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인물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지 부시 저격수’ 마이클 무어 감독(50)이었을 것이다. 개막 전부터 화제를 뿌려왔던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Fahrenheit 9/11)>이 마침내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부시에 대한 전면 도전장’으로까지 해석되고 있는 이 영화가 과연 오는 11월 미 대선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된 상태. 하지만 부시를 적나라하게 ‘씹고 있는’ 이 영화의 효과는 이미 부분적으로 드러난 바 있어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실례로 부동표였던 미국의 일부 유권자들이 영화의 시사회를 본 직후 ‘반 공화당파’로 색깔을 확실히 하는 등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었던 것. 그렇다면 이 영화가 과연 어떤 영화이기에 이토록 온 미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 내용을 들여다 봤다.
영화의 시작은 지난 2000년 대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미 대선 역사상 전례 없는 팽팽한 접전을 펼쳤으며, 결국 간발의 차이로 결과는 부시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당시 재검표 사태까지 빚어졌던 최대 승부처인 플로리다주에서 고작 5백37표의 차이로 낙선한 고어측은 “선거의 공정성에 의심이 간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고, 당시 문제시되었던 일부 지역에서의 애매한 투표용지 디자인을 비롯하여 개표되지 않은 투표함의 뒤늦은 발견 등 음모론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어가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먼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하찮을지도 모르는 한 방송사의 방송 내용이다. 개표 결과 방송이 진행되던 날 저녁 FOX 뉴스 채널의 한 관계자는 “부시 후보가 플로리다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다른 방송사들이 일제히 “고어 후보가 승리했다”는 결과를 내보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튀는’ 방송 내용이었다. 무어는 영화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FOX TV의 관계자가 부시의 사촌이라고 폭로했다.
영화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대선 당시의 음모론을 시작으로 했던 영화는 이 영화의 주소재인 ‘9·11테러’로 시선을 옮겨간다. 월척을 낚고 뿌듯해하는 모습과 골프를 즐기면서 측근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부시의 모습이 차례대로 화면에 보여지고 그 아래로 다음과 같은 짧은 자막이 나타난다.
‘9·11이 발생하기 전 부시는 42%의 시간을 여가 활동으로 보냈다.’
이처럼 냉소 가득한 장면 뒤 잠시 화면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채 9·11 테러 당시의 상황을 암시하는 소리만이 전달된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치는 소리,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울부짖는 소리 등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동안 당시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 소식을 접했던 부시 대통령의 얼굴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당시 이 소식을 들었던 부시는 멍청한 얼굴로 약 10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고 비난하는 무어는 “이 장면은 여태껏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것으로서 당시 초등학교 교사가 촬영한 것이다”고 밝혔다.
무어는 영화에서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가문이 부시 일가와 뿌리 깊은 ‘유착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실례로 그는 9·11 직후 부시 행정부가 미국 내 거주하고 있던 빈 라덴 친척 24명을 포함한 사우디인 1백40명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출국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서 당시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이례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빈 라덴 가문과 부시 가문의 ‘은밀한 관계’를 폭로하기 위해서 무어는 다큐멘터리에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두 가문이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은 부시 전 대통령 시절부터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아버지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부호인 모하메드 빈 라덴과 당시 텍사스에서 석유기업을 운영하고 있던 부시 전 대통령은 긴밀한 비즈니스 파트너였으며, 부시 전 대통령은 빈 라덴 가문이 지분을 소유한 칼라일 투자그룹에서 유급고문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이러한 두 가문의 관계는 현 부시 대통령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 전 대통령과의 고리를 원했던 빈 라덴 일가가 대학 졸업 후 석유사업에 투자했다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던 부시 대통령의 회사에 거액을 투자했으며, 그 자신도 후에 칼라일 투자그룹의 중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러한 유착 관계는 9·11 테러 이후 두 달간 더 지속되었다”고 주장하는 무어는 “테러 이후 부시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비극적인 상황을 오히려 정책적으로 활용하기에만 급급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돈벌이로 활용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비난했다.
“9·11 이후 사우디 부호들과 부시 일가를 비롯한 측근 세력들이 투자한 회사가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의 장면은 이제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으로 옮겨간다.
빈 라덴 체포와 탈레반 정권 붕괴라는 두 가지 명목하에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던 부시 정부의 진짜 목적은 사실 ‘돈벌이’에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 아프가니스탄을 횡단할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의 건설사업을 손쉽게 추진함과 동시에 카스피해의 풍부한 지하자원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한 술수였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이야기를 옮겨 가면서 영화는 방향을 전환한다. 이라크 주둔 미군들이나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생생한 인터뷰로 구성되는 장면들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미국 시민들의 모습, 불에 타 죽거나 트럭에 매달려 끌려가는 미군들의 모습 등을 비롯해 이라크인을 학대하는 미군들의 모습 등과 함께 교차되어 보여진다.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와 달리 무어 자신보다는 정치인, 군인, 유가족, 전문가 등 평범한 미국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진 이 다큐멘터리의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점은 바로 미군의 이라크인 학대 장면에 있다. “학대는 교도소 안에서만 자행된 게 아니다. 교도소 밖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그는 지난해 12월 이라크 사마라에 세 명의 프리랜서 카메라맨과 통신원을 잠입시켜 몰래 촬영한 장면을 영화에 삽입시켰다.
미군이 얼굴에 복면을 쓴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이라크인을 학대하는 장면에 대해 그는 “그 이라크인은 술에 취한 노인이었다”고 밝히면서 어느 부대 소속의 미군이었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가 정치적 색깔을 띠고 있는 동시에 편파적이라는 의견에 대해 무어는 “가능한 중립적인 자세에서 제작에 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미군의 인터뷰와 함께 참전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미군의 인터뷰도 함께 보이는 등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현재 제작사 모기업인 디즈니사의 배급 거부로 다른 배급사를 물색중인 무어는 디즈니사를 향해 마침내 폭탄 선언을 했다. “다음 목표는 디즈니사가 될 것이다”고 밝힌 그는 “나와 디즈니사 간의 거래 관계, 특히 이번 <화씨 9/11>의 배급과 관련해서 낱낱이 폭로할 예정이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찌 됐건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이 영화가 미국 내 개봉에 힘을 받게 된 것은 사실. 이제 남은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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