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4월경 조용원 부부장(원안)과 함께 민들레 학습장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공개 활동 과정에서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은 누구일까.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총 47회로 집계된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나타났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40회,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32회를 기록했다.
2015년 김정은 수행 횟수 순위에서는 황병서가 총 80회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고, 조용원이 43회로 2위를 차지했다. 불과 1년 만에 두 사람의 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물론 수행 횟수를 권력 서열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론 유의미한 자료로 여겨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조용원은 김정은 몇 걸음 뒤에서 늘 수첩과 필기구를 부지런히 놀리고 있다. 5월 7일 노동당 제7차 대회 이틀째 행사에서는 조용원 부부장이 김정은 옆에서 무릎을 꿇고 보고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조용원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 존재 자체가 희미했던 인물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중앙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 안팎이다. 우리 국정원 역시 조용원이 김정은 수행 과정에서 자주 출몰하던 2015년 즈음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실상 ‘듣보잡’에 불과했던 조용원이 어떻게 핵심 실세로 급부상할 수 있었을까. 일단 필자가 북한 내부 관계자를 통해 파악한 조용원의 개인 신상은 다음과 같다. 조용원은 1956년 자강도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제 갓 육십을 넘은 비교적 젊은 간부다. 집안 성분이 두드러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중등학교 재학 시절 뛰어난 학업성취로 주목 받았고, 중앙당 1과 의탁생으로 발탁됐다.
1과 의탁생은 중앙당에서 중등학교 재학생 중 뛰어난 인물을 선별해 사전 발탁하는 인사제도다. 발탁된 1과 의탁생은 입당 초기 보조지도원(서무) 생활 몇 년을 거쳐 그 쓰임에 따라 북한 유명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을 졸업한 의탁생들은 당 간부로 다시 복귀하여 근무하게 된다.
즉, 북한의 중앙당은 조용원의 싹수를 미리부터 알아본 셈이다. 1과 의탁생으로 발탁된 조용원은 1974~1980년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를 거쳐 줄곧 당 조직지도부에서 당직자로 활동했다. 그는 보조지도원, 지도원, 부과장, 과장, 부부장 등 조직지도부 말단부터 상급 간부까지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또한 조용원은 부인 사이에서 1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고 자녀 중 한 명은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조용원은 별다른 배경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 윗자리에 오른 케이스다. 그는 실력과 더불어 적절한 처신으로 승승장구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아랫사람들에겐 철저한 원칙주의자지만, 윗사람들에겐 ‘예스맨’에 가깝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직 내에서 그는 ‘서림이(한국의 아첨꾼)’란 별명으로 통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러한 구석이 김정은에겐 긍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국내외에서는 조용원이 2014년 부부장에 올랐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는 2010년 이미 조직지도부 부부장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직지도부에는 총 20여 명의 부부장이 존재한다. 급은 다르다. 최상급자인 제1부부장 아래 책임부부장, 부부장이 포함된다. 현재의 책임부부장급에 오른 것은 2013년경이다.
5월 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노동당 제7차 대회 이틀째 날 행사에서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김정은 옆에 무릎을 꿇고 보고를 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 포착됐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이 조용원을 자기 사람으로 등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14년 발생한 평양시 아파트 붕괴 사건 당시 조용원은 검열책임자로 나섰다. 필자는 이미 지난 2015년 11월, 본지(제1225호)를 통해 이 사건을 조명한 바 있다. 우리의 세월호 사건만큼이나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던 앞서의 사건은 자칫 평양 민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터였다.
이때 검열책임자로 나선 조용원이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문제의 아파트를 시공했던 인민보안부를 대상으로 철저한 검열에 나섰고, 그 실상을 낱낱이 김정은에 보고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김정은은 조용원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조용원과 관련해 파악한 내용 중 아주 중요한 대목이 있다. 그가 바로 평양시를 담당하는 책임부부장이란 사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며 그의 실권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과장 시절부터 평양시 담당으로 일해 왔다는 후문이다.
평양시당 책임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김수길이지만, 그 위에서 평양의 모든 정책과 간부(인사) 사업, 검열을 담당한 인물은 평양시 담당 책임부부장, 즉 조용원이다. 필자가 연재를 통해 수차례 반복하지만, 북한의 당 조직지도부는 북한의 모든 군 및 당 조직·기관을 검열하고 지도하는 최고 권력기관이다. 실세기관이라는 의미다.
평양은 일국의 수도 그 이상의 의미다. 한국의 서울 그 이상으로 북한의 사회·정치·경제·산업 전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집중도가 비정상적으로 크다. ‘북한에는 평양과 북한이란 두 나라가 존재한다’라는 말과 ‘평양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2015년 이후 그가 김정은을 자주 수행하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김정은의 현지지도 장소의 상당수는 당연히 수도 평양 일대다. 평양 담당 책임부부장인 조용원의 노출 빈도가 많아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한편 필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권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김원홍 및 보위부 검열의 책임자 역시 조용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만큼 조용원에 대한 김정은의 신뢰는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