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나경원 박진 후보의 공동유세 장면(위)과 민주당 정동영 후보의 유세장면.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18대 총선의 최대 관심사인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정치생명을 건 차기 대권주자들의 승패도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과거 어느 총선보다 무소속 돌풍이 거센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호남 텃밭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 명운과 맞물린 ‘친박연대’의 총선 성적표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호남에서 생환할 수 있을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또한 노선투쟁으로 분열된 진보세력의 진검승부 결과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충청권 맹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여부도 이번 총선의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1 집권당 과반 확보 여부
4·9 총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단연 ‘의회 권력을 어느 세력이 장악하느냐’다. 18대 국회와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의 5년 국정 청사진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정국 주도권 향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150석) 확보를 1차 목표로 삼고 있지만 내심 170석 안팎의 안정적 의석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제1야당으로 전락한 통합민주당은 대선 완패 후유증으로 당초 70~80석을 예상했으나 새 정부의 인사파동 및 한나라당의 권력투쟁 등으로 민심이 이반되고 있는 호재를 틈타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한 상태다.
한나라당이 안정적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경우 정국은 ‘여대야소’로 재편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88년 이후 20년 만에 집권 세력이 의회 권력까지 장악하는 것으로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진기록도 남기게 된다. 지난 17대 총선 때 ‘탄핵’ 역풍으로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간신히 과반수(152석)를 넘기긴 했지만 이듬해 4·30 재·보선에서 완패해 의회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진 못했다.
민주당이 10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하고 기타 야당이 50석 이상을 가져갈 경우에는 또다시 ‘여소야대’ 정국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게 될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명분 삼아 ‘의원 빼가기’나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에 한바탕 격랑이 일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대선에서 완승한 이후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왔던 한나라당은 선거전에 돌입하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0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의 인사파동과 내부 권력투쟁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고 대운하 공약과 관련한 내부 혼선으로 야권의 집중적인 공세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선거전에 돌입하자마자 ‘돈 선거’ 사건 등이 터지면서 과반 의석 확보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에 대한 예상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60%대를 웃돌았지만 최근에는 40% 중반에 머물고 있고 한나라당의 ‘안정론’과 야당의 ‘견제론’에 대한 응답자도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한나라당의 안정적 과반 확보 전략에는 빨간불이 켜졌지만 전체 총선 판세를 감안하면 과반 의석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선전하고 있는 ‘친박연대’ 또는 ‘친박 무소속 연대’가 돌풍을 일으킬 경우 과반 의석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이들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2 차기 대권주자 생존율
정치생명을 담보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여야 거물급 차기 대권주자들의 생사도 핵심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한나라당 내 유력한 차기주자로 부상한 정몽준 최고위원은 서울 동작을에서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또 서울 은평을에서는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당권과 대권을 노리고 있는 이재오 의원과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격돌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차세대 정치리더를 꿈꾸고 있는 박진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대권 전초전을 치르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이들 차기주자들이 벼랑 끝 승부를 선택한 만큼 선거 결과에 따라 대권 명암도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승리한 사람은 당내 입지를 확보하고 차기 대권레이스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반면 패한 사람은 대망론은 물론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28일 현재까지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정 최고와 문 대표는 선전하고 있는 반면 정 전 장관과 이 의원, 손 대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최고는 정 전 장관에게 적게는 5%포인트, 많게는 20%포인트 가까운 지지율 격차를 보이고 있고 문 대표도 이 의원에게 10~20%포인트 정도의 지지율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손 대표는 박 의원과의 지지율 차이(10~15%포인트)를 좁히지 못하면서 막판까지 힘든 선거전을 예고하고 있다.
