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 ||
하지만 이 대통령의 국정 쇄신책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이제 대통령을 믿어 보자’라는 말도 많지만 ‘간판만 바꿔 단 짝퉁 신장개업’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터져 나온다. 특히 야권에서는 청와대 수석진용이 MB(이 대통령의 이니셜) 인맥의 2진 기용에 불과해 그동안 해왔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층 복원을 위해 보수대연합의 기치를 빼들면서 MB 특유의 개혁 정책도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과연 이 대통령은 어떤 ‘묘책’으로 위기 국면을 타개하려 하는 걸까. 청와대 수석 인사 뒤에 자리한 이 대통령의 ‘미래 구상’ 속으로 한 걸음 다가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0일 청와대 2기 수석진을 발표하면서 비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새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자신의 수족인 수석 전원을 자르는 ‘읍참마속’의 심경이 짙게 배 나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제 저 자신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기분으로 시작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정권 출범 전 세웠던 개혁 로드맵을 접고, 새로운 수석들과 함께 ‘뉴 플랜’을 짤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외적인 압력 때문에 정권 초기에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려고 했던 각종 개혁 정책을 포기하게 되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개혁 로드맵 작성에 관여했던 여권의 A 씨는 이에 대해 “쇠고기 파동으로 새 정부의 개혁 로드맵이 모두 헝클어졌다. 1기 수석진들의 경우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도 공기업 민영화의 전도사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퇴진은 현 정권 개혁 로드맵 전반에 대한 변경을 의미한다. 사실 각종 개혁 조치는 정부 초기에 힘을 갖고 추진해도 될까 말까 한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2기 수석들이 짤 새로운 개혁 프로그램도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공기업 민영화 등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들이 전부 폐기되거나 변경되면서 현 정권의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MB적 가치가 없어져 버려 색깔 없는 정부가 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의원도 이에 대해 “결국 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대통령이 열린 마음으로 국민들 의견을 듣는 것과 소신을 가지고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가 내건 야심 찬 ‘개혁안’들이 ‘촛불’에 밀려 하루아침에 폐기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리더십인가. 공기업 민영화도 그 대의를 거스를 수 없다면 서울시장 때 청계천 공사를 하면서 시장 상인들을 4000번 이상 만나 설득했던 것처럼 국민들을 끊임없이 설득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이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닫고 독재의 길로 가는 게 아니라 소신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무소신 행보일 것이다. 국정에 대한 일관성은 민심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장기적인 플랜이 아닌 즉흥적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오락가락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수대연합 논란이다.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인적 쇄신에 대한 궁금증이 최고조에 달했던 6월 초 가장 먼저 카메라에 잡힌 사람이 자유선진당 심대평 의원인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촛불집회의 기본적 성격이 참여를 통한 현 정권의 규탄이라고 할 때 그 기저에는 당연히 진보라는 이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보수적 색채가 강한 자유선진당의 심대평 의원을 내세운단 말인가. 청와대 정무라인의 정국 돌파 첫 번째 아이디어가 한물간 이회창 전 총재와 이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이라니 참 기가 막혔다”라고 말했다.
‘심대평 총리론’과 결합된 ‘보수대연합’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결국 유아무야 돼버렸다. 물론 청와대에서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론을 떠보기 위해 ‘심대평 총리론’을 흘렸겠지만 그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과거 회귀적이란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향후 추진할 위기 탈출 프로젝트도 바로 ‘보수대연합’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 지난 20일 발표된 2기 수석 비서관들. 왼쪽부터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 강윤구 사회정책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병원 경제수석,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정동기 민정수석, 맹형규 정무수석, 정정길 대통령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앞서의 여권 전략통 A 씨는 이에 대해 “병 든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기본 체력부터 회복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러기 위해선 흩어져 있던 전통적 지지층부터 무조건 복원시켜야 한다. 그 다음 외연을 확대해 본격적인 개혁 정책을 실현해나가야 한다. 그 작업만 해도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다. 사실 이 대통령이 이번 쇠고기 파동에서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이 바로 지지층의 급속한 이탈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무리 못하고 국민들의 비난을 들어도 지지율이 25%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노사모’ 같은 충성스러운 지지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경우 빠른 시일 내에 취약한 지지층을 복원해내지 못하면 광화문에서 촛불만 올리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청와대 2기 수석 진용을 보면 촛불집회 정국을 수습할 수 있는 화력으로 부족한 면이 많다”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심대평 총리론이 여론 역풍을 맞고 가라앉으면서 여권 내부에서 한때 ‘좌 클릭’ 인선 이야기도 있었다. 진보주의 노선의 인사를 청와대에 포진시켜 촛불집회 정국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라고 털어놓기도했다. 하지만 새로 짜인 청와대 수석진을 보면 ‘진보적 색채 인사’는 전무하다. 오히려 신임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경우 한 인터뷰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평가를 낮게 받은 사람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어 진보 진영의 공격을 받을 빌미를 주고 있다.
또한 신임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유력한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민혁당에서 재야통일운동을 하다가 지난 1996년 전향한 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을 운영했다) 역시 진보 진영과 소통하기 힘들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야당에서는 홍 사무총장의 기용설에 대해 “어처구니없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시민사회의 여론을 듣겠다는 명목으로 마련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가장 부적절한 극우적 인사를 배치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에 대형컨테이너로 바리게이트를 치겠다는 태도와 동일한 것”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아직까지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 정국을 잘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신임 청와대 수석들을 보면 보수 성향이 강한 ‘옛 사람’들 일색이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인사철학과 시국 인식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대통령이 국정 위기를 인식하고 멀리서도 인재를 찾으려고 했다면 촛불을 든 국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좌우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박수를 보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 2기 수석진용은 대표적 기득권 계층 출신인 정정길 대통령실장(경북고-서울대 출신)을 위시해서 수석들의 성향이 모두 우측으로 몰렸다는 점에서 신선함 결여와 함께 촛불 민심 포용력도 부족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해 촛불집회로 조성된 진보 세력 주도의 정국에 정면대응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여기에는 정치적 상황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 들어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면서 이 대통령이 진보진영과 맞서 싸울 자신감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머리를 한껏 숙인 대상은 물론 촛불집회에 모인 국민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순수한’ 국민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과는 구별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다. 순수한 세력들을 잘못된 정보와 감언이설로 끌어내려는 진보세력과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싸우려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의 정국 인식에 변함이 없고, 그것이 보수성향의 청와대 참모진 구성으로 나타났음을 상기해보면 결국 이 대통령은 촛불로 무너진 몸을 추스른 뒤 진보 진영과 본격적인 한판 대결을 펼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쇠고기 파동으로 크게 덴 이 대통령이 당분간은 웬만한 트러블을 만들어 내지 않고 ‘안전 모드’로 국정 운영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지지율을 회복한 뒤에는 다시 한 번 불도저에 시동을 걸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과연 이 대통령은 언제쯤 그 엔진에 불을 붙일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