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좌)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우)
북한 대표단은 지난 3월 27일~30일 중국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해 중국 측 대표단과 면담을 진행했다. 대표단은 외무성 차관급이었다.
이 대표단의 표면적인 방중 목적은 4월 15일 태양절 105돌 및 4월 25일 북한 인민군 창건 85돌 기념행사에 중국 대표단을 초빙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국 측 대표단은 이 회담에서 북한의 요청을 거절했다. 실제 북한의 지난 태양절 행사에는 과거와 달리 중국 측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양측 대표단은 이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두고 심도 있는 대화를 진행했다.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 대표단이 중국 측에 요구한 관련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북한은 원칙적으로 미국과 중국 측이 요구한 핵 포기는 없다. 단,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과 관계없이 김정은 정권을 인정할 경우 핵과 관련한 회담을 할 여지는 존재한다.
둘째, 북한은 미국과 기타 국가(한국을 의미)의 대 북한 합동군사훈련을 멈추지 않는 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셋째, 미국과 기타 국가가 100억 달러 상당의 무상원조를 포함해 400억 달러 지원을 전제한다면, 3년 내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단, 이는 전적인 핵 폐기를 의미하기보다는 군축이라는 포괄적인 의미에 더 가깝다).
넷째, 미국이 북핵과 관계없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서면으로 보증할 경우 핵실험 및 ICBM 개발 실험을 보류할 수 있다.
마지막 다섯째, 미국이 북한을 무력 응징할 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지 않고 중립 및 미국에 협조할 경우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해 중국을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은 중국 측에 원칙적으로 핵개발 포기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전달했다. 그러면서도 대미 수교를 포함한 관계개선과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핵 폐기 프로세스와 관련한 조정 의사가 있음을 덧붙였다. 그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3년’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북한식 ‘벼랑 끝 전술’이다.
놀라운 것은 마지막 대목이다. 북한은 이 회담에서 미국의 무력응징 시 중국이 중립을 지키거나 미국에 협조할 경우 중국 역시 공격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경고를 시사했다. 물론 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선언적 수준의 의미였을지라도 최근 북-중 접경 지역의 높아진 군사적 긴장도가 괜한 현상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첫째, 북한은 조건 없이 ‘6개월’ 내에 핵을 포기해야 한다. 이를 거부할 시 중국은 원유지원 중단, 군사적 개입을 포함해 앞으로 북한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둘째, 북한이 비핵화 이후 외부의 무력공격을 받는다면 중국은 ‘북중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북한을 보호할 것이다.
셋째, 북한이 비핵화 단계로 들어가겠다고 공식 천명한다면 중국은 3년 내에 직접 100억 달러를 유상지원 할 것이다.
넷째,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고 또한 검증받는다면, 미국과 함께 김정은 정권의 지위를 보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북한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해 중국을 겨눈다면 중국은 독자적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때는 김정은의 지위를 담보할 수도 없다.
중국은 북한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는 ‘원유지원 중단’과 ‘군사적 개입’ 카드를 거론하며 북한에 핵 폐기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또한 중국은 만약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가동한다면, 100억 달러 상당의 유상지원 및 (미국과 함께) 김정은 정권의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북한이 핵을 포함한 군사력을 자국에 겨눌 경우, 사실상 군사적 대응을 통한 김정은 정권의 축출을 시사했다. 한편으로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을 경우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의 무력동원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앞서 미국은 3월 22일 방중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통해 중국 측에 북핵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틸러슨은 중국 측에 전달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절대 인정하지 않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로 상대국(한국과 일본)을 위협할 경우, 사전에 단호하게 응징 ▲미국은 북한과 ‘핵보유’를 전제로 한 그 어떤 외교적 거래도 없을 것 ▲만약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군사적으로 응징할 경우, 중국은 중립을 유지하길 바람. 중국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미국은 절대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않을 것 등이다.
틸러슨이 전달한 미국의 원칙은 후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내용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미국이 중국에 보장한다는 핵심 이익은 주로 경제적 부분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미국시장을 통해 챙기는 연간 5000억 달러 상당의 이익과 중국이 보유한 미국 채권 5조 달러에 대한 상환 보장 등이 포함된다.
중국은 틸러슨과의 회담에서 전달 받은 미국 측의 원칙과 자국의 원칙을 토대로 지난 3월 북측에 강도 높은 ‘비핵화 안’을 요구한 셈이다. 그 강도만 놓고 보자면 역대급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제6차 핵실험 및 ICBM 발사 유보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4월 들어 현재까지 한반도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다만 북한의 도발지수는 절정이었던 태양절 전후와 비교한다면 약해진 상황이다.
이는 미국의 초강수 압박 이전에 앞서 3월 말에 있었던 북-중 비공개 실무대표단 회담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북한과 중국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 차가 미국과의 그것만큼이나 뚜렷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변수는 결국 중국 측의 강도 높은 통첩에 북한이 어떤 답을 주느냐다. 또한 북한의 핵개발 등 도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인내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조금 더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다음 대목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