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0년 평양에서 만난 남북 정상들. 9년째 답방의 약속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얼싸안으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모습. | ||
임동원 전 장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세 차례 만났는데 그 첫 번째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직전이었다. 당시 임 전 장관은 남북공동선언문의 초안을 마련하고 일정 등의 사안을 조율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평양을 방문했다. 임 전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첫인상에 대해 “갈색 점퍼차림의 복장, 굽이 높은 ‘키높이 구두’, 뚱뚱한 몸매, 머리칼을 올려 세운 헤어스타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표현했다.
회담 하루 연기된 사연
당시 장시간 얘기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김 위원장은 전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가끔씩 메모를 하면서 진지하게 임 전 장관의 말을 경청했다고 한다. ‘음습하고 괴팍한 성격파탄자’라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정중하면서도 화끈한 화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 스케줄이 하루 연기됐던 배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북측으로부터 정상회담 일정 연기 통보를 받은 것은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시점. 임 전 장관은 “북측은 ‘기술적 준비관계’로 불가피하게 하루 연기(6월 12일→6월 13일)하자는 요청을 해왔고 우리는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임 전 장관 등은 이를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영접을 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실상 북한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안전이었다는 것. 김 위원장과 관련된 일정은 북한 내부에서도 끝까지 보안이 유지되는 것이 상례였고 북측의 갑작스러운 일정변경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회담에 앞서 임 전 장관과 만났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출발시간과 동선 등 세부시간계획이 우리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에 다소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김 위원장은 “도착 일정을 갑자기 하루 앞당기거나 하루 늦춰서 혹시 있을지 모를 방해세력들에게 혼돈을 주는 방안을 강구해 두는 것도 좋겠다”고 언급했었다는 것.
정상회담 하루 연기 배경에 대해서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서울대 근대법학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강연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박 의원은 강연에 앞서 배포한 ‘6·15 정상회담은 어떻게 이뤄졌나’라는 원고를 통해 “특검수사에서도 밝혀졌지만 당시 평양 방문 일자가 하루 늦춰졌던 것은 송금 지연 때문이 아니라 남측 언론이 순안공항-평양 이동경로를 예측 보도하는 등의 보안 문제와 순안공항의 수리 미비가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전두환은 되고 김영삼은…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회담에 앞서 임 전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함께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 특사인 임 전 장관을 위해 김 위원장이 준비한 만찬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나온 얘기였다. 다음은 김 위원장의 당시 발언 내용.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 전직 대통령들도 함께 오시면 좋겠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안 올 것이다.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군대에 비상태세 명령을 내리는 등 국상 중이던 우리에게 적대적인 위협 조치를 취했다. 우리는 그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당시에 조문파동으로 남쪽이 떠들썩했다는데 그때 실제로 조문단을 파견한다고 했으면 오히려 우리가 곤란할 뻔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임 전 장관에게 자신의 서울답방에 대해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나의 서울방문 문제를 벌써부터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먼저 서울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게 하겠다”고 언급했다고 한다(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금수산궁전 참배를 요구하며 꺼낸 말). 이어 그는 “물론 나도 서울을 방문하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겠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으로 정치탄압을 한 것은 나쁘지만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고 경제개발을 해 남조선을 발전시킨 데 대해서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 6·15 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송이버섯 선물을 보이는 모습(위쪽)과 지난 12일 임동원 전 장관의 정상회담 8주년 축하 연설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회담 도중 1994년 7월 무산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하다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 경위’로 화제를 옮겨갔다고 한다. 임 전 장관의 평가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이 미리 준비한 자료를 참고해가며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명하는 스타일이라면 김정일 위원장은 두서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스타일이라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임 전 장관이 전하는 김 위원장의 발언 내용.
“김일성 주석께서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남북한 실질적 경협사업을 시작하자고 제의할 계획이었습니다. …주석께서 돌아가시던 바로 당일에도 묘향산으로 경제성원들을 불러 남북경협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협의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듣고 필요한 자료들을 검토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평양에 있던 저에게 ‘이제 내가 준비할 것은 모두 끝냈다’고 전화를 주셨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 반 뒤에 급사하셨습니다. 원래 주석께서는 서거하시기 4, 5년 전에 심장질환을 일으켰던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소련 클레믈린병원이 제공한 페이스메이커(심장박동기)를 설치했습니다. …당시 소련의 의학은 미국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었지요. 원래 페이스메이커를 설치하면 아무래도 혈액의 응집현상이 일어나 급사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방세계에서는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이후에는 미국에서 배워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는데… 그때 당시 소련 의료진은 아스피린을 권고하지 않았어요. 그냥 물고기만 많이 먹으면 된다는 기존상식에 의존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의사들이 많은 남쪽이 보건의학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더 넓은 세계를 내다봐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임 전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은 놀랍게도 ‘폐쇄사회의 폐해’를 시인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미군은 조선 평화유지군?
임동원 전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임 전 장관이 요약한 세 가지는 ‘그는 미국을 불신한다’, 그리고 ‘미국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
또한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처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꼭두각시 같은 탈레반 정권과 싸워 이겨서 기고만장해졌는데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도 침략자를 몰아낼 태세가 되어 있다”며 미국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입장을 내보였다고.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내 생각과도 일치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던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라는 것.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이 “그런데 왜 언론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건가”라고 묻자 김 위원장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답방을 미룬 배경에는 ‘미국’이 작용했다. 임 전 장관이 2002년 4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해 김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을 요구하자 그는 “현재로서는 솔직히 서울에 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며 이와 같은 설명을 했다고 한다.
“사실 작년 봄에 서울을 방문하려고 했습니다. 나도 김 대통령을 하루 빨리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북한을 적대시하는 부시의 대통령 당선으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클린턴이나 앨 고어 행정부라면 벌써 방문했을 겁니다.”
이어 그는 “제3국에서 만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며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의하기도 했다고.
“이르쿠츠크에는 큰 호텔도 10여 개나 있어요. 필요하다면 러시아 대통령과의 3국정상회담을 통해 시베리아철도 연결 문제도 협의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김 위원장의 말은 마치 러시아 측과는 사전에 협의가 되어 있다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는 것. 하지만 임 전 장관이 “남북정상회담을 제3국에서 개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가타부타 하지 말고 이 제의를 대통령께 보고 드리세요. 성사될 때까지는 비밀을 지킵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