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14일 2005국제연합 총회 만찬에서 건배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 지난 86년 금주를 선언한 그가 최근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이터/뉴시스 | ||
일터에서의 하루하루가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면 십중팔구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는 밤이 허다할 것이다. 하물며 자칭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자처하며 이리저리 바쁜 미국의 대통령은 오죽할까.
얼마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59)이 이라크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충격으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불거지자 ‘술 마시는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부시가 한때 알코올 중독자에 가까울 정도로 음주벽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분명 심각한 문제인 게 사실. 이런 부시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한편에서는 “오죽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그럴까”라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제 버릇 남 주나”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는 것.
그렇다면 역대 미국의 대통령들 중 부시처럼 술버릇 때문에 고생을 한 사람으로는 누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시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술고래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먼저 ‘술 마시는 부시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정확히 19년 전인 지난 1986년, 부시는 자신의 40세 생일을 기점으로 ‘대단한 결심’을 하나 했다. 바로 온 가족 앞에서 ‘금주’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유전 사업에 실패한 후 의기소침해 있던 그에게는 어떤 전환점 같은 것이 필요했다. 게다가 40세까지 계속되던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도 점차 그에게는 위기로 다가왔다. 청년 시절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파티를 오가며 술을 마셔대던 그는 심지어 주위 사람으로부터 “알코올 중독자와 다를 바 없다”는 걱정을 사기도 했다.
26세였던 지난 1972년에는 심지어 미성년자였던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나가 술집에서 질펀하게 술을 마셨는가 하면 1976년에는 음주 운전으로 경찰에 체포돼 1백50달러(약 16만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부시는 지난 2000년 대선 캠페인 때 당시의 일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면서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젊었을 때에는 간혹 술을 많이 마시긴 했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심각하긴 심각했던 걸까. 마침내 그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다짐한 후 눈을 돌린 것은 바로 ‘종교’였다. 마침 알고 지내던 세계적인 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도움으로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술을 끊게 된 그는 그 후 백악관에 입성할 때까지 철저하게 금주를 실천해왔다.
▲ 린든 존슨 대통령 | ||
그렇다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부시처럼 술을 좋아했던 대통령으로는 또 누가 있을까. 부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술고래였던 사람은 다름 아닌 조지 워싱턴이었다. 어찌나 술을 좋아했던지 그는 자신의 연봉의 7%가량을 정기적으로 술값으로 지출할 정도였다고. 이것을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해 볼 경우 매년 7만달러(약 8천만원)를 술값으로 지출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와인 애호가였다.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늘 백악관 참모들을 놀라게 했던 그는 백악관의 와인 창고를 최상급 와인으로 가득 채워놓는 호사를 즐기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즐겨 마시는 와인을 ‘서민의 술’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와인을 유럽에서 수입해오고 있던 터라 우선 와인에 대한 세금을 낮추었으며, “직접 와인을 생산해보자”라는 희망을 품고 와인 양조장에 투자하는 열의도 보여주었다. 제퍼슨의 고향인 버지니아주 샬롯스빌에 위치한 이 양조장은 현재 ‘제퍼슨 포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포도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36대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음주와 관련된 다소 괴팍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가 가장 즐겨 마시던 술은 스카치 위스키와 소다수를 섞어 만든 ‘스카치&소다’였다. 그런데 문제는 술을 마시는 그의 괴상한 방식에 있었다. 얌전히 앉아서 마시는 것도 모자라 아예 운전대를 잡은 채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었다.
텍사스 목장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종종 자신의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빙을 즐기던 그는 오른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왼손으로는 커다란 술잔을 든 채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했다. 술이 떨어져도 문제될 건 없었다. 속도를 늦춘 후 창 밖으로 술잔을 삐죽 내밀어 흔들거리면 뒤에서 마차를 타고 쫓아오던 경호원이 차 옆으로 부리나케 달려와 빈 잔을 가져가서는 술을 채운 후 다시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술잔을 채운 존슨 대통령은 다시 유유히 속력을 내면서 드라이빙을 시작하곤 했다.
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본인보다는 부인의 음주 습관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경우. 본인은 가끔 진토닉을 마시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부인인 베티 포드 여사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지난 1970년대 말 스스로 국민들 앞에 나서서 알코올 중독자임을 시인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던 그녀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은 결과 건강을 되찾았으며, 그 후 ‘베티 포드 센터’를 설립해 많은 알코올 중독 환자들을 돕는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모범적인 음주 습관을 보여주었던 대통령으로는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있었다. 평생 아주 소량의 술만 마셨던 그가 그나마 즐겨 마셨던 술은 ‘오렌지 블러섬’이었으며, 이는 알코올 농도가 아주 낮은 음료수 수준의 칵테일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던 까닭에 술을 멀리했다고 밝혔던 그는 식사 때 마시는 와인 한 잔 정도가 주량의 전부였다.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도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완벽한 금주가로 알려져 있으며, 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태프트의 경우에는 단 1%의 알코올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절대로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금주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