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일어난 때는 11월1일 새벽녘이었다. 오사카 가와치나가노시에 살고 있던 사립예술대학 1학년생(18)이 집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43)를 칼로 찔러 죽이고, 중학생인 남동생(14)과 아버지(46)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벌어졌다. 소년은 일을 저지른 뒤 밖에서 여자친구(16)를 만나 차에 태우고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동승한 소녀 역시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기 위해 칼을 구입했던 것이 밝혀져,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소녀는 범행 동기에 대해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소년만은 나를 이해해 주었다. 서로의 부모를 죽이고, 소년과 살다 함께 죽으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 살인 동기를 해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나, 현재 사건의 단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소녀가 개설했던 홈페이지(사건 발생 후 폐쇄)다.
‘금기의 키스-부녀자의 기쁨’이란 제목의 이 홈페이지에는 소녀가 그동안 안고 있었던 고뇌의 단면들이 담겨 있었다. 홈페이지는 자신을 모델로 한 사진과 일기, 소설, 그리고 평소 생각들을 암시하는 많은 시들로 구성돼 있다.
‘자해’라는 제목의 사진에서 소녀는 하얀 손목에서 흐르는 엄청난 양의 피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정황으로 보아 소녀가 자살시도 직후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바로 밑에는 ‘깊은 생각없이 무턱대고 흉내낸 자해는 파괴주의일 뿐’이라는 자조적인 글이 붙어있다. ‘표적’이란 사진에서는 눈가를 검게 칠한 소녀가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을 혀로 핥고 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만의 소유로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설명글이 붙어있다. 그밖에도 입에서 하얀 액체를 흘리고 있는 ‘도리에 어긋남’이란 사진과, 손을 묶어놓고 움직일 수 없는 모습을 찍어 놓은 ‘속박’ 등 쉽게 볼 수 없는 사진들이 올라있다. 컴퓨터에 능숙했던 소녀는 암호를 모르면 볼 수 없는 홈페이지도 따로 개설해 놓고 있었다고 한다. ‘유혈사진관 발열! 해체쇼!’라는 제목의 이 홈페이지에서는 5일 동안에 걸쳐 자신의 신체에 상처를 내는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자해 부위는 손목에서 시작해 발등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강도를 더해갔다.
▲ 소녀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자해 사진들. 맨위는 칼을 혀에 대고 있는 소녀의 모습, 위는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 아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푸딩을 먹고 있는 소녀의 모습. 현재 이 사이트는 폐쇄된 상태라고. | ||
‘머리가 좋은 당신
마음이 따뜻한 당신
한결같은 당신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당신
붙잡은 손이 멀어질 것 같으면
거짓말까지 하면서 뒷끝이 나쁘게 헤어지기보다는
차라리 둘이 같이 죽어버려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대가 아닌 당신이라면
함께 죽을 수 있는 상대로 남고 싶으니까’
죽음에 대한 동경을 그대로 읊어 놓은 작품도 적지 않다.
‘자 죽읍시다
죽읍시다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어요 (중략)
진정제도 울리는 진혼곡
죽어라 죽어라
빨리 숨을 끊어줘’ (제목 ‘강제 정사’)
그렇지만 그런 밝은 기분도 길게 가지는 못한 듯하다. 10월에 들어서자 몸상태가 나빠진 것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는 괴로움을 토로했다.
“소위 일반인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략) 왜 너희들은 그렇게 해서 그런 장소에서 무리지어 살 수 있는 거지? 그런 일로 추하게 크게 웃을 수 있는 거지? 그런 자기를 두렵다고 생각지 않니? 나는 태어날 별을 잘못 골랐어!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 거야”라고 씌어진 내용도 있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11월1일 “다녀오겠습니다”는 말 한마디만을 남긴 채 소녀의 일기는 끝이 나 있다.
소녀는 오사카 미나미카와치군의 신흥주택가에서 부모님과 할머니, 여동생과 살고 있었다. 부모 모두 교사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성적 또한 늘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자살에 대한 동경을 보였고, 중학교 3학년 때에는 부엌용 세제를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손목과 가슴에는 무수한 자살시도의 흉터들이 남아있다.
예대에 다니는 남자친구와는 부모들끼리 친분이 있는 어린시절 친구관계였다. 한 이웃주민은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의젓하고, 가족들간의 사이도 좋았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같이 캠프를 갔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10월쯤 만났을 때는 검은색 부츠와 온통 검정색 옷을 입고 있어서 놀랐다. 예대에 다니고나서부터 그렇게 이상하게 변했다는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소년은 어느날부터인가 ‘죽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말해왔고, 자해흔적도 보여줬다고 한다. 현재 소년, 소녀 모두 정신적인 불안정을 보이고 있지만,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갈 언동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나운영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