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 작은 사진은 한나라당에서 김해 토지 차명매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 ||
민주당 등 야권은 이명박 정부 7개월간의 실정과 각종 게이트 의혹 사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도 재조명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을 주요 공격 타깃으로 정하는 등 ‘맞짱’ 승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국감이 노무현 구 정권과 이명박 현 정권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돼 자칫 ‘폭로 국감’으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감 스타’를 노리고 있는 여야 일부 소장파들이 전·현 대통령을 비롯한 거물급들이 연루된 새로운 ‘비리 X파일’을 터뜨리기 위해 자료 취합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어 이로 인한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가을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감 전쟁’ 속으로 들어가 봤다.
여야는 이번 국감이 18대 국회 첫 국감인 동시에 정권교체 뒤 처음으로 열리는 격전장이라는 점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올인’ 승부를 다짐하고 있다. 여기에 1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져 ‘공격수’와 ‘수비수’가 바뀐 만큼 전열을 재정비하며 상대방에 카운터펀치가 될 ‘한 방’을 터뜨리기 위해 치열한 자료 취합 경쟁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여야의 국감 전략은 크게 ‘잃어버린 10년’ 대 ‘잃어버린 7개월’이라는 대결 구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전·현 정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면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네거티브 전략이 국감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국감이 전·현 정부 간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아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치부를 다시 들춰내는 극한 이전투구가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여야 정치권은 전·현직 두 대통령을 국감 타깃으로 설정한 상태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권은 이명박 정부 출범 7개월간의 실정을 낱낱이 파헤치는 동시에 이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사건을 집중 조명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민주당은 9월 중순부터 ‘국정감사 준비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는 등 이번 국감을 통해 야성 회복과 지지율 반등을 꾀하겠다는 당찬 결의를 다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사촌처형인 김옥희 씨의 공천헌금 비리 의혹, 이 대통령의 사위인 한국타이어 부사장 조현범 씨의 주가조작 연루 사건, 한나라당 김귀환 서울시의장의 서울시의회 돈봉투 사건,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구설수에 올랐던 유한열 전 상임고문의 군납 청탁 사건 등을 ‘4대 게이트’로 규정하고 총공세를 취한다는 전략이다.
또 숱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암동 DMC 사업과 관련해서는 정두언 의원 등을 증인으로 채택해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사업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 오른쪽은 제2롯데월드 조감도. | ||
민주당은 제2 롯데월드 건설 사업을 ‘친구 게이트’로 규정하고 장경작 롯데호텔 사장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 등 서울시 관계자와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내정자 등 공군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이 대통령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친구 게이트’를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부각시키는 데 화력을 집중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10월 1일 기자와 만나 “이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사건은 현 정부의 실정과 부도덕성을 환기시키려는 목적이 큰 반면 제2 롯데월드와 DMC 사업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X파일’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X파일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두 게이트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정황이 적시된 고급 정보를 당에서 입수한 것으로 안다”며 “당 차원에서 은밀히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여의치 않을 경우 국감을 통해 사실 여부를 규명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도 이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 사건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함께 공동보조를 맞춰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는 방침이어서 이 대통령은 국감 기간 동안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을 겨냥한 야권의 융단폭격 전략에 맞서 한나라당은 ‘맞짱’ 승부를 펼친다는 전략이다. 집권 여당이지만 야권의 공세를 단순히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전개된 좌편향적 정책의 폐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입장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와 참여정부 때 불거졌던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도 재조명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국정감사 주요 공격이슈’ 문건을 통해 참여정부 실세들과 관련된 15개 핵심 이슈를 선정해 상임위 별로 담당토록 하는 등 치밀한 국감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이 9월 26일 공개한 문건에는 최규선 게이트를 비롯해 KTF 비자금 조성 의혹, 프라임그룹 비자금 사건, 청와대 기록물 유출사건, 우리들병원 비자금 조성 의혹,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연루된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 사건 등이 적시돼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문건에 적시된 사건별로 참여정부 비서실장과 수석, 전직 장관과 의원 등의 이름을 실명과 비실명으로 거론하면서 의원들에게 국감 증인 채택시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이번 국감을 과거 정권의 뒷조사 국감으로 몰아가 야당에 대한 사정당국의 정치보복을 뒷받침하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국감을 앞두고 여야 간에 전략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노무현 정권이 숨긴 부정부패를 민주당이 덮기 위한 꼬투리 잡기에 불과하다”고 맞서고 있다.
▲ 민주당이 제2롯데월드 사업 관련 국감 증인으로 신청한 장경작 롯데호텔 사장(왼쪽)과 오세훈 서울시장. | ||
한나라당에 따르면 박 회장은 회사 자금으로 김해 노른자위 땅을 차명으로 매입해 수백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은 9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 회장은 지난 2002년 10월 14일 김해시 외동 1264번지에 7만 4470㎡를 343억 원에 차명으로 구입했으며 매입 자금은 회사자금을 횡령해 충당했다. 토지공사는 이를 알고도 적극 협조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며 박 회장의 횡령 및 권력형 비리 의혹을 동시에 제기한 바 있다. 박 회장은 최근 검찰에 의해 탈세 혐의 등으로 출국금지된 상태다.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 회장이 부산·경남을 거점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이번 국감을 통해 땅 투기 및 횡령 의혹에 대해 철저히 파헤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해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미 박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한나라당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의혹 거리인 김해 복합레저타운 사업은 김해시 진례면 일대 125만 평 부지에 스포츠·레저타운을 2010년 말까지 조성하는 대형 사업으로 총 투자비용만 4400억 원대에 달한다. 2005년 6월 송은복 김해시장과 김승광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공동 추진키로 협약을 체결했고, 사업비는 군인공제회가 90%,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대저토건이 각각 5%씩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이 사업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몇몇 핵심 실세들과 김해시 일부 공무원들이 개발정보를 이용해 ‘알박기’ 형태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토지 보상 등을 둘러싼 해당지역 일부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김승광 전 이사장이 이와는 별건이긴 하지만 열병합발전 설비업체인 케너텍 측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는 사실도 ‘김해 게이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이 4400억대의 대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참여정부 실세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펼쳤을 개연성이 높고 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검은 거래가 오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은 박 회장의 김해 땅 차명 매입과 김해 복합레저타운 사업이 참여정부 때 이뤄졌다는 사실에 미뤄 정권 차원의 비호 내지는 검은 커넥션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을 통해 이 두 건을 ‘김해 게이트’로 몰아가면서 검찰 수사를 유도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을 겨냥한 국감 전략을 마련한 만큼 이번 국감은 참여정부와 현 정부 간의 치열한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민주당이 준비하고 있는 ‘제2 롯데월드 커넥션’ 뇌관이나 한나라당이 장착한 ‘김해 게이트’ 뇌관이 국감 과정에서 폭발할 경우 정치권은 또 한 번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