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시설을 처음 발의한 로쉬(왼쪽)와 예켈. | ||
과거 나치정권 시절 학살당했던 6백만 유태인을 ‘추모’하는 한편 더 나아가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건립되는 이 기념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대한 규모의 공사다.
특히 범죄국이 자국의 과오를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사실. 특히 같은 패전국인 일본의 태도와 확연히 다른 모습에서 우리로선 착잡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독일 정부가 보여주었던 나치정권에 대한 반성, 유태인 학살에 대한 책임의식 등은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으며, 이런 맥락에서 독일 곳곳에는 유태인 수용소나 자료실, 박물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기념비를 설립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이번 기념비 설립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독일 정부가 나서서 유태인을 추모하는 공공장소를 마련한다는 계획안은 지난 1988년 언론인 레아 로쉬와 역사학자 에버하르트 예켈을 중심으로 결성된 ‘유태인 학살 기념비 설립 추진위원회’에 의해 처음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11년 동안 이어진 지리한 공방 끝에 1999년 독일 연방의회는 비로소 기념비 설립안을 최종 확정했으며, 그 후로도 부지 선정, 예산 책정 등의 문제에 봉착해 한동안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모든 준비 과정을 마치고 지난 6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인 오는 2005년 5월8일 개관식을 갖게 될 예정이다.
1만9천㎡의 방대한 부지에 세워지는 총 2천7백 개의 콘크리트 기념비는 미로 형태로 빽빽하게 세워지며, 오픈 형태로 이루어져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폭도들에 의해 발생할지 모르는 파손에 대비해 각 기념비는 특수 라커로 칠해지며, 곳곳에 안전요원을 배치해 보호에 만전을 기하게 될 예정이다.
동남쪽 지하에는 ‘자료실’ 및 ‘전시실’을 마련해 놓아 이 곳이 단순한 추모만이 아닌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되도록 하고 있다. 이 곳은 그림에서와 같이 ‘로비 및 침묵의 방’ ‘이름의 방’ ‘운명의 방’ ‘현장의 방’ 등 총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이기도 한 이 곳에서는 집단 학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소개되며, 벽면에는 6백만 희생자를 대표하는 6명의 유태인 초상화가 걸리게 된다.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 바닥에는 희생자들의 증언이나 기록 등이 새겨진다.
2. 이름의 방(Raum der Namen)
그동안 익명으로 남아있던 유태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 사람씩 프로젝션으로 벽면에 투영되며, 이와 동시에 스피커를 통해 각 희생자의 정보가 간략하게 소개된다. 희생자에 대한 정보는 예루살렘의 ‘유태인 학살 기념관’인 ‘지카론’의 도움을 받았다.
3. 운명의 방(Raum der Schicksale)
지상에 있는 추모 기념비와 동일한 형태의 콘크리트 기념비가 소량 전시되며,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몇몇 유태인 가족들의 이야기가 전쟁 전후로 나뉘어져 기록된다. 이로써 나치에 의해 유태인의 문화가 어떻게 말살되었는지 알 수 있다.
4. 현장의 방(Raum der Orte)
유태인의 학살이 이루어졌던 게토, 총살장, 가스실 등에 대한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