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된 김종원 이사장이 지난 13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검찰의 수사 결과는 이 사건을 ‘단순 사기’에 무게를 둔 듯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공선법을 추가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또 ‘청와대 회유설’ ‘한나라당 공천 괴담’ 등 이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불거졌지만 검찰이 명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시키려는 모양새를 취해 ‘봐주기 수사’ ‘부실 수사’ 논란도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사기죄 ‘피해자’ 신분에서 한 순간에 ‘피고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김 이사장의 ‘반격’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 회유설’ 등 이번 사건의 전모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어줄 핵심 인사로 지목받고 있는 김 이사장이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작심하고 ‘폭탄 발언’을 쏟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언니 게이트’ 제2라운드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검찰은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김옥희 씨가 공천 청탁 외에 인사 청탁 명목으로 2억여 원을 받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이번 사건을 김 씨의 개인비리 내지는 사기극으로 결론짓는 듯한 모양새다. 김 씨와 브로커 김 아무개 씨를 기소하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알선수재 혐의 외에 공선법 위반 혐의도 추가했지만 정가에서는 공선법 적용은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구색 맞추기’라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 ‘공천 청탁 로비’ 여부에 대해 “로비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 씨가 청와대에 수차례 전화를 한 의혹에 대해 검찰은 통화 상대방은 김윤옥 여사가 사저에 있을 때 40년간 가정부로 일하다 청와대로 들어간 J 씨와 김 여사의 운전기사인 S 씨라고 밝혔다. 검찰은 김 씨의 1~4월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사한 결과 김 씨는 J 씨와 10여 차례, S 씨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통화 내용도 김 씨가 J 씨한테 빌린 1000만 원의 빚 독촉과 관련된 것으로 김 여사와는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또 김 씨의 청와대 출입설은 전혀 사실무근이고, 김 씨가 김 이사장으로부터 건네받은 30억 3000만 원의 용처와 관련해서는 일부 개인적으로 사용했지만 제3자에게 흘러간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검찰은 김 씨가 공천 사기 외에 대기업과 공기업 감사직에 채용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3명으로부터 모두 2억여 원을 받아 챙긴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공천 로비가 아닌 김 씨의 ‘개인 사기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방증하는 정황들이다.
하지만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에도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당초 김 씨와 김 여사는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김 씨는 김 여사의 가정부 J 씨와 40년 정도 알고 지낸 절친한 사이고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기에도 10여 차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운전기사인 S 씨와도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가 김 여사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했을 가능성이 열려 있었지만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한 조사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김 씨의 청와대 출입 여부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청와대 출입기록을 직접 파악하지 않고 민정수석실에서 넘겨받은 기록만 검토하고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노인회가 김 이사장의 비례대표 공천 탈락에 항의해 청와대에 보낸 진정서에 대한 조사도 명쾌하지 않다. 노인회 측은 진정서를 팩스로 보낸 다음날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 ‘높은 양반에게 보내는 접수 번호가 따로 있으니 다시 보내라’고 해 다시 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노인회가 팩스를 보낸 것은 한 차례뿐이고 직원이 보고 바로 폐기했다는 청와대 측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노인회 진정서 건은 청와대 유력인사가 김 씨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긴 뇌관이었지만 검찰은 청와대 측에서 누가 노인회에 전화를 걸었는지, 진정서가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를 하지 않아 ‘부실 수사’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김 씨가 김 이사장으로부터 2월 25일과 3월 7일에 받은 20억 원을 입금하지 않다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이 확정(3월 24일)된 뒤 이틀(3월 26일) 후에 자신의 계좌에 넣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깔끔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김 씨가 공천 로비 명목으로 제3자에게 돈을 건넸다가 다시 반환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찰 수사는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않아 의혹만 무성한 상태다.
이처럼 ‘언니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의혹 해소는커녕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이 가열되고 있어 검찰의 추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치열한 정치 공방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13일 구속된 김 이사장의 폭탄 발언 가능성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은 김 이사장이 김 씨와 함께 이번 사건의 전모와 ‘청와대 회유설’ 등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어줄 핵심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사기 피해자’ 신분이었지만 검찰에 구속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돌변했고 검찰이 기소할 경우 ‘피고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다. 그는 검찰에 구속되기 전에 변호인을 통해 “억울하다”는 심정을 토로할 정도로 김 씨 등에게 극심한 배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구속수사가 진행될 경우 잦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 미뤄 김 이사장 또한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 실형을 면하기 위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폭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김 이사장은 서울시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부터 인연을 맺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둘러싼 여권 핵심부와의 ‘정치적 빅딜설’ 내지는 ‘청와대 회유설’ 등 갖가지 의혹을 해소시켜줄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아 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이사장의 이력과 30억 원대 로비 자금이면 공식라인을 통할 수도 있었을 텐데 70대 중반인 김옥희 씨에게 거액을 ‘투자’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고 전제한 뒤 “사건 뒤처리 과정에서도 김 이사장이 김옥희 씨 및 브로커 김 씨와 사건 축소 모의를 했던 정황과 청와대 측과의 접촉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에 미뤄 그가 어떤 식으로든 여권 핵심부와 정치적 ‘딜’을 시도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전했다.
김 이사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한견표 변호사는 8월 14일 기자와 만나 “김 이사장은 당초 자신은 사기 피해자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공선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매우 억울해 하고 있다”며 “기소될 경우 재판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이어 “최초 두 차례 건넨 20억 원은 선거법 47조2항 도입 이전이라 소급적용하기 어렵고 나머지 10억여 원은 대한노인회에 후원 명목으로 준 자금인 만큼 공천과는 무관하다”며 검찰의 공선법 적용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 변호사 측의 한 인사는 ‘김 이사장이 검찰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폭로할 가능성도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법리적 변론만 담당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김 이사장이 스스로 판단할 것으로 본다”며 “구속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변호사의 조력은 물론 청와대의 입김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어 김 이사장이 심경 변화에 따라 폭탄 발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검찰 관계자들도 이번 사건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는 김 이사장이 쥐고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가 검찰 수사를 인정할 경우 사건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지만 검찰 수사 내용을 전면 부정하거나 ‘청와대 회유설’ 등 이 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에 다시 기름을 부을 수 있는 폭탄 발언을 쏟아낼 경우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또다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부가 구속된 김 이사장의 ‘입’을 예의주시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청와대 민정팀과 검찰이 핫라인을 구축하고 김 이사장에 대한 수사 수위를 조절하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두 김 씨의 구속기소와 김 이사장에 대한 구속으로 ‘언니 게이트’가 제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조기 진화’냐 ‘확전’이냐를 가늠할 핵심 변수로 부상한 김 이사장의 ‘입’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