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에선 혼란한 국정 소용돌이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언을 할 측근이 없다는 게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지난 5월 27일 미국에 도착,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그는 1년 비자를 얻어 미국으로 들어갔고, 연수도 1년을 예정하고 떠났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귀국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물론 안경률 사무총장이나 공성진 최고위원 등 친 이재오 계보 의원들은 “1년 연수를 예정하며 떠나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벌써 그런 얘기들이 나오느냐. 현재 조용히 머리를 식히며 미래 발전 구상에 전념하고 있다”며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 도착 인터뷰에서 조기 귀국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국내 사정에 따라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일찍 귀국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이 말한 국내의 중대한 변화의 시점이 바로 지금이며, 귀국 시기는 10월 정기국회 전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기 귀국설이 도는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여전히 이 전 최고위원을 신뢰하고 있고 여권의 권력 운용상 그의 재기용 시점이 곧 올 것이란 현실적 이유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대통령은 정권 출범 때 어떤 특정인의 권력이 과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여권 권력 갈등의 두 축인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전 최고위원 세력(정두언 의원 계열 포함)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이상득 의원에 대해서도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정두언 의원 등 소장 측근들을 통해 적절하게 견제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두언 의원이 인사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결과 이상득 의원도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며 잠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정 의원도 이 대통령의 경고에 따라 잠행중이다. 여권 핵심인 두 사람이 잠시 쉬고 있으니 이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나설 때가 되었다. 이 대통령은 그 간의 권력 갈등 노정에도 불구하고 이상득-이재오-정두언 3각 체제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먼저 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이 전 최고위원이 쫓기듯 미국으로 떠났지만 ‘타향살이’를 할 만한 구체적인 ‘헛발질’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손짓도 가벼울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 ||
세 번째는 친 이재오 계보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 이재오 계보는 지난 7·3 전당대회에서 공성진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되고 안경률 의원이 권한이 막강해진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는 등 약진을 했다. 하지만 지난 전당대회의 결과를 놓고 보면 3위권 진입이 무난했던 공 최고위원이 턱걸이로 당선되었던 것이 이상득 의원의 이재오 전 최고위원 견제에 따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친 이재오 그룹도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친 이재오 그룹에서는 향후 자파의 세력이 약해져 이상득 의원 그룹에 흡수되거나 완전히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상득 의원이 정국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실세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 같은 거물이 견제해 주지 않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친 이재오 그룹이 중심이 돼 만든 ‘함께 내일로’라는 모임도 ‘이상득 의원의 당 장악’ 위기의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에서 ‘전화정치’로 이 모임의 결성을 원격 조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대권 행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찍 귀국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전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서 잠재적 대권 후보다. 그런데 미국에 1년 이상 체재할 경우 현실 감각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권력에서 멀어진 것 아니냐는 소문에 휩싸이며 힘이 급격히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권의 해결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기에 귀국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은 여전히 조기귀국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 필요충분조건은 이미 충족됐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