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1위를 독주하고 있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캠프 역시 ‘문전성시’다. 각계 유력 인사들이 앞 다퉈 문 후보 측으로 합류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초유의 상황에서 인수위 없이 바로 국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점도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차기 정권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 기간 벌어졌던 줄 대기 현상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문재인 대세론’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재인 캠프 사무실에서 가진 영입인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인텔 수석 매니저를 역임한 유웅환 박사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문재인 캠프에 몸담고 있는 한 친노 의원은 얼마 전 비공식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 최대 과제는 적폐 청산이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의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했던 일들을 뿌리 뽑고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우선 공직사회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기 위해선 큰 틀의 인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내부적으론 이를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공직사회는 요동을 쳤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내부에선 부처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흘러나왔다. 해수부의 한 공무원은 “최근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에 적극적인 것을 두고도 차기 정권,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전 대표를 의식했다는 얘기가 나돌더라. 사실이 아니지만 이런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해수부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기류가 팽배하다”고 귀띔했다.
기자와 만난 경제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 역시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지난 10년간 고속 승진을 하며 동기들 중 선두주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심각하게 퇴사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어느 정도 (정권) 혜택을 본 것 같다. 그래서 내부의 적도 많다. 정권이 바뀌어 그들이 인사권을 쥐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그 전에 옮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몇몇 공무원의 경우 연구소나 국제기관 등에 파견을 신청하며 일단 몸을 피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차기 정권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이들 중 일부는 문재인 캠프 인사들과 접촉하며 ‘살길 찾기’에 나섰다. 앞서의 경제부처 공무원은 “친분이 있는 교수가 캠프에 들어갔다. 그를 만나 잘 설명을 드렸다”라고 말했다. 무슨 설명이냐고 묻자 그는 “박근혜 정부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는 떼야 하지 않겠느냐. 문재인 캠프에 대한 ‘줄대기’라기보다는 생존 차원”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속한 부처와 관련된 문 후보 공약 등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은밀히 움직이는 공무원들도 포착됐다. 정부부처에서 국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공무원은 “공무원 신분이니 캠프와 접촉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윗선에서 압박이 내려온다. 대선 때면 인맥을 총동원해야 한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보좌관을 통해 조금씩 정보를 얻어 보고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대의 상황도 있다. 경제부처의 또 다른 고위급 인사는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승진에서 한 번 ‘물’을 먹었을 뿐 아니라 주로 한직을 맴돌았다. 이를 두고 관가에선 ‘친노 꼬리표’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잠시 파견을 다녀왔고, 그 후 ‘실세’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부터 잊혔다.
그런데 문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다시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내부에선 절치부심했던 그가 돌아와 칼을 휘두를 가능성도 나온다. 이 부처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정말 세상모를 일이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선배가 요직으로 돌아올 것이 기정사실로 거론된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와 밥을 먹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고 하는 이들이 꽤 많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할 말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얼마 전 SNS 상에는 문재인 캠프의 ‘섀도 캐비닛’이라는 제목의 명단이 화제를 모았다. 국무총리와 주요 부처 장관의 이름이 실명으로 적혀 있었다. 대부분 문재인 캠프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었다.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이 리스트에 공직사회는 또 다시 희비가 엇갈렸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예가 대표적이다. 김 소장이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될 것이란 얘기가 나돌자 그와 친분이 있는 공정위 간부들이 반색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버전의 내각 명단이 정치권에선 공공연하게 나돈다. 한 퇴직 공무원은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교수와 친하다는 이유로 장관 후보자로 물망에 올랐다. 그 교수 역시 금융기관장 하마평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의 한 친노 의원은 “지금 나도는 것 모두 소설이다. 아직 당내 경선도 치르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꺼낼 때가 아니다”라면서도 “차기 대통령에게 시간이 부족한 것은 맞다. 그러다보니 문 후보가 지금 영입하고 있는 캠프 인사들의 입각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군 역시 문 후보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재인 캠프엔 180여 명의 군 출신 인사들이 합류해 있다. 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이들이 군 정책과 인사 등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일부 고위급 장성들의 경우 이미 요직에 낙점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한 전직 장성은 “지난 10년 동안 단행된 군 인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군인들이 적지 않다. 특정 라인이 요직을 독점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군 개혁 차원에서 문 후보가 이를 시정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럴 경우 군 인사의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검찰 내부엔 긴장감이 역력하다. 그동안 문 후보가 여러 차례 검찰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던 이유에서다. 문 후보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 입장에선 가장 민감한 사안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 후보의 사법개혁 공약 등에 관련하고 있는 인사는 “기본적으로 검찰이 지나치게 정치화돼 있다는 게 문 후보 인식이다. 노무현 수사, 최순실 국정농단 등에서 나타난 검찰 행태에 강하게 비난했다. 책(<검찰을 생각한다>)도 내지 않았느냐. 인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가 중점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개혁안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