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일부 언론이 “지난 3월 말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의 해상초계기가 한‧미 독수리 연습 해상 훈련을 감시하던 러시아 잠수함을 78시간의 추격 끝에 물 위로 부상시켰다”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잠수함이 부상한 것은 사실상 ‘항복’ 선언”이라며 “우리 해군이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러시아는 정보 수집을 위해 출동한 사실을 시인하는 답신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요신문> 확인 결과, 이 같은 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 20일 오전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가 부산항을 출항했다. 항공기 80대를 탑재한 ‘떠다니는 군사기지’ 칼빈슨호는 한미 독수리훈련의 일환으로 지난 3월 25일까지 한반도 전 해역에서 북한의 해상도발 위협에 대비한 연합 해상전투단 훈련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3월 22일 울릉도 남쪽 동해 공해상에서 한‧미 대규모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매년 3월에는 지휘소 시뮬레이션 훈련인 키리졸브연습(KR) 및 실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FE)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번 훈련에선 ‘바다 위 군사기지’로 불리는 항공모함 칼빈슨호 등이 참가했다.
복수의 해군 및 국방부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미군의 칼빈슨호 전단에 속한 P-3 대잠 해상초계기(공중을 비행하면서 경계·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공격도 수행하는 군용항공기)가 훈련에 앞서 현장과 위험 요소 확인 등을 위해 비행하고 있었다. 초계기 비행도 통상적인 훈련에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잠수함이 발견됐다. 당시 잠수함은 공기주입을 위해 ‘스노클링 항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잠수함이 발견된 지점은 우리나라 영해와 공해가 접속하는 곳으로 국제법상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이 적용된다. 무해통항권이란 외국 선박 등의 항행이 연안국의 평화‧질서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러시아 잠수함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등의 선박, 잠수함 역시 우리나라에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앞서의 지점을 항행할 수 있다.
다만 미군은 우리나라 해군에 “훈련 현장 인근에 러시아 잠수함이 항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훈련을 앞둔 시점이라 동선이 겹쳐 우발적인 사고나 충돌이 발생할 수 있어,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미군의 연락을 받은 해군은 러시아 잠수함에 통신으로 “훈련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러시아 잠수함이 부상한 것은 우리나라 해군과의 교신 이후다. 알려진 바와 달리 78시간의 추격전은 없었다. 해군 관계자는 “러시아 잠수함이 부상한 건 사실이지만 ‘항복’의 의미가 아니라 ‘훈련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일종의 ‘프렌들리(Friendly)’ 표시로 보면 된다. 특별할 것 없는 통상적인 조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러시아 잠수함이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러시아가 우리나라 해군에 알릴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해군 관계자는 또 “일련의 과정은 러시아 측과의 교신으로만 이뤄졌다. 따라서 우리나라 해군이 러시아 측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거나, 러시아 측에서 한미연합훈련 정보 수집 목적이었다고 시인한 일도 없다”고 못 박았다.
사실 관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서 해군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매체가 “해군이 외교적인 문제를 고려해 표창까지 받을 만한 공적을 발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지만, 오히려 그 보도로 인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군 관계자는 “러시아 잠수함은 국제법에 따라 무해통항권이 적용되는 지점을 항행했다.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의를 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오히려 ‘추격’ ‘항복’ 등 적에게만 쓰이는 표현들이 나오면서 졸지에 러시아가 적대국가가 돼 난감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