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회의원·후보자 후원 명단이 공개되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액기부금을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박근혜 전 대표가 1억 76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김무성 의원과 이상득 의원이 뒤를 이었다. | ||
이 고액 기부금 내역을 살펴보면 지난 4·9 총선을 즈음해 정치권 어느 쪽으로 후원금이 몰리고 또 누가 어떤 연유로 기부를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나 후보자에게 후원된 금액이 79억 6325만 원으로 전체의 55.8%를 차지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여당이 된 한나라당에 ‘돈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후보자들에 대한 고액 후원은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5억 4568만 원에 그쳤다.
고액 후원금을 1억 원 이상 받은 의원(후보 포함)의 경우에도 상위 20위권 이내에 민주당 의원은 단지 2명에 불과했다. 고액 후원금 1위는 모두 1억 7600만 원을 받은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차지했고 친박계 수장 격인 김무성 의원과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2, 3위를 기록했다.
정치후원금 제도는 음성적인 정치자금 문화를 ‘퇴출’시키기 위해 도입한 것.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치후원금의 투명성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순수한’ 후원금도 적지 않지만 ‘대가성’이나 ‘보험’ 성격이 엿보이는 기부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총선이라는 거대한 권력 이동이 있었던 올 상반기에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고액 후원금을 기부했을까. 그 내역을 상세히 들여다보았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후원
서울시의회 김귀환 의장의 뇌물 사건 파문으로 여야 공방이 벌어지면서 우선 지방의회 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을 후원한 사례와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고액 후원금 명단에 따르면 지방의원들이 4·9 총선을 전후해 국회의원을 포함한 총선 출마자들에게 기부한 금액은 모두 1억 5000여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저마다의 인연과 친분관계에 따라 후원금을 냈겠지만 과연 지방의원들의 후원금 속에 ‘보험 성격’이나 ‘대가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 이번 돈봉투 선거 파문의 시발점이 된 서울시의회의 경우 전체 의원 106명 가운데 서울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이나 후보자에게 고액(300만 원 이상)을 기부한 시의원은 민병주 의원과 김귀환 의장, 단 두 명뿐으로 나타났다. 민 의원의 경우 올 1월과 2월에 강동호 후보(서울 중랑 을·무소속)에게 세 차례에 걸쳐 모두 321만여 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귀환 의장은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서울 광진 갑)과 홍준표 의원(서울 동대문 을)에게 각각 500만 원씩의 기부금을 냈다. 후원자 내역에는 생년월일과 직업, 주소, 연락처, 기부일자와 금액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김 의장은 직업란에 각각 ‘서울시의원’과 ‘정당인’으로 기재했다. 지역구가 광진구 제2선거구인 김 의장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권택기 의원에게 총선 전인 3월 25일 후원금을 보냈다. 홍 의원의 경우 김 의장이 후원금을 낸 시기가 총선 이후(4월 28일)라서 야당의 의혹 공세를 받고 있다. 김 의장이 올 상반기에 낸 후원금은 모두 1000만 원. 반면 김 의장이 지난해 1년간 낸 120만 원 이상의 후원금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기부한 200만 원이 전부였다.
다른 시도 의회 의원들의 경우에도 국회의원 후원 사례가 적지 않았다. 울산시의회 김춘생 의원은 3월 28일 한나라당 최병국(울산 남구 갑) 김기현(울산 남구 을) 의원과 이채익 후보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했고 전갑길 광주 광산구청장은 4월 4일 민주당 김영진(광주 서구 을), 강기정 의원(북구 갑)에게 각각 500만 원씩 기부했다. 또한 오정섭 경기도의원은 지난 2~4월 사이에 한나라당 박종운 후보(경기 부천 오정)에게 네 차례에 걸쳐 모두 360만 원을 후원했고 서울 서초구의회 박옥주 의원도 3월 20일 정동영 전 의원에게 500만 원을 기부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신의 소속 정당 국회의원 후보들을 고액 후원한 사례는 모두 50여 건으로 집계됐다.
◇고액 후원 순위는?
그렇다면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후원자는 누구일까. 기업 대표이기도 한 구천서 전 의원 부부와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 가족(본인 어머니 외할머니)이 총액 3500만 원으로 ‘공동 1위’를 기록했다. 구 전 의원은 회사원, 사업가 등의 직업으로 한나라당 이혜훈 조전혁 최구식 의원, 정덕구 전 의원 등 4명에게 각각 500만 원씩을 후원했고 부인 최 아무개 씨 이름으로 역시 이혜훈 최구식 의원과 정덕구 전 의원에게 500만 원씩 후원금을 냈다.
