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5일 총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 후 밝은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이재오 전 의원. 이 전 의원은 자신만만했던 총선에서 낙마한 뒤 미국으로 출국했지만 정치 재개의 꿈을 안고 내년 초쯤 귀국할 것으로 추측된다. | ||
그런데 지난 9월 추경예산안 처리 실패 책임을 물어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한 바 있는 친 이재오 계파가 이번에는 종부세 개편안 처리 여부를 두고 박희태-홍준표 체제에 정면으로 칼끝을 들이댈 태세여서 당내 권력 갈등이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친 이재오 계는 홍 원내대표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청와대의 ‘재신임’으로 일단 상황이 종료됐다. 하지만 친 이재오 계는 연말 개각설과 내년 초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앞두고 여당 지도부의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어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친 이재오 계의 ‘박희태-홍준표’ 체제 흔들기의 막후를 따라가 봤다.
지난 9월 11일 1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무산되자 홍준표 원내대표의 얼굴은 사색이 돼 있었다. 예상치 못한 ‘부주의’에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신임을 받고 있었지만 친 이재오 그룹과는 권력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후보직을 두고 홍 대표와 대결했고, 공성진 최고위원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서울시당 위원장직을 두고 홍 대표와 갈등을 빚은 ‘구원’이 있기 때문에 양측의 관계가 협조적일 리 만무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추경안 처리 실패의 ‘호재’를 만난 친 이재오 계파는 일제히 ‘홍준표 책임론’을 제기하며 파상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홍 원내대표가 수고했다”며 홍 대표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양측 갈등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바 있다. 당시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홍 대표의 퇴진에 대해 반대한다. 시기가 적절치 않다. 앞으로도 잘하면 끝까지 가는 것 아니겠느냐. 중도 퇴진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라며 홍 대표 체제 유지를 ‘보증’했다.
사실 ‘친이그룹’은 대선 직후 권력 구도 개편과 함께 친 이상득, 친 이재오, 친 정두언 계파 등으로 나뉘어졌다. 이상득 의원은 자신의 ‘인맥’들을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심어 놓아 권력의 최고 실세로 부상했다. 하지만 개국 공신으로서 논공행상에 서운함을 느낀 친 이재오, 친 정두언 계파는 계속해서 이상득 의원에게 ‘권력 분점’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어왔다. 친 이재오+정두언 그룹의 첫 번째 공격은 ‘형님 공천’ 의혹을 제기했던 ‘55인 항명 파동’으로 나타났다. 그 뒤 친 정두언 그룹이 지난 6월 청와대 일부 친 이상득 계파의 ‘권력 사유화’ 논란을 제기하며 2차 공격을 벌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이그룹의 ‘친위쿠데타’를 진압하며 상황을 종료시켰다. 이때부터 이상득 의원은 지금까지 계속 철옹성을 유지하며 당내 최고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친 이재오, 친 정두언 그룹과 이상득 의원 간의 갈등은 그 뒤에도 계속 잔불로 남아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강력한 신임 아래 ‘관리형’으로 ‘박희태-홍준표’ 체제가 들어섰고, 지난 9월 친 이재오 그룹이 추경예산안 처리 실패의 책임을 물어 홍준표 원내대표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겉으로는 홍 대표에 대한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페인트 모션’이었고, 결국 친 이재오 그룹이 최고 실세 이상득 의원을 향해 던진 견제구나 마찬가지였다. 이상득 의원이 동생의 등에 업혀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친 이재오 그룹의 권력투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이 대통령의 두터운 수비벽에 반 이상득 세력은 무너져버렸다.
