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덕질을 주도하는 연령대는 주로 20·30대다. 아무래도 자신의 학창 시절 좋아하던 아이돌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노련함도 묻어나고 그 분야도 다양하다. 반면, 그런 과거 경험 없이도 정치인 덕질에 심취한 지지자들도 있었다. 온라인의 일부 지지자들은 “어릴 적에도 안 해본 팬질을 지금 나이 들어서, 그것도 정치인을 대상으로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자들이 제작한 ‘짤방’.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로 20~40대 연령의 표를 흡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문 후보는 다른 그 어떤 대선 후보들보다 많은 덕후(광팬, 지지자)들을 거닐고 있다. 그들은 SNS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니’는 문 후보의 애칭이다. ‘문재인이’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문 후보 측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니, 청와대 길만 걷자”라는 ‘문덕’(문재인의 덕후)들의 표현은 기존의 ‘정치인 지지’ 호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어린 아이돌을 향해 사용할 법한 표현을 30~40살이나 많은 65세인 문 후보에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애칭과 함께 수많은 짤방(게시글에 첨부하는 사진 또는 짧은 영상)도 생성됐다. ‘이니’라는 애칭은 기존 이모티콘이나 애니메이션에 합성됐고, 다양한 버전과 시리즈로 생성되며 하루가 다르게 그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포토샵 등 사진 편집 재능을 가진 소위 ‘능력자’라고 불리는 네티즌들은 기존의 ‘문재인 캠프’ 홍보물을 재편집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했다.
젊은 층의 지지자를 거느린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많은 덕후들을 거닐고 있다. 애칭은 ‘심블리’.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와 트위터 등에서 심 후보를 부를 때 사용한다. 심 후보도 이에 대한 화답으로 손편지를 작성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직접 사진을 올리며 덕후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빨간펜 선생님’도 심 후보에 대한 별명인데, TV 토론회에서 상대방 후보들을 향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지적하는 모습이 1대 1 방문교육 선생님 같다는 농담에서 나왔다.
(좌) 온라인 지지자들의 심상정 후보 팬아트 (우)‘오늘의 유머’에 보내는 심상정 후보의 편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박근혜·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양면으로 넣은 휴대폰 고리를 걸고 다니곤 했다. 이것이 ‘박근혜 굿즈’라고 불린다면, ‘문재인 굿즈’도 있다. 바로 각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 공보물이다. 사실 애석하게도 굿즈는 선거법 위반이다. 5월 9일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 ‘문재인 휴대폰 고리’ 등을 만들어 팔아서도 안 되고 무료로 나눠줘서도 안 되기 때문에 문덕들은 선거 공보물을 굿즈 삼아 위안을 받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굿즈는 그가 출간한 책 <안철수의 생각>이다.
또한, 콘서트 암표도 더 이상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5일 열린 ‘문재인 북콘서트’를 앞두고 4000명 전 좌석이 매진되자마자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암표가 돌기 시작했다. 항간에는 1인당 5000원이던 입장권이 10만 원 암표로 거래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플래카드도 정치판에 등장하고 있다. 공연장 혹은 행사 장소에 모여드는 팬들은 자신만의 플래카드를 이용해 연예인에게 어필하고 함께 교감하는데, 문덕들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의 유세현장에 직접 찾아가 자신이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문 후보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위)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글. 출처= 디씨인사이드 (아래)‘안철수 굿즈’는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으로 통한다. 출처=트위터
17대 대선 투표율은 63%, 18대는 75.8%였다. 한국의 투표율은 OECD 가입 34개 국가 중 취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한 몫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75.8%의 투표율을 기록한 18대 대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65.2%에 그쳤다.
하지만 ‘정치혐오’에 투표를 외면하던 20·30대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때는 그 어떤 연령대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촉발된 국정농단 사태가 정권 심판 분위기로 확전되면서 젊은 층의 정치참여 욕구를 자극할 것이란 해석이다.
특히, 유례없는 5월 장미대선을 만든 장본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문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젊은 층의 선택을 받을 것이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인 덕질을 통해 서로 결집력을 강화하고 소속감을 느낀다면 젊은 층의 투표율도 자연스레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과연 기존 팬 문화가 정치 문화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까. 정치와 덕후라는 단어는 그동안 서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국민들이 정치인 굿즈와 프래카드를 들고 정치 토론을 할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