지난 총선에서 ‘공천 헌금’ 의혹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중인 양정례 의원 의 어머니 김순애 씨의 경우 3명의 후보에게 모두 1500만 원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지난 2월 28일 친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고 친박연대 이규택 공동대표에게 총선 직전인 4월 7일 500만 원을 기부했다. 김 씨는 같은 날인 7일 무소속 현경대 후보에게도 500만 원을 기부했다. 직업란에는 자영업, 기타, 사업이라고 각각 다르게 기재돼 있었다.
딸 양정례 의원 역시 손이 컸다. 4월 3일 홍사덕 의원에게 ‘연구관’ 신분으로 500만 원, 이규택 대표에게는 ‘정당인’으로 500만 원을 기부했다. 이보다 앞서 4월 1일엔 친박연대 손상윤 후보에게도 500만 원을 기부했는데 기부자 이름에는 ‘앙정예’로 기재돼 있다. 양 의원 측은 4월 7일 외할머니 유 아무개 씨의 이름으로도 손상윤 후보에게 500만 원을 후원해 고액 후원에 가족을 총동원한 셈이 됐다. 양 의원 가족이 후원한 금액은 총 3500만 원. 현재 기부금은 ‘개인이 국회의원 1명당 연 500만 원 한도, 총 2000만 원’까지만 후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조항을 비껴가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의심된다.
2위에는 범 현대가의 일원으로 볼 수 있는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대표 등을 비롯해 17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개인 한도액인 총 2000만 원을 후보자들에게 기부했다. 정몽석 대표의 경우 한나라당 권영세 한선교 이병석 이상득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했으며, 한세실업 김동녕 대표는 통합민주당 손학규 후보, 김근태 전 의원, 이제학 후보와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기부했다.
공동 2위를 기록한 고액 후원자 중에는 유독 기업인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 임원 2명. 그룹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노재봉 전무는 회사원, 비서실장, 효성그룹 전무 등의 직업으로 4월 1일 한나라당 원희룡 유승민 이한구 의원과 민주당 강봉균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했고, 이상운 효성그룹 부회장은 회사원, 부사장, 기업인 등의 직업으로 4월 2일 한나라당 진영 신영수 이주영 의원, 민주당 신기남 전 의원에게 역시 500만 원씩 기부했다.
노 전무와 이 부사장 모두 ‘3 대 1’의 비율로 여당인 한나라당 후보와 야당인 민주당 후보에게 후원금을 기부한 것. 이들 두 임원을 ‘효성’이라는 한 울타리로 묶으면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맨’이 가장 많은 기부금(도합 4000만 원)을 낸 셈이 된다. 노 전무의 경우 지난해에는 고액(120만 원 이상)의 정치후원금을 전혀 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대선조선의 안강태 회장과 안재용 전무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안 회장은 총선을 하루 앞둔 4월 8일 한나라당 허태열 정갑윤 의원과 민주당 조경태 의원, 그리고 친박연대 엄호성 후보에게 각각 500만 원씩을 기부했다. 안 전무도 같은 날 한나라당 김형오 서병수 유기준 의원, 무소속 김무성에게 각각 500만 원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선조선맨’이 낸 고액 후원금을 모두 합치면 4000만 원에 이른다.
◇이색 후원 사례
의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내거나 보좌관의 이름을 빌려 후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2월 12일 자신의 이름으로 500만 원의 후원금을 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곽성문 전 의원은 국회비서 김 아무개 씨로부터 2월 19일 500만 원, 같은 날 민 아무개 보좌관으로부터 500만 원을 후원 받았고, 3월 7일에는 국회비서 강 아무개 씨와 국회비서관 김 아무개 씨로부터 역시 500만 원씩을 기부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다. 기부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꺼려해 보좌관이나 비서관 등의 이름을 빌려 기부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예술인 등의 직업으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1월 10일), 백성운 의원(4월 4일)에게 각각 500만 원씩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실세’가 후원한 정치인이니 ‘최고 실세’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해에 누나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던 박지만 EG 회장은 올 총선 기간에는 후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을 두고 궁금증을 낳았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