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 ||
지난 9월6일 오사카 지방재판소 법정에 운동복을 입은 초라한 노인이 서 있었다. 하얗게 센 짧은 머리에 바짝 마른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다케모토 피고를 징역 4년에 처한다”는 재판관의 판결이 내려지자 노인은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관이 “복역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면 생활보호나 공적원조 제도를 잘 활용해 두번 다시 법정에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덧붙이자 노인은 다시 한 번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법정을 나갔다.
이 초라한 노인의 이름은 다케모토(76)로, 고이즈미 총리의 전 매형이다. 고이즈미 총리에게는 세 명의 누나가 있는데, 다케모토씨는 1955년 첫째 누나인 A씨와 결혼했으나 6년 후 이혼했다.
다케모토씨는 절도죄로 복역하다가 올해 3월에 석방됐지만 불과 한 달 반 만에 또 다시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다케모토씨는 지금까지 절도로 15번이나 체포된 전과를 갖고 있는 상습범이다.
다케모토씨의 수법은 단순하다. 고급주택에 침입해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훔치는 것. 이번에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가스버너를 이용해 유리창을 깬 후 2만3천엔(약 20만원)을 훔쳤다. 그리고 곧바로 근처의 집에 침입했으나 경보기가 울려서 자전거를 훔쳐 타고 도주했다. 그리고 이틀 후 다른 집에 침입하다가 체포됐다.
다음은 법정에서 다케모토씨와 변호사 사이에 오간 대화다.
─지난 3월 출소 후 어떻게 생활했나.
▲경륜장에 가서 ‘코치’를 했다. 사람들에게 확률이 높은 조합을 가르쳐주고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이다. 그것으로 돈을 벌어 생활을 했다. 오사카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사우나에서 잠을 잤다.
─그 일은 어떻게 됐나.
▲더비가 끝나자 그 후에는 일이 없어 생활이 어려워졌다. 직업소개소에도 가봤지만 월급 5만엔(약 45만원) 정도의 일자리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생활보호제도에 대해서 알고 있나.
▲가봤자 별 볼일 없기 때문에 구청에 가지도 않았다.
─돈이 떨어지면 남의 것을 훔치면 된다는 생각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이 나이에 노숙을 하는 건 힘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당신은 40년 동안 절도를 저질러 왔는데,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정말로 부끄럽다. 죄송하다.
아무리 이혼을 했다고는 해도 15번의 절도는 유명한 정치가 집안의 일원이었던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케모토씨에겐 과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 고이즈미 총리의 매형 이야기를 보도한 일본 <주간겐다이>. 왼쪽 페이지의 사진은 고이즈미가 어릴 때 찍은 가족 사진이다. | ||
사건기록에는 이런 진술이 있다.
“1955년 6월에 A씨와 결혼을 했고 2년 후에 딸이 태어났다… (중략) …도박에 빠져 아내에게 버림을 받아 1961년에 이혼했다.”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다케모토씨는 딸의 친권을 둘러싸고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고이즈미 총리의 아버지가 그의 딸을 양녀로 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즉 다케모토씨의 딸은 호적상 고이즈미 총리의 여동생이 되는 셈이다. 이혼 후 다케모토씨는 더욱 도박에 빠져 절도를 저지르면서 형무소를 들락거리게 된다.
다케모토씨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원인을 고이즈미 집안에 돌리고 있다. 형무소에서 그는 동료에게 고이즈미 집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옛날부터 고이즈미 집안과는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와는 잘 안다. 그를 만난 것은 아마도 내가 고등학생 때일 것이다. 그때 녀석(고이즈미 총리)은 유치원생이었다. A와의 결혼식은 너무 소박해서, 명문가 딸의 결혼식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마치 숨어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 같았다. 집안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다가, 반대를 무릅쓴 결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딸이 태어나고 행복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다. 딸을 되찾기 위해 민사재판까지 갔지만 결국에는 딸의 친권을 고이즈미 집안에 빼앗기고 말았다. 딸을 그렇게 빼앗기자 화가 났다. 이혼은 했지만 딸이 보고 싶었다. 몇 번인가 고이즈미 집안에 찾아갔지만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더럽다거나 도둑놈이라는 말도 들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아이는 우리 집안의 사람이니 (다케모토와는) 더 이상 관계없다. 다음에 또 찾아오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슬펐다.”
다케모토씨의 형무소 동료는 “다케모토씨는 아이를 빼앗기고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건 고이즈미 집안이라며 분노를 느끼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서도 ‘총리의 자격도 없다’며 ‘고이즈미 집안과 얽히지만 않았어도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슬퍼하곤 했다”며 다케모토씨의 심정을 대변했다.
올해 4월 다케모토씨가 침입한 집의 주인은 “아침이 될 때까지 (침입사실을) 몰랐다. 아침에 화장실에 가니 창문이 깨져있어 깜짝 놀랐다. 도난품 중에는 여성용 코트도 있었다. 추워서 훔친 것으로 생각한다. 경찰이 범인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백발의 점잖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전 매형인 줄은 몰랐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까지 추락하다니 가엽다는 느낌이 든다”고 동정을 나타냈다.
다케모토씨가 저지른 범죄는 용납할 수 없지만, 그의 사정을 듣고 나면 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정함’으로 유명한 고이즈미 총리의 동정을 구하기란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