방법이 없으므로 소송을 내걸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수술 시 의료과실을 인정할 수 없고, 보험회사의 손해사정사가 확인한 뒤 장애등급 등을 받았을 경우에만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 씨와 같이 대형병원과 환자 사이에 의료과실 분쟁 및 퇴거 소송이 진행될 경우 환자 측이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보험사의 손해사정사는 병원 측의 기록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A 병원 같은 대형병원과 소송 등에 휘말리게 되면 환자 개인 입장에서는 상대하기가 버겁다는 것이다.
한 손해 사정 관계자는 “병원 측에서는 과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척추 수술 중 나사(볼트)를 삽입하는데 신경을 건드렸다고 하면 그 자체로 과실로 평가받을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왕왕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통상적이고 빈번한 것이 아니다. 큰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는 비전문가이고 의료적 지식이 없으므로 의사의 의료과실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소송을 통해 전문변호사에게 조력을 받을 경우 가능하나 이는 환자 개인 입장에서 부담이 되고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송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는 병원에 계속 있으면서 절충하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의료과실이 아닐 경우 체납된 입원비 등은 내야 하지만, 의료과실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입원해 있는 것이 좋다. 또한 재수술 이후 상태가 회복된 것인지 후유증이 남아있는 것인지 다른 병원의 전문가를 통해 면밀히 판단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의료분쟁, 중재원 운영에도 여전히 ‘다윗과 골리앗’ 싸움? 정부도 끊이질 않은 의료분쟁에 난처한 입장이다. 급기야 설립 6년 차에 접어든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중재원과 중재 제도가 소송 부담만 반영돼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제대로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중재원은 지난 2012년 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송에 대한 환자의 부담 증가를 막고 의료인의 안정적 진료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중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의료분쟁 조정성립률은 94.1%이며, 사건 처리 기간은 90일(최대 120일) 이내다. 비용과 시간이 오래 투자되는 소송이 부담스러운 환자 입장에서는 특히 중재 제도가 절실한 셈이다. 그러나 사실상 유일한 의료사고 피해 구제 기관임에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의료분쟁에서 환자는 여전히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상금 등 중재원의 조정 내용을 살펴보면 환자 측의 피해구제와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조정제도가 만들어지고 환자들이 소송까지 가지 않게 된 부분은 나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재원의 성과를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정성립 내용을 보면 합리적인 배상금액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비용 및 시간 등 소송에 대한 부담감으로 환자들이 포기하기 때문에 조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 민법 체계가 피해자들이 상대방의 잘못과 과실을 입증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환자들은 전문가가 아니고 정보도 병원이 갖고 있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전문영역에 정보도 없는 환자가 이를 입증할 수 없다. 입증책임 전환을 통해 과실추정의 원칙으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과실이 있다고 본 뒤, 행위자인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