그런데 이번 정기국회에서 친 이재오 계의 제4차 공격이 예고되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친 이재오 계가 쏘아 올릴 ‘미사일’은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사항으로 떠오른 종합부동산세법 개편안 처리 결과. 특히 지난 3차 공격 때는 책임론의 칼끝이 홍준표 대표에게로만 향했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박희태 대표최고위원에게까지 그 공격 반경이 넓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친 이재오 그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종부세 개편안의 법안 처리는 꼭 정부 원안대로 처리돼야 한다. 사실 당론에서는 정부안을 수용키로 했지만 11월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당 내부의 심각한 파열음이 예상된다. 민주당의 반대는 둘째 치고 친박그룹 의원의 상당수가 정부원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여기에 비수도권과 비강남 출신 의원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종부세 처리의 대열은 사분오열돼 있다. 이런 과정에서 박희태-홍준표 체제가 정부 원안보다 대폭 후퇴해 누더기 법안을 만들어 법안 제정의 본래 취지를 크게 훼손하거나, 최악의 경우 법안 처리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번에는 홍준표 대표는 물론 박희태 대표에게도 종부세 원안 처리 실패의 책임을 묻고 사퇴를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나라당은 종부세 개편안을 두고 확실한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최근 당 지도부는 정부가 제시한 안에 대해 ‘선 수용, 후 보완’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정리했기 때문에 추후 국회 입법과정에서 종부세 개편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첨예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과세기준의 9억 원 상향조정을 골자로 한 ‘원안론’을 고수하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과세기준 상향조정 반대를 비롯해 정부 개편안에 대한 전반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원들까지 그 의견이 다양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172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만 믿고 표결을 강행하다가 자칫 큰코다칠지 모른다는 경고 사인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일부관계자들은 “최근 미국에서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월가 부자들을 위해 국민 세금을 헌납할 수 없다’는 성난 민심 앞에서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뿌리치고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그것이 재현될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친 이재오 계가 종부세 처리 실패를 전제로 현 지도부 교체를 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당권 장악이다. 아니면 최소한 이상득 의원에 대한 견제장치라도 튼튼하게 만들어 차기 대권주자 옹립을 위한 초석을 다져놓겠다는 마스터플랜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연말 당·정·청의 전면 쇄신을 통해 내년 초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입국에 ‘붉은 카펫’을 깔아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앞서의 친 이재오 관계자는 ‘연말 개각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미국발 금융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논란이 됐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일부 장관과 어청수 경찰청장, 한상률 국세청장 등을 물갈이해야 한다. 청와대 보좌진은 출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교체 사유가 없긴 하지만 일부 기대에 못 미친 수석도 교체 대상에 올라야 한다. 그래서 박희태-홍준표 체제가 종부세 개편안 가결 실패로 낙마할 가능성이 커지면 연말에 당·정·청의 대대적 패키지 쇄신이 불가피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오는 11월 종부세 처리 실패로 당 지도부의 교체 요구가 거세지게 되면 연말에 총리를 포함한 정부,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와 함께 일괄적으로 전면 쇄신이 행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청와대 쇄신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친 이재오 계는 “홍준표 원내대표를 거세게 몰았다가 좀 봐주었던”(한 친이 의원의 표현) 측면이 있었다. 당시 일각에서는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귀국과 복귀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직원’들이 일종의 거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이 홍준표 원내대표를 엄호하고 여기에 친 이재오 계로부터 한때 불출마 요구까지 받았던 이상득 의원이 퇴진론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홍준표 원내대표는 가까스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 힘이 빠진 홍 대표를 대신해 청와대는 정치경험이 풍부한 박희태 대표가 당내 여러 현안에 대한 조종자 역할을 맡으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박 대표도 청와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구시대적 이미지가 강해 국민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고, 그 자신이 차기 대권주자도 아니기 때문에 ‘영’이 안 서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박 대표가 최근 ‘초선들도 컨트롤하기 힘들다’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그의 리더십이 한계에 이른 느낌이다. 그래서 친 이재오 계가 박 대표의 퇴진까지 같이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친 이재오 계파 핵심 관계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내년 초쯤 귀국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그는 이 전 최고위원의 컴백 자리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특보를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전 최고위원이 사실상 여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지부진하던 차기 대권주자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의 귀국은 2인자의 급부상을 견제하려는 청와대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이 전 최고위원 얘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친박그룹의 ‘반대’ 때문에 지난한 항로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희태-홍준표’ 체제의 조기 퇴진이 여러 가지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친 이재오 그룹의 현실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친 이상득 계와 수도권의 이명박 대통령 직계도 똑같이 그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른바 ‘범’친이그룹은 박희태-홍준표 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거대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소수 야당에 일방적으로 끌려만 다니며 문제점만 노출시킨 현 지도부의 리더십에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한계가 결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최근 세 계파에 소속된 의원들은 대체로 현 박희태-홍준표 지도부 체제를 조만간 교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 교체 시기는 앞서 살펴본 친 이재오 그룹의 전략과 같은 연말쯤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