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따르면 최근 자진 귀국한 김 씨의 아내 이보라 씨는 6개월∼1년치의 통화 기록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제출한 통화 기록에는 김경준 씨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인신보호 청원 항소심을 취하하고 국내 송환을 결정할 당시를 전후해 이 씨와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 씨 등이 국내 정치권 인사와 통화한 횟수와 시간 등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획입국설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기획입국 논란과 관련한 몇 가지 변수가 드러나 검찰 수사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검찰 수사에 당당히 맞서왔던 김 씨는 사실상 ‘백기투항’ 모드로 전환한 상태다. 김 씨는 최근 자신이 투자자문회사 BBK의 지분을 100% 갖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자라는 내용의 한글 이면계약서도 위조한 것이라는 취지의 자술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부인 이 씨도 최근 귀국해 국내 정치인과의 통화기록을 제출하는 등 검찰 수사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이 씨는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Y 씨와 전직 국정원 직원 J 씨, 정동영 전 장관과 가까운 L 변호사 등과 송환 전부터 접촉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최근 Y 씨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도 이 씨의 진술과 이들이 기획입국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5월 11일 Y 씨와 L 변호사 등 3~4명에 대해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또 미 법무부로부터 김 씨의 미국 연방교도소 접견기록을 넘겨받아 면회자 명단을 분석하는 등 기획입국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획입국 의혹 사건의 경우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가 다음날 19일 완료되는 점을 감안해 검찰은 이달 말이나 늦어도 내달 초까지는 수사를 마무리 짓는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입국과 관련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면서 검찰 수사에 가속도가 붙자 민주당은 바짝 긴장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다”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김 씨가 백기투항을 한 것이나 이 씨가 통화기록을 제출하는 등 검찰 수사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점, 검찰의 칼날이 정 전 장관 측근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 등 일련의 변수와 맞물린 검찰 수사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김 씨나 그 가족이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싸울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라며 “여권 핵심부도 이러한 김 씨 가족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회유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 5월 초에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이 김 씨를 접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꼼짝하지 않았던 검찰이 정 전 장관 측근들에게 기획입국 혐의를 씌우려고 한다면 거센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