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 속의 나무아래 초당을 머리에 떠올리며 틈틈이 숲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 방면에 일찍 눈을 뜬 사람들이 많았다. 여주에 부악문원을 세우고 잔디밭에 살림집과 집필실을 정취있게 배치한 소설가 이문열씨의 집을 구경하기도 했다. 축령산 편백나무 숲속에 산방을 지어놓고 사는 컬럼니스트 조용헌 씨의 집도 살짝 들어가 봤다. 그 산방은 대낮이면 빈 집이었다.
산방 앞 작은 연못으로 맑은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주인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요즈음 시골마을은 자연환경보다도 주민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빽빽한 편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장성의 한 마을을 찾아들어갔다. 마을의 가장 깊은 곳부터 인심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숲속에 황토집이 보였다. 그 앞의 블루베리 밭에서 일을 하는 오십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 마을 살기가 어때요?”
“우리부부도 도시에서 은행을 다니다가 은퇴하고 이곳으로 와서 삽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는데 몇 년 살다보니까 이제 익숙합니다. 오세요. 냇물도 맑고 좋습니다.”
편백나무 숲속 푸르름이 가득 찬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팬션이 있었다. 사십대 부부가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둥글둥글한 인상의 남편에게 살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 아토피 때문에 여기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숲속에 밤이 내리면 암흑 속에서 부부가 부둥켜안고 벌벌 떨었어요. 오년이 됐는데 이제는 아침이면 숲에서 내려오는 싱그러운 향기를 마시면서 살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의 텃세때문에 좀 고생을 했습니다. 저희는 아직 젊으니까 이웃집 밭에 가서 일을 해주고 하니까 마음을 차츰 열어 주더라구요. 어디나 그런 거 아닙니까. 세상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여기가 천국이 되더라구요.”
편백나무 숲 마을은 두 집단이 공존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마을로 들어와 넓게 자리 잡고 웅장한 집에 싱싱한 장미덩굴이 피어나는 정원을 만든 점령군 같은 집들이 마을의 중심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반대쪽은 오랫동안 주민들이 살아온 낡은 집들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오십년 이상 그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이장 집을 찾아갔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스레트 지붕이 간신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집채와 떨어진 화장실은 아직 재래식이었다. 코 앞에 지어진 화려한 별장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심사가 편할 것 같이 않았다.
“도시놈들이 와서 별장을 지어놓고 친구들을 불러 폼잡는 것 같아요. 와서 살지도 않고 어쩌다 콧바람만 쐬러 와요. 도시놈들은 와서 집을 지을 때도 먼저 담부터 쳐요. 촌놈들은 들어오지 말아라 이거죠.”
겸손하지 못할 때 시골주민들이 느끼는 반발심인 것 같았다. 이장을 달래면서 “시골 마을생활의 좋은 점을 얘기해 봐요.”라고 말했다.
“귀촌해서 살겠다고 하면 장점도 꽤 많아요. 농사를 지으면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여러 혜택이 많아요. 보험에 들어두면 수해가 나거나 가뭄 때문에 농사를 망쳐도 돈이 나오고요. 내가 축사를 만들어 짐승을 키우는데 솔직히 말해서 일 년에 일억은 벌어요. 거기다가 우리부부는 사과나무 와 감나무를 키우니까요. 이렇게 농사를 지어서 우리 자식 미국유학을 시켜 NYU를 졸업시켰다니까요.”
자식의 성공담에 이장은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낡은 스레트 지붕과는 어울리지 않게 마당 한 쪽에는 외제차인 시보레가 침묵하면서 서 있었다.
“마을에서 다른 재미있는 일은 없어요?”
“예전에는 저녁에는 이웃에 마실가서 같이 화투도 치고 술도 마시고 했는데 요즈음은 그런 게 다 없어졌어요. 마을생활도 저녁이면 부부끼리만 있죠. 우리 마을은 작년데 전체가 함께 관광을 갔어요. 마을이 텅텅 비니까 내가 지서에 얘기했지요. 지서에서는 마을사람이 없는 동안 순찰을 돌아줄 거니까 마음 놓고 다 여행을 갔다 오라고 하더라구요. 집집마다 문을 열어놓고 살아도 도둑이 들어올 염려가 없어요. 요즈음은 농작물을 넘겨도 온라인으로 통장에 입금되기 때문에 도둑들이 훔쳐갈 현찰이라는 게 없죠. 또 곳곳에 씨씨티브이가 있으니까 안전해요.”
“면사무소나 근처 도시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갑자기 아프거나 마을에서 도시로 가야 할 때 불편하지 않아요?”
“복지가 좋아져서 면사무소에서 백원택시 티켓을 마을 사람 어린애에게 까지 다 나눠 주요. 그게 뭐냐면 마을에서 전화를 부르면 면에서 택시가 바로 여기 농가까지 와서 공짜로 태워가는 거예요. 원칙은 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게 되어 있는데 기사들이 아예 받지를 않아요. 공짜 자가용이죠. 전화를 걸면 언제든지 택시들이 와요. 그리고 이 시골마을까지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들을 다 수거해 갑니다. 겨울이면 마을 곳곳의 길을 면에서 눈 치우는 차가 와서 깨끗하게 해 줘요.”
그만하면 편백나무 아래 새집 같은 초가삼간을 짓고 경전과 문학책을 읽으며 노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 오면 마을에서 텃세 부리지 않을 겁니까?”
“마을의 고문변호사로 일 좀 해 주면 되죠. 그런 일들이 더러 있어요.”
“그거 말고 사과 딸 때 도와줄 테니까 품삯을 주쇼”
“사과는 아무나 따는 줄 압니까? 일등품 사과를 만들어 팔려면 따는 순간도 꼭지가 붙어 있도록 기술이 필요해요. 도와주는 건 좋은데 변호사님이 딴 사과를 가져가는 걸로 품값을 대신하죠.”
내 또래 나이의 이장은 편백나무 숲 귀퉁이에 내가 글을 쓸 초당자리를 권해주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서 나가고 있었다. 그가 깊은 숲 아래 공터를 권유하면서 말했다.
“여름은 숲이 우거지고 꽃이 펴서 괜찮은데 눈 덮인 겨울의 숲은 오십년을 산 나도 참 쓸쓸해요. 골짜기 마을이라 해도 하루 몇 시간 밖에 없어요. 눈도 쉬 녹지 않고 말이예요. 그런 겨울을 견디실 수 있을까 몰라. 도시 사람들은 그것도 낭만이라고 하던데.”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