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18대 국회 개원식 후 복당이 예정 된 친박 무소속연대 의원들이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나라당 밖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의원들의 복당 문제가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조건·일괄 복당’으로 최종결론이 남에 따라 당내 역학구도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게 됐다. 이번에 복당 허용 결정이 난 의원들은 친박연대 소속 13명과 친박 무소속연대 12명 등 모두 25명.
이들이 모두 복당 또는 입당 수순을 밟게 되면 한나라당의 의석 수는 현재의 152석에서 177석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미 친박 무소속연대는 복당 결정이 난 바로 다음날(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입당을 선언했고, 친박연대도 오는 15일 5명의 지역구 의원부터 ‘한나라당 행’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기소상태에 있는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는 “재판이 끝나고 내가 마지막으로 당에 남아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복당)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외 친박 의원들의 복당’은 ‘박근혜계의 세력 확대’와 동의어다. 박근혜계 의원 수는 이제까지 34명으로 110여 명에 달하는 이명박(MB)계와 비교하면 30%선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숫자가 60명에 이르면서 MB계의 50%를 넘는 정도까지 따라잡게 됐다. 일부에서는 박 전 대표에 우호적인 비례대표까지 감안하면 그 수가 최대 80여 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MB계 중 핵심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 수가 60명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속력이 강한 박근혜계가 이미 MB계와 거의 대등한 세력을 구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계량적인 면을 넘어 질을 따져 보면 박근혜계의 전력 강화는 더욱더 뚜렷해진다. 당장 내로라하는 다선 중진들이 대거 합류하게 된다. 당내 최다선급인 6선이 2명(서청원 홍사덕 의원)에, 4선 4명(김무성 박종근 이해봉 이경재 의원),3선 1명(이인기 의원) 등 중진만 7명에 달한다. 복당 전 박근혜계의 최다선인 4선이 1명(김영선 의원),3선이 6명(허태열 서병수 김학송 정갑윤 김성조 송광호 의원)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진들의 수가 곱절 넘게 늘어난 것이다.
MB계 중진이 대략 20명 선이라는 점에 비하면 결코 뒤지지 않는 숫자다. 특히 MB계의 경우 6선의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의 형’인 이유로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과 ‘좌장’ 역할을 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4·9총선에서 낙선한 후 ‘자의 반,타의 반’으로 미국에 체류 중이어서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상태다. 정치 내공의 깊이와 경륜 등을 살펴보면 당 밖에 있던 박근혜계 중진들의 대거 합류가 더욱 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들 중 가장 주목받는 이는 탈당하기 전까지 박근혜계의 ‘좌장’ 역할을 했던 김무성 의원. 그동안 박근혜계가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어 현안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그의 ‘귀환’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김 의원이 18대 총선 기간 친박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영남권에서 ‘친박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소계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의원들만 10여 명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김 의원도 복당과 동시에 박근혜계 좌장 역할도 되찾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제 박근혜계가 60명에 이르게 된 만큼 구심점이 필요하다. 내게 그런 역할을 맡으라고 하면 기꺼이 그럴 생각이다. 정치투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책현안을 중심으로 의원들을 결집해 당을 활성화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당 운영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최고위원회의가 당내 계파·선수(選數) 간 역학구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은 만큼 수가 크게 늘어난 중진그룹들이 막후에서 파워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4선 그룹의 발언권이 크게 신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 그룹에선 이미 홍준표 원내대표, 이윤성 국회 부의장 후보를 배출한 데 이어 당 밖 친박 의원 4명이 합류하면서 그 수가 12명으로 늘어났다. 박근혜 전 대표와 어느덧 MB계의 중추로 떠오른 안상수 전 원내대표도 이 그룹에 속한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박희태 대표로선 계파를 대표하기엔 상대적으로 체급이 낮은 인사들이 수두룩한 최고위원회의보다는 김무성·안상수 의원 등 양 계파의 좌장급 중진들과 막후에서 주요 사안을 논의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강재섭 전 대표 시절 운용됐던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를 다시 부활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별도의 중진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무계파인 정몽준 최고위원과 MB계 원로 이상득 의원과 함께 당대 최다선(6선) 그룹을 형성하게 된 홍사덕 서청원 의원의 향후 행보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2002년 대선 당시 대표로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서 의원과 정무장관과 국회 부의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을 거쳐 지난해 8월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홍 의원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복당하면 최고 원로급인 되는 두 사람은 앞으로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서 유력한 조언자로 자리 잡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일부에서는 구(舊)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홍·서 의원이 행동반경을 넓히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앞길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란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정치 내공’이 깊은 두 사람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신뢰가 워낙 깊어 ‘병풍’ 역할을 단단히 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당내에선 18대 후반기 국회의장직도 홍·서 의원 중 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란 관측도 많다. MB계 최다선인 이상득 의원이 입법부 수장이 될 수 없는 결정적 핸디캡이 있는 데다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내 경선에 나섰던 4선의 안상수 의원 역시 다시 한 번 국회의 관행인 ‘연공서열체제’를 무시하고 ‘재수’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복당하는 친박 의원들은 천군만마와도 같다. 특히 친박 의원들은 ‘충성도’ 면에서 MB계 의원들보다 높게 평가돼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박 전 대표의 높아지는 위상에 MB계 핵심 세력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일단 외관상 드러난 여권 분위기는 ‘화해 무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젠 한식구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박희태 대표도 향후 인선에서 친박계에 대한 ‘배려’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 박 전 대표의 이름에 무게가 실릴수록 이 대통령과 MB계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게 권력의 딜레마다.
양 계파 사이에서 ‘화해와 협력’이라는 저울이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견제와 갈등’이 불거질 것은 뻔한 이치. 게다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과 4·9 총선을 거치며 쌓인 양측의 앙금도 완전히 사그러들지 않은 상태다. 결국 향후 여당의 역학 구도는 MB계와 친박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수없이 변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