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이라크 대통령이다” 미군이 공개한 체포 후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초췌한 그의 모습처럼 가족도 풍비박산이 났다. epa/앤빅 | ||
후세인 가문 몰락의 첫 종이 울린 것은 지난 7월22일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에서 미군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39)와 쿠사이(37), 그리고 쿠사이의 아들 무스타파가 사살되면서. 처참한 모습으로 사망한 두 아들과 손자는 8월2일 고향인 티크리트 가족묘지 ‘알우자’에 나란히 묻혔다. 당시 후세인 대통령은 두 아들이 사망하기 며칠 전 부관인 압드 함무드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추적을 중단하고, 이라크 출국을 허용하면 미군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들고 미군과 접촉했다. 그러나 미군측은 이 제의를 거부하고 부관인 함무드를 체포했으며, 마침내 우다이와 쿠사이도 미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던 것.
후세인 체포와 맞물려 미군에게 후세인 소재에 관해 상당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도된 두 번째 부인 사미라 샤흐반다르는 후세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알리(21)와 함께 현재 바레인에 은둔중이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사미라가 최근 프랑스 거주권을 획득해 제3국으로의 출국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세인은 도망 생활 와중에도 사미라와 매주 한 번씩은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미·영 첩보기관인 ‘드림팀’이 두 사람의 전화내용을 알아내 후세인의 잠복지를 추정해냈고, 이후 후세인 측근의 진술과 대조해 결국 후세인이 은둔해 있던 곳을 알아냈다는 설이 체포 당시 가장 유력하게 나돌았다.
후세인은 집권 당시부터 첫 번째 부인 사지다와 그 일가족 이외에는 여타의 가족사진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두 번째 부인 사미라는 얼굴은 물론 나이도 전혀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외신보도에 의하면 사미라는 후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금발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미라는 원래 이라크 항공사 회장의 아내이자 1남1녀의 엄마였다. 후세인이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그에게 한눈에 ‘찜’당한 뒤 백팔십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것. 사미라는 본처 사지다의 두 아들 우다이, 쿠사이와는 견원지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후세인의 사촌누이이자 첫 번째 부인인 사지다는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기 전 막내딸 할라와 입양한 두 아이를 데리고 예멘의 수도인 사나로 피신해 살고 있다고 쿠웨이트 신문 <알라이알아엠>은 보도했다.
후세인의 두 딸인 장녀 라가드(35)와 차녀 라나(33)는 자녀들과 함께 지난 1995년 7월31일 요르단으로 망명해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당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라가드와 라나 일행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라가드와 라나의 남편들은 1995년 이라크 정부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를 숨기고 있다고 서방 국가에 폭로했다. 이후 죄를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이듬해 이라크로 돌아갔다가 결국 살해당했다.
한편 후세인의 나머지 가족 중 사위인 자말 무스타파 압둘라 알티크리티와, 후세인의 형제이자 정보기관 책임자를 지낸 바르잔 이브라힘 하산 알티크리티, 내무장관을 지낸 와트반 이브라힘 하산 알티크리트 등은 이미 미군에 체포돼 구금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