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즈미 총리 | ||
무슨 일이 있어도 연내 자위대 파병을 관철시키려는 일본 고이즈미 내각에 알 카에다의 엄중한 테러경고가 날아들었다. 이 경고가 절대 빈말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11월29일 이라크에서 일본 고위 외교관 두 명이 피살당하며 첫 테러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당초 12월5일 각료회의에서 자위대 파견 기본계획을 결정하려던 방침을 바꿔 12월8일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4일 전격적으로 자위대 1천여 명의 이라크 파병을 발표했다. 자국 외교관에 대한 공격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결정한 일본. 그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테러에 대처해 나가고 있기에 이토록 ‘자신만만’한 것일까.
지난 3일 <닛케이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이라크 자위대 파병을 둘러싸고 정부 내에 ‘함구령’을 내린 사실을 보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가와구치 외상 등에게 자위대 파견을 둘러싸고 협의한 내용에 대해 일체 비밀을 지켜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4일날 아침, 일본 정부는 육상자위대를 포함해 1천여 명으로 예상되는 병력을 연말과 내년 초에 이라크에 파병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자위대 파병 내용에 대해 이렇듯 전날 ‘함구령’을 내리면서까지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데는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할 경우 도쿄 중심부에서 일본인들에게 테러를 가하겠다’는 알 카에다의 경고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알 카에다의 ‘도쿄 중심지 공격’ 경고를 계기로 국제공항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등 이미 국내외 테러 경계령을 내린 상태다. 연내 파병을 서두르던 자위대의 발목을 잡았던 알 카에다의 일본 내 테러경고는 일본으로서는 전후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이었다. 종전 후 스스로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사랑하기로 작정했다는 일본인들에게는 이 경고는 너무나도 큰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의 주간지 <주간문춘>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현재 일본 경시청은 알 카에다와 연관되어 있거나 알 카에다를 어떤 식으로든 지원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인물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극비리에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경시청 출입기자에 의하면 이들은 위험도에 따라 1급, 2급, 3급의 셋으로 나뉘어 각각 등급에 따른 감시를 받고 있다.
우선 ‘1급’에 해당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24시간 감시와 미행이 따른다. 이들의 수는 약 20명에 이른다고 한다. ‘2급’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동 확인이 필요한 인물들로 이들 또한 ‘위험인물’로 분류된다. 마지막 ‘3급’은 일정기간 동안 부정기적으로 감시가 필요한 인물이다. 이 감시작업은 전국적인 규모로 실시되고 있다. 일본 경시청은 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이 살고 있는 해당지역 경찰당국에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감시를 지시하고 있다.
▲ 이슬람 전사의 모습. | ||
그렇다면 왜 일본법무성은 체첸 게릴라 조직원들을 추적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 당국이 체첸 게릴라가 일본에 몰래 입국했다는 확실한 정보를 입수한 것은 약 2개월 전. 당시 일본당국은 이들이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에 있는 러시아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자폭테러를 행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그곳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 대한 ‘테러경고령’이 발표되고 나서부터는 비단 러시아 관련 건물뿐만이 아니라 자국민이나 자국의 건물이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법무성은 경시청과 출입국관리소에 의뢰해 체첸 게릴라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만 이들이 위조여권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추적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성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체첸 게릴라들의 ‘수’. 일본에 잠입한 것으로 알려진 체첸 게릴라는 열 명. ‘10’이라는 숫자는 군대에서 최소 행동단위를 의미한다.
만약 일본이 주시하고 있는 이 10인의 조직원들이 일본에서 테러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9·11테러와 같은 대규모 테러나 1백kg을 넘는 폭탄으로 건물 전체를 파괴하는 테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폭탄은 50kg 정도의 고성능화약 폭탄. 만약 그들이 폭탄테러를 자행할 경우 두세 곳에 걸친 동시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정부는 알 카에다의 테러경고 이전에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국토와 일본인에 대한 테러위험도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전국민에게 알리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이미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테러가능성이 높은 순서부터 적색, 오렌지, 황색, 청색, 녹색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 발표하는 것과 유사한 제도다. 이 제도의 도입에 따라 실제로 테러가 발생했을 경우 정부조직의 비상연락망 및 단계별 대책이 수립되어 있다.
일본정부는 결국 자위대 파병을 둘러싼 알 카에다의 테러경고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철회하지 않았다. 대신 본격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더 철저히 준비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라크에서 우리 민간인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파병을 강행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의 ‘적극적인 행동’이 유일한 위안이자 ‘타산지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