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대표(오른쪽), 홍준표 원내대표(왼쪽) 등과 한나라당 지도부 오찬을 위해 행사장으로 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런데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의회 정치세력이 청와대의 지원 아래 강력한 힘을 행사하게 되면서 지도부 간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도 예고되고 있다. 최대 182석의 거대 여당을 이끌 새 지도자 박희태 대표최고위원, 원내 사령탑임을 내세우며 독자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홍준표 원내대표, 청와대의 정치력을 발휘할 맹형규 정무수석 간의 치열한 ‘신 삼국지’가 벌써부터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의 대권 주자들이 당분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지도자 수업’에만 몰두할 계획이어서 여권 신 주류의 2인자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소리 없이 강한 박희태 대표최고위원을 ‘요란한 빈 수레’ 홍준표 원내대표가 잡을 수 있을까.”
최근 한나라당이 박희태 대표 체제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급변하고 있는 당내 역학 구도를 본 한 당직자의 질문이다. 친박 그룹이 복당할 경우 최대 182석의 거대 여당을 이끌 박희태 대표와, 원내사령탑임을 자임하며 박 대표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을 홍준표 원내대표 간의 보이지 않는 파워 게임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3선 라이벌이자 서울시장 경선 상대였던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도 홍 대표의 ‘오버 행보’에 적극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돼 여권의 신 삼국지는 ‘박-맹 연합군’에 홍 원내대표가 홀로 맞서는 흡사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연상시키는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사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박 대표가 들어오기 전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여권의 실질적 2인자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관보 게시 등을 전격 결정하며 정국을 주도했을 때만 해도 홍 원내대표의 힘은 막강했다. 여기에 홍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독대설을 자주 흘리며 자신의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박희태 대표는 ‘원외’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초반 홍 원내대표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박 대표는 합의 개원을 관철시키면서 그 ‘소리 없는 힘’을 입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표는 국회 개원과 관련해 “(야당과) 합의 개원이 원칙”이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홍 원내대표가 ‘단독 개원 불사론’을 외치며 강경책을 주도할 때였다. 두 사람은 국회 개원을 두고 그렇게 첫 일합을 겨뤘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대표가 홍 원내대표의 오버 행보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홍 원내대표가 자신을 ‘원외’라고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번 홍 원내대표의 ‘단독 등원 불사론’에 강하게 제동을 건 것도 첫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강한 뜻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이 대통령의 ‘의중’임을 내세워 사사건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차기 대권과 무관한 박 대표가 이 대통령의 ‘오더’를 무리 없이 수행할 것이지만,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홍 원내대표의 경우 무조건 청와대의 조종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수 있다. 대중 정치인으로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때로 권력과 충돌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을 지키려는 박 대표와 거스를 필요가 있는 홍 원내대표 간의 보이지 않는 주도권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양측의 첫 대결에서는 홍 원내대표가 ‘완패’를 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홍 원내대표는 ‘합의 개원’을 주장하는 박 대표의 뜻과는 반대로 한나라당 의총을 본회의장에서 열며 야당 등원을 압박했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홍 원내대표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홍 원내대표는 의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뜻대로 단독 개원을 밀어붙일 속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날 홍 원내대표는 단상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주문했지만 의원들의 비협조로 회의 진행에 애를 먹기도 했다. 홍 대표가 국방부 장관 출신인 김장수 의원(비례대표·초선)에게 “발언 좀 하라”고 ‘부탁’을 했지만 김 의원의 “안 하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머쓱해지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홍 대표의 지도력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일부 무소속 의원들까지 소집해놨던 홍 원내대표의 지도력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 이상득 의원(왼쪽), 맹형규 수석. | ||
사실 박 대표는 여당 2인자 취임을 앞두고 노령(70세)에다 ‘관리형’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홍 원내대표에 휘둘릴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야생마’ 홍 원내대표를 초반 길들이기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과 당내에서 ‘상왕’으로 통하는 이상득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그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이 의원은 지난 7·3 전당대회에서도 ‘박희태·정몽준 후보를 찍어라’는 오더를 내려 ‘친 이재오 계보’인 공성진 의원이 하마터면 탈락할 뻔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당내 최대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이 의원이 개원 협상 등을 두고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홍 원내대표의 오버 행보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의원이 홍 원내대표를 낙점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홍 원내대표에게는 뼈아픈 해석이지만 권력 심층부에서 당분간 컨트롤이 쉬운 박 대표에게 힘을 몰아줄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고 하듯 박 대표는 지난 7월 10일 당의 신 지도부와 이 대통령과의 상견례를 겸한 오찬 뒤에 이 대통령과 단독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유임시킨 ‘7·7 개각’의 문제점 등 최근의 정국상황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특히 그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훈수’를 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오버했다’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박 대표의 달라진 위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의 ‘맷집’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박 대표는 원외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대야 협상에서는 홍 원내대표의 권한이 막강해진다. 홍 원내대표가 박 대표의 ‘오더’를 원내 협상과 전략 수립 책임자임을 들어 거부할 경우 마땅한 ‘압력’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당 대표 박희태’와 ‘원내사령탑 홍준표’의 공조시스템이 협조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러기엔 홍 원내대표의 ‘열정’이 너무 뜨거울 것이라는 점에서 협조보다는 ‘충돌’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홍 원내대표가 원내 협상 지휘자임을 자임하며 박 대표의 간섭을 거부할 경우 이를 적절하게 제어해줄 인물로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 두 사람은 똑같이 3선 출신 의원으로서 서울시장 경선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왔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