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당권전쟁의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박상천 송영길 박지원 추미애 당선자(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권’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기존 주주들은 대리인 등을 통해 당권투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생환한 중진들은 당내 입지 구축과 신주류 부상을 꿈꾸며 치열한 당권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다. 총선 전쟁이 끝나자마자 내부 권력투쟁 소용돌이에 휩싸여 전운이 감돌고 있는 민주당 당권전쟁 속으로 들어가 봤다.
18대 총선은 야당 거물급들의 생사와 맞물려 민주당 권력지도에도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몰고오고 있다. 손 대표를 비롯한 정 전 장관, 김근태 의원 등 그동안 민주당(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포함)을 이끌어 왔던 대주주들과 계파 중진 의원들이 대거 낙마를 했기 때문이다.
‘정치 1번지’인 종로에 도전했다가 석패한 손 대표는 초라한 수도권 성적표에 따른 책임론에 직면해 있다. 개혁공천을 명분으로 한 ‘구주류 숙청’ 전략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지만 자파 인사들이 총선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해 2선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손 대표도 총선 후 스스로 ‘전대 불출마’를 천명한 상태다.
지난해 대선 때까지만 해도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었던 정 전 장관은 계파 의원 상당수가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고 정청래 노웅래 의원 등 핵심 측근들도 총선에서 패배해 그야말로 ‘멸문지화’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 전 장관은 당권 도전에 뜻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정치권을 떠나 해외 체류 등을 통해 ‘재충전’을 하며 후일을 도모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화 세력의 대부’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 전 장관과 대권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민주개혁 세력을 이끌었던 김근태 의원 역시 정치생명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 의원 자신은 정치신인(신지호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목희 이인영 우원식 이기우 의원 등 자파 의원들도 대거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노 중진인 한명숙(경기 고양 일산동) 신기남(서울 강서갑) 유인태(서울 도봉을) 의원과 동교동계 좌장격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광주 북갑)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전남 무안·신안) 의원 등도 총선 고개를 넘지 못했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반증인 동시에 향후 민주당 당권 투쟁이 더욱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구여권 실세였던 거물들의 씁쓸한 퇴장이 예고된 가운데 절치부심 재기를 노렸던 또 다른 중진 거물급들은 이번 총선을 통해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민주당 텃밭(전남 고흥·보성)에서 여유 있게 승리한 박상천 대표는 상당수 측근 인사들이 비례대표에 당선돼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상태고 ‘DJ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전 장관(전남 목포)도 국회 입성에 성공, 복당 의사를 밝히며 동교동계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추다르크’라는 애칭을 얻고 있는 추미애 전 의원(서울 광진을) 역시 DJ와의 막역한 관계를 감안할 때 ‘신(新) 동교동계 부활’ 움직임에 동참하거나 독자적으로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범동교동계로 분류되고 있는 문희상 정세균 의원도 차기 당 대표 1순위로 거론되고 있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강금실 최고위원과 개혁성향이 강한 천정배 김부겸 송영길 의원도 차기 당권에 근접한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결국 정동영 전 장관과 김근태 의원 등 과거의 주류 세력들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을 계기로 손 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주류와 구 민주계, 동교동계가 차기 당권을 놓고 숙명적인 대격돌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정·김 양대 ‘주주’의 2선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지분확보 경쟁과 맞물린 군소 계파들의 이합집산 현상도 당권 투쟁의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손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는 ‘공천 혁명’의 여파를 몰아 당내 주류세력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1년 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혈혈단신으로 민주당 대권레이스에 동참한 바 있는 손 대표는 개혁 공천과 총선을 거치면서 상당한 당내 지지기반을 확보한 상태다.
신계륜 전 사무총장을 비롯해 우상호 김영주 정봉주 의원 등 최측근 인사들이 패하긴 했지만 지난해 대선 경선 때 자신을 도왔던 송영길 김부겸 조경태 전병헌 신학용 의원 등이 금배지를 사수해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또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성남 박은수 최영희 송민순 전혜숙 정국교 전현희 서종표 후보 등도 손 대표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고 있다.
손 대표의 경우 자신은 이번 전대에 불출마하더라도 측근 인사를 지원해 신주류가 당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막후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3선 고지에 오른 김부겸 송영길 의원 등 핵심 측근들을 내세워 당권 장악에 나서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개혁성향이 강한 강금실 최고위원이나 천정배 의원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당 대표로 지원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계와 구 민주계, 동교동계 등도 차기 당권을 겨냥해 ‘전투 모드’로 돌입한 상태다. 특히 지역구 공천과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정동영계와 동교동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권 장악에 ‘올인’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정동영계는 생환한 이석현 박영선 최규식 우윤근 강창일 문학진 김춘진 의원 등을 중심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고 동교동계는 DJ의 복심인 박지원 전 장관을 정점으로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되살리겠다는 방침이다. 구 민주계는 박상천 대표를 중심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게 된 최인기 박주선 김충조 신낙균 김성순 안규백 김유정 당선자 등이 당내 입지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계와 동교동계, 구 민주계 등은 호남권을 정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들 계파들은 공천파동과 총선을 거치면서 손 대표 중심의 신주류 측에 넘겨준 당내 주류 자리를 다시 되찾아야 된다는 데 ‘의기투합’하고 있는 분위기다. 호남권 계파들이 또다시 갈등을 빚게 될 경우 당권은 신주류 측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공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박 전 장관을 중심으로 호남권 계파 수장들은 총선 후 물밑 접촉을 통해 향후 당내 권력구도 등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살리고 대안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호남권 계파에서 차기 대표를 추대해야 한다는 게 이들 호남권 계파들의 논리다.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호남권 제 계파가 의기투합해 범동교동계인 문희상 의원이나 정세균 의원, DJ와 막역한 관계이면서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추미애 전 의원을 차기 대표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동영계 일부 의원들도 정 전 장관이 중장기적으로 대권 플랜을 펼치기 위해서는 ‘동교동계 등 호남권 계파와 손잡고 후일을 기약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손 대표의 당권 불출마에 관계없이 어느덧 민주당 주류 세력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신주류 측에 맞서 호남권 제 계파들이 ‘당권 탈환’의 당위성에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 주변에서 당내 권력투쟁이 본격화될 경우 호남권 전체를 지지기반으로 한 이른바 ‘신 동교동계’라는 새로운 계파가 형성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차기 당권을 놓고 손학규계와 호남권 제 계파들이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총선에서 생존한 친노(친 노무현) 그룹의 행보 또한 당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신기남 유인태 유시민 의원 등 대표적인 친노 인사들이 대거 탈락했지만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최철국 김재윤 김종률 의원 등 소장파 친노 그룹이 상당수 생존했기 때문이다.
이들 친노 그룹은 17대에 비해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됐고 당내 기반도 취약하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독자적으로 당권에 도전하기보다 손학규계나 호남권 계파들의 치열한 당권 투쟁을 지켜보면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총선 후 3개월 내에 전대를 치르기로 돼 있어 7월 초가 개최시한으로 잡혀 있다. 하지만 손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고 지도부 공백을 최소화하고 하루빨리 당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데 제 정파가 공감하고 있어 전대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실제로 민주당 주변에선 18대 국회가 개원(6월)하기 전인 ‘5월 말 전대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을 이끌 새 선장은 과연 누가 될까. 총선의 포연이 사라지기도 전에 민주당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