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했던 전력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 ||
부자지간에도 나눠 가질 수 없는 게 권력의 속성. 그동안 야당 생활을 하면서 참아왔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던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이제 ‘양보의 미덕’이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의 피 튀기는 서바이벌장으로 한나라당을 내몰고 있다.
그래서 이재오 정몽준 의원 등 차기 당권과 대권을 노리는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이번 총선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는 또한 향후 당권 구도를 결정하는 ‘거푸집’일 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4·9 총선 결과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펼쳐질 한나라당의 당권 구도를 예상해보았다.
지난 3월 중순까지만 해도 4선을 찍고 당권에 도전한 뒤 대권 장정에 나설 장밋빛 희망에 부풀었던 이재오 의원. 그는 불과 한 달여 만에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지난 4월 4일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2일 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오 의원은 문국현 대표에게 밀리고 있다. 동아일보-SBS 조사에서 문 대표는 49.9%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이 의원은 33.4%에 그쳤다.
하지만 이 의원 측은 “기존 여론조사와 달리 자체 조사나 여의도연구소 조사 등에서는 역전이 되었다는 결과도 있는 만큼 뚜껑을 열어보면 1000표 차이로 우리가 이길 것”이라며 자신에 차 있다. 이런 이 의원 측의 셈법은 여론조사 결과의 오차범위가 무려 8%포인트 남짓에 달해 해당 선거구 유권자의 표심을 정확히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 때문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의원의 생환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지표가 그의 약세를 말해주고 있다. 만약 이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떠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럴 경우 이 의원이 원외에서 재기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다. 여기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이 의원에게는 ‘친박그룹’ 같은 응집력 강한 계보를 이끌 만한 리더십이 없었다는 평가가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의 파워는 그동안 경선-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쌓아온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서 나온 다분히 위로부터의, 즉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후광 뒤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이재오 계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통령이 경선-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했던 일종의 돌격대로서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필요 없어졌다. 그런데 이 의원이 대선이 끝나면서 이루어진 권력 이동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수도권 공천자 55인의 이상득 부의장 불출마 공개 요구 선언이었다. 이 의원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명분과 원칙을 모두 잃어버려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그것은 계파를 이끌 만한 리더십이 없다는 논거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이재오 의원은 ‘이상득 파동’에서 한나라당 소장파와 이명박 대통령 양측에 협공을 당해 곤혹스런 입장이다. | ||
그런데 그는 소장파들로부터도 이 부의장 불출마 요구를 주도했다가 나중에 슬며시 발을 빼버린(정두언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의원 자신이 바른 길이니까 함께 갑시다라면서 나섰던 만큼 출마한다니 너무 황당하다’라며 ‘배신감’을 표출한 바 있다) ‘배신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런 안팎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이 의원이 만약 총선에 승리하지 못한다면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상득 파동’을 거치면서 그가 계보를 거느릴 만한 확실한 신뢰와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여론조사의 열세를 극복하고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이상득 부의장과 맞섰던 ‘상황’을 뛰어넘어 가장 유력한 차기 당권 주자로서 확실하게 그 위상을 굳힐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서울 동작을에서 정동영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권 후보와 맞서 여유 있게 앞서가고 있는 정몽준 의원. 그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조사 주체에 따라 편차가 적지 않지만 정동영 후보에 비해 14.8~31.7%포인트가량 앞서 있다. 그는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터진 MBC 여기자 성희롱 논란으로 화들짝 놀란 모습이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 성희롱 논란 여파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실 정 의원은 당 지도부의 ‘징발’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울산에서 편안하게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는 강재섭 대표와 동작을 출마 문제를 ‘상의’하러 갔을 때 여전히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 대표가 혹시 그가 변심을 할까봐 언론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출마를 확정시켜 버리자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게 동작을 출마는 ‘대사변’이었다. 본인 스스로 시인했듯이 이번 동작을 출마는 차기 당권을 위한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당권에 대한 일종의 확신이 있었던 듯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 계파를 견제할 필요가 있는 이상득 부의장으로서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고, 코드도 다른 박근혜 전 대표 세력보다 당내 지분은 거의 없지만 대중성이 있고 유연한 정몽준 의원을 당권까지 미는 게 순리라고 보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최근 정 의원이 탈당한 친박그룹의 복당 문제에 대해 찬성을 하고 있는 점과, 김무성 전 최고위원의 공천 탈락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이상득 부의장과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는 점도 이미 이재오 의원에 대한 견제를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런데 정 의원이 성희롱 논란 등의 여파로 이번 총선에서 생환하지 못한다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에 응했다가 철회하면서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던 상황과 비슷한 처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정 의원의 문제는 총선 승리가 아니라 ‘당심 얻기’에 달려 있다”라고 보고 있다.
▲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웠지만 대선과정 이명박 후보 지지로 돌아선 김형오 의원(오른쪽). | ||
현재로서는 이재오-정몽준 두 남자가 생환해온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차기 당권이 ‘대권 주자급’이 아닌 ‘관리형’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친다. 이에 대해 박희태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총선이 끝나면 바로 당권 경합이 있을 것이고, 합종연횡도 되고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당권도 총선 전과 후의 무게가 달라진다. 총선 전에는 공천권 때문에 당권 비중이 높게 평가되지만, 총선 후에는 그 비중도 약간 떨어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 해석은 대선이 아직 먼 상황에서 당장 차기 대권 주자들이 일합을 겨룰 가능성이 낮고, 당권의 무게도 예전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당권 주자 후보가 바로 김형오 의원이다.
그는 원래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웠지만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지지’로 말을 갈아탔다. 그래서 인수위 부위원장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박희태 의원 등의 중진들이 대거 낙천되는 가운데서도 부산에서 5선 공천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비교적 합리적 행보로 박 전 대표 측으로부터도 여전히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이상득-박근혜 연합군’이 이재오 계파와 맞서기 위해 아직 당내에 착근하지 못하는 정몽준 의원 대신 무난하고 합리적인 김 의원을 내세워 이명박 정부 초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