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폐막되는 17대 국회와 함께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일부 스타급 국회의원들도 더 이상 원내에서 볼 수 없게 된다. | ||
17대 국회의 폐막(5월 29일)과 함께 여의도를 떠나는 이들 ‘전직’들은 과연 어떤 회한을 가슴에 담고 있을까. 그리고 또 의원 아닌 자연인으로서 어떤 새 꿈을 품고 있을까. 18대 국회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스타·거물 의원들의 ‘탈 여의도 구상’을 들춰봤다.
지난 1월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은 정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당시 일각에서는 대표적 ‘친박계’인 그의 불출마 선언이 ‘공천 탈락에 대비한 배수진이 아니었느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건 나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자신의 ‘소신 정치’를 강조했다. 실상 김 의원은 17대 국회가 시작될 당시부터 18대 총선 불출마를 결심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부터 갖고 있던 출간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불출마 선언 이후 책 집필에 몰두했던 김 의원은 얼마 전 펴낸 <굿바이 여의도>라는 에세이에 12년 동안의 정치여정을 담아내기도 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김용갑 의원의 최대 화두는 아마도 ‘아내’인 듯하다. 실제로 김 의원은 요즘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말에는 아내와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김 의원의 ‘극진한 아내사랑’은 과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지난 9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의 간병기를 담은 <아내 얼굴을 화장하는 남자>란 책을 내기도 했다.
의원직에서는 물러나지만 한나라당 상임고문직을 갖고 있는 김용갑 의원은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청와대 상임고문단 만찬에서 그는 친박인사 복당 문제에 대해 “박 전 대표 하나 끌어안지 못하느냐”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또 14일 열린 한미 FTA 청문회에서도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30개월 (안 된) 소 먹는 것은 잔인하지 않나”고 발언하자 “(인간 복지를 걱정해야지) 왜 소의 복지를 그렇게 걱정하느냐. 김 장관은 소의 복지장관이냐”고 질책하며 “장관들이 말을 함부로 뱉고 있어 문제다. 그러니 자꾸 인적 쇄신론이 나오는 것 아니냐”라고 호통을 쳤다. 김 의원실 이창호 보좌관은 “앞으로는 의원 신분이 아니니 언론 접촉 창구는 좁아지겠지만 하실 말씀은 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예상치 못한 낙선의 쓴잔을 마셔야 했던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때 동아대 교수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다만 당분간 집필활동에 전념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근황의 전부. 박경은 보좌관은 “책이 될지, 보고서 형식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으로서 국가전략과 비전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서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주로 부산의 당협위 사무실과 자택을 오가며 책을 집필 중인 박형준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부산의 영상산업 발전과 관련되기도 한 ‘부산콘텐츠마켓’(BCM)에 참석해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보였다.
선대위 대변인으로 활약한 대선 과정에서의 공을 감안해 당내에서는 박 의원에게 배려 차원의 당 지도부급 직함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때 사무총장직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7일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임태희 정두언 주호영 의원 외에 박형준 의원을 따로 불러 식사를 한 것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 챙기기’에 다시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 박경은 보좌관은 “당에서 고려를 해주는 건 고맙지만 의원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것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자리에 연연하진 않지만 이명박 정부 내에서 분명한 자신의 역할을 해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1년간 객원 연구원 신분으로 공부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같은 계획은 지난 3월 불출마 선언 뒤 결심한 것.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 의원은 하버드대에서 정주영 현대 회장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를 할 계획이라는 후문이다. 추후에 관련 내용을 책으로 낼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의원들은 총선 준비에 바빴지만 그는 지난 몇 개월간 먼저 현지에 유학을 다녀온 이들과 관계자들을 만나 자문을 얻기에 바빴다고 한다.
당분간은 여의도를 떠나 있을 그이지만 당내에서는 서울시장 잠재 후보군으로 이계안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어 훗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정계에 복귀할지도 관심사다.
노무현 정부에서 ‘친노 3인방’으로 불리던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공교롭게도 모두 이번 총선에서 금배지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 전 총리는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고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은 치열한 선거전 끝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비록 이들 3인방은 ‘여의도’를 떠나지만 대표적인 친노 인사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들의 행보에는 여전히 정가의 비상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과연 이들 세 사람은 ‘여의도’ 밖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우선 한 전 총리 측은 “당분간 쉴 것”이라며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친노 모임을 주선하는 등의 최근 행보를 두고 정가 일각에서는 ‘친노 재결집’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현역 및 원외 인사들 20여 명의 점심 모임을 바로 한 전 총리가 주도했기 때문. 이 자리에서 총선 이후 당의 진로 등에 관한 얘기도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측은 이에 대해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일축했다.
조한기 보좌관은 “의원께서 연배도 있고 총리직을 맡았기도 해서 그저 주선만 했을 뿐이다. 언론에서는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의 전체적 상황이 특정 계파가 모여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7일 김해 봉하마을에 찾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인사차 방문한 것이라는 한 전 총리 측 설명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총선 이후 한동안 낙선 인사를 계속해온 한 전 총리는 앞으로는 과거 옥중 생활을 하던 남편과 나눈 서간문 재정리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책으로 내기도 했던 내용을 보완해 재출간할 계획이라고. 조 보좌관은 “옥중에서 주고받은 편지가 500통이 넘는데 이를 정리해 증보판을 낼 계획”이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본인이 따로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위 왼쪽부터)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아래는 심상정(왼쪽), 노회찬. | ||
지난 총선에서 주호영 의원과 맞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 지역(수성 을)에 도전장을 냈던 유시민 전 장관 역시 한동안 낙선 인사를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김희수 특보는 “대구 지역뿐 아니라 기존의 지역구였던 고양의 도와주신 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유 전 장관은 조만간 대학 강연활동을 통해 강단에 복귀할 계획.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대구·경북 지역의 한 대학과 강의를 논의 중이라고 한다. 또 이와 관련된 저서도 집필할 계획이라고. 유 전 장관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등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 작가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유 전 장관이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평전을 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유 전 장관 역시 한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오랜 바람을 밝힌 적도 있다. 현재까지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나 앞으로 이같은 바람을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한다. 유 전 장관은 “대통령 물러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몇 년 더 지나서 써봐야겠다”고 언급했다.
진보신당을 이끌고 있는 노회찬·심상정 의원의 앞날도 관심사다. 당의 두 간판급 의원들의 낙선으로 진보신당은 침체 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돼 왔다. 하지만 낙선과는 별도로 이들 인사들은 계속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요즘도 하루에 두세 차례의 강연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심상정 의원은 선거 이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한다.
김성회 보좌관은 “당이 창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 논의할 것들이 많다. 18대 국회가 들어서면 앞으로 진보진영의 개편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을 것으로 본다. 야권 전체가 무기력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도권 안과 밖을 떠나 국회가 국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원외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두 의원 모두 한·미 FTA 문제로 인해 여느 의원들보다 더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FTA 청문회가 열리던 지난 13일 부산세관 앞에서 부산항 냉동창고 보관 쇠고기 통관 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부산항에는 지난해 10월 등뼈가 발견된 뒤 검역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5300톤 중 상당량이 냉동보관 중이다. 정부가 고시를 강행할 경우 이 쇠고기가 곧바로 통관절차를 밟게 될 것을 막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 노 의원은 이제는 의원 자격이 아닌 진보신당의 ‘당원’ 입장에서 한·미 FTA 저지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