야권의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는 천정배 김근태 한명숙 의원과 추미애 전 의원은 높은 인지도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경쟁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고 있어 생존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직접 총선에 출마하진 않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는 강재섭 대표와 강금실 최고위원은 총선 성적표에 따라 대권 명암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도 한나라당을 탈당한 친박연대 등 자신의 측근들이 얼마나 생존하느냐에 따라 당내 입지 및 대망론의 향배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 손학규 정동영 정몽준 문국현 | ||
호남의 정신적 지주인 DJ와 영남 맹주로 자리매김한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이 이번에도 영·호남에서 통할지 여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친정’ 격인 당에서 측근들이 대거 축출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DJ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장관과 차남 김홍업 의원, 신건 전 국정원장 등이 비리 전력자로 분류돼 공천 심사조차 받지 못했고 동교동계 인사들 또한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친박계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영남권에서만 10여 명의 현역이 공천에서 탈락했고 비례대표의 경우에도 이정현 전 특보(22번)와 김옥이(21번) 당 상임전국위원 2명만 당선 안정권에 배정 받았다.
개혁·쇄신이라는 공천 명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영·호남 최대 주주이자 맹주를 자임하고 있는 두 사람 입장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공천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DJ가 “민주당 지도부가 약속을 어겼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나 박 전 대표가 “속았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은 각 당의 주류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호남의 정서를 염두에 둔 제스처로 풀이된다.
친정에서 외면당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치적 버팀목이었던 영·호남 텃밭을 기반으로 절치부심 설욕을 벼르고 있다. 박 전 장관과 김 의원은 각각 전남 목포와 무안 신안에서 무소속 신화에 도전하고 있고 동교동계 맏형 격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역시 광주 북갑에서 친정 후보를 상대로 재기전을 펼치고 있다.
친박계도 친박연대 54명과 무소속 연대 15명 등 총 69명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영남권에 출마한 친박연대 홍사덕 엄호성 후보와 무소속 친박계 김무성 김세연 이해봉 이인기 후보 등은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거나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3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보존회장 김재학 씨가 피살된 사건도 ‘박근혜 동정론’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DJ와 박 전 대표 두 사람이 명예회복과 함께 영·호남 맹주 자리를 굳건히 사수할지 아니면 텃밭에서도 외면 받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할지 여부는 이제 전적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론조사 결과 DJ 측근들은 오차 범위 내에서 민주당 후보와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친박 인사들 중 김무성 의원 등 3~4명은 월등한 지지율 우위를 점하고 있고 10여 명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과연 영·호남에 불고 있는 두 거물의 바람은 태풍일까, 아니면 미풍일까.
4 이회창의 ‘충청전쟁’
충청권 선거전에서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성적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던 충청권은 이번에도 각당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의 ‘2강 구도’에 민주당이 바짝 추격하는 양상으로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다.
전체 24개 지역구 중 10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선진당은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가 내세우고 있는 ‘충청 중심론’에 탄력이 붙을 경우 절반 이상의 의석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선진당이 충청권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할 경우 이 총재는 새로운 충청 맹주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총선 후 보수세력 재편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가 3월 2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총선 뒤 상당한 정치 변동이 있을 것”이라며 “총선 이후 친박연대 등과 공조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배경에는 총선 후 정계개편을 겨냥한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5 양분된 진보세력 성적
두 진보진영의 진검승부 또한 4·9 총선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첨예한 노선 투쟁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결별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진정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생존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민노당은 당명 개정을 포함한 10대 혁신 과제를 발표하는 등 ‘21세기 새로운 진보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기치로 내걸고 있고 진보신당은 ‘진보가 새로워지면 민생이 바뀝니다’라는 총선 슬로건을 앞세워 새로운 진보세력 대표주자임를 표방하고 있다.
양 당의 혁신 경쟁과 주도권 전쟁은 총선 성적표에 따라 명암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당이 지역구 의원을 많이 배출하고 또 정당 득표율을 높이느냐에 따라 1차 승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민노당에서는 진보진영 유일의 지역구(경남 창원을) 의원인 권영길 의원이 오차 범위 안팎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고 진보신당의 대표주자인 노회찬 공동대표 역시 서울 노원병에서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를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가고 있다. 양당 모두 지역구 의원 배출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나뉘면서 지난 17대 총선과 같은 높은 득표율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민노당이 앞서고 있으나 여러 명의 비례대표가 나올 가능성은 양 당 모두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