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촛불 정국 상황에서 금강산 피격, 독도 파문으로 난제와 또 부닥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촛불집회와 같은 국내 문제는 민심 관리로 헤쳐나갈 수도 있지만 독도 문제나 금강산 피격 사망 사건과 같은 외부 요인은 이 대통령의 의지대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는 더욱 답답한 모습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최근의 새로운 외부 악재 ‘덕분에’ 오히려 이 대통령이 내부적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모멘텀을 잡았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설상가상의 위기에 직면한 이 대통령이 과연 국내외의 악재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한때 가장 운 좋은 사나이였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만 해도 그는 ‘천운을 타고났다’는 말을 인사로 들을 정도로 운이 좋았다. 지난 2007년 초부터 그의 대선 행운 퍼레이드는 줄을 이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해 그의 잠재적 라이벌 한 명이 사라져 버렸다. 이어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함으로써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중도 성향의 표를 독식했다. 이는 박빙의 경선에서 결정적 변수가 됐다(박근혜 전 대표와 2452표 1.5% 차이). 만약 손 전 지사가 끝까지 경선에 참여해 박근혜 전 대표와 연대를 했다면 지금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대통령의 최대 난제였던 BBK 사건에 대한 도덕성 검증 문제도 고비 때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와 남북정상회담 발표 등 초대형 이슈들이 터져 여론의 직격탄을 피해 나갔다. 그리고 대선이 본격화됐을 때도 신정아 학력위조 스캔들, 삼성 비자금 사건, 태안 기름유출 사고 등의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야당의 BBK 사건 이슈화 전략이 힘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운은 대선에서 승리한 날인 지난 2007년 12월 19일 밤 그 효력을 다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그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는 인수위원회가 ‘어륀지’ 논란 등 너무 오버를 하는 바람에 민심 이반 조짐이 보이면서 불안한 출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4월 총선이 실시되면서 공천 파동에 휩싸여 본의 아니게 ‘중간평가’로 이어지면서 또 한번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총선이 끝나면서 곧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국면으로 접어들어 두 번이나 대 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다 촛불집회가 한풀 꺾이면서 본격적인 국정 운영의 첫 발을 내디딜 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그에 따른 위기 대응시스템 부재 논란, 일본의 독도 교육 주장에 대해 ‘기다려 달라’고 발언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기름에 불을 붓는 형국이 돼 버렸다. 여기에 고유가 대응으로 나온 가스 값 인상 계획 등의 ‘부정적’ 정책이 민심 이반에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연달아 터져 나오는 국내·외 악재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위기 돌파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참모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한 여권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몇 번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너무 일찍, 복합적으로 터져 버린 것이다. 새 정부의 참모들도 위기관리 매뉴얼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더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라며 참모들을 독려하고 있어 곧 위기 대응 시스템도 정착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주변 관계자들은 현재의 위기가 역대 정권에서도 노정돼 온 통과의례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이 야당으로서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권의 초기 정권 착근 과정과 닮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당시 언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초당적 위치에서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대하고 △모든 것을 혼자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에서 벗어나 분권적 국정운영 체제를 확립하고 △가신그룹을 배척하라는 등의 조언을 반복했었다. 또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도 김 전 대통령에게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는 자세로 리더십의 근본문제를 성찰할 것 △가신정치의 적폐를 척결할 것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할 것 △검찰 경찰의 중립성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한 바 있다.
▲ 하늘에서 본 독도(위)와 금강산 피격 사건의 유족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일보 제공. | ||
그런데 한나라당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최근 ‘삼재’(三災)가 위기 탈출의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하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랠리 어라운드 더 플래그’(rally around the flag·외부로부터 분쟁이 발생하면 대통령 주위로 국민의 지지가 결집하는 현상)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대외적인 대형 이슈가 발생할 경우 국가적 위기의식을 느낀 국민들은 국내의 정치현안이나 정쟁에 대한 반감은 잠시 접어둔 채 여권에 힘을 실어준다는 해석이다.
현재 청와대가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현 위기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간다면 오히려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국민 생명 보호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고, 독도 사태에 대해서도 영토 수호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행보를 보일 경우 그동안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해석의 배경에는 지난 2006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 대일 강경책으로 나가 지지율이 반등됐다는 학습효과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적한 ‘랠리 어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이 철저히 민심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에 따른 미래지향적 외교를 내세워 독도 사태를 적당하게 넘어가려고 할 경우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강산 피격 사건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 주는 것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할 경우 국민의 공분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여권의 위기 탈출 기대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자주 외교를 표방해 민족주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국민들이 환영할 만한 민족주의적 접근이 아닌 데 차이점이 있다. 또한 촛불집회 등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이 기본적 신뢰가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외문제로 지지율 상승을 끌어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독도 문제 등에 대해 강경 일변도를 유지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칫 이번 위기 상황이 이 대통령의 국내 국외 무능 코드를 부채질하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그런 점에서 반일 정서보다 반 이명박 정서가 더 깊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 내부에서마저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한마디로 무원칙한 외교다.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피격당해도,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교육한다고 선포해도 어중간하게 대응하고 있다. 실용 외교가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거라면 환영하겠지만 원칙을 희생하는 것이라면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번 금강산 피격 사건과 독도 사태를 확실한 원칙 하에서 처리하지 못할 경우 그는 국내 국외 문제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아 자칫 회복불능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