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담 후세인이 체포될 당시 은신해 있던 땅굴 내부. epa/앤빅 | ||
그렇다면 후세인은 과연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일요신문>은 후세인이 도주 과정 중 스스로 잠시 농가에 머물고 있었다는 가정하에 농가 주택의 자세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의 은둔 생활을 가상으로 꾸며 보았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어느 깜깜한 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초라한 농가 주택의 마당 한켠에서 뭔가 꿈틀대더니 이윽고 땅 속에서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머리와 한동안 면도를 하지 못했는지 어지럽게 자란 수염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힘겨운 도피 생활을 해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땅굴에서 나온 후세인은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곧 한쪽 벽에 기대어 있는 낡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에 올라서서 잠시 마당 곳곳에 서 있는 대추야자나무를 응시하던 그는 이내 상쾌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 마시면서 옛 생각에 잠겼다. 천하를 호령하던 대통령궁에서의 생활과 지금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지하 땅굴에서의 생활이란 분명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어디랴. 시시각각 죄어오고 있는 미군의 압력과 자신의 곁을 떠난 수많은 측근들의 배신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그는 곧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다.
잠깐 동안의 바깥 구경을 마치고 지붕에서 내려온 그는 다시 땅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위험사태에 대비해 마련해 놓은 이 지하 땅굴은 너비 2m, 깊이 2.5m로 고작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매우 협소하다. 때문에 매번 들고 나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 지하굴에 들어가는 데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먼저 발부터 집어 넣은 다음 발이 땅에 닿으면 다시 몸을 살짝 왼쪽으로 비틀어 등이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몸을 밀어 넣어야 한다. 머리까지 땅에 닿으면 이제 밖에서 누가 스티로폼으로 된 뚜껑을 닫아 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장소가 워낙 협소하다 보니 굴 속에서 일어서거나 앉아 있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머리가 위치한 부분에는 외부 공기가 유입되는 파이프가, 그리고 그 옆에는 싸구려 플라스틱 통풍기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전기 따위는 없기 때문에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서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눈 감고 잠을 청하는 일밖에 없다.
후세인이 머물던 농가는 방 한 칸과 부엌이 있는 초라한 벽돌집이었다. 마당에는 햇볕에 말리고 있는 소시지가 여러 줄 걸려 있고, 한 켠에는 부서진 나무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무리 도피중이라지만 하루 24시간을 답답한 땅굴에서만 지낼 수는 없는 법. 잠시 쉬기 위해 큰 맘 먹고 주택으로 올라온 후세인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담요와 옷가지들이 널려 있어 어지럽긴 했지만 후세인은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붙였다.
하지만 곧 허기를 느낀 후세인은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건너갔으며, 혹시 먹을 것이 없나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냉장고 안에는 치킨 소시지 10개와 초콜릿 한 상자, 망고 피클 등 먹을 것이 좀 있었다. 하지만 깨진 달걀, 바나나, 키위, 채소 등 음식이 썩고 있는 등 악취가 진동했기 때문에 유쾌한 식사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하루가 저물어 갈 무렵 다시 지하 땅굴로 들어간 후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땅 위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도망가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머리 위의 스티로폼 뚜껑이 벌컥 열렸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순간 ‘끝장이다’고 느낀 후세인은 급히 밖으로 뛰쳐나와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이다. 협상을 원한다.”
악몽 같던 8개월의 도피 생활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