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직불금 부당 수령에 항의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 연합뉴스 | ||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책임론’을 집중 부각시켜 관련 의혹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정면돌파 전략을 마련한 상태다. 반면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강·부·자’ 정권과 연결시켜 이명박 정부에 치명타를 날린다는 맞불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여야는 이미 ‘저격수’들을 국조 특위에 전면 배치하는 등 피 말리는 ‘올인’ 승부를 선포한 상황이어서 전·현 정권 간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 정부 핵심 인사들의 증인 채택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고 명단 공개 대상 및 시점, 감사원 은폐 의혹 등을 둘러싼 공방전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가 저마다 전·현 정부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는 직불금 국조 시한폭탄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직불금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전되고 있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을 수령했다고 자진 신고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등 공직자가 무려 5만여 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10월 28일 모든 공직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직불금 수령·신청 여부에 대한 자진신고를 접수한 결과 공무원 4만 5331명과 공공기관 임직원 4436명 등 모두 4만 9767명이 직불금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선출직 단체장을 포함해 법무부 국세청 경찰청 등 권력기관과 교육 공무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학계와 언론계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직불금을 수령한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직불금 파문 정점에 있는 감사원은 감사위원 6명을 포함해 1급 이상 고위공직자 12명이 사표를 제출해 대대적인 ‘인사 태풍’을 예고하고 있고, 검찰은 직불금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전·현 정부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는 여야 정치권도 직불금 국조를 앞두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등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혈전을 준비하고 있다. 직불금 태풍이 성난 민심에 불을 지피면서 공직사회와 여의도 정치권을 덮치고 있는 형국이다.
여야는 이번 국조를 통해 전·현 정권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정국 주도권은 확실하게 장악하는 호기로 삼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직불금 원죄론’과 ‘참여정부 책임론’을 부각시켜 금융위기 등 총체적 수세 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실세들을 겨냥한 전 방위적 공세를 펼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은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구사하면서 참여정부 심장부를 강하게 압박해 왔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표적·보복’ 사정 논란만 증폭시켰을 뿐 ‘대어’ 사냥에는 실패해 사정당국의 자존심에 적잖은 상처만 남긴 셈이다. 따라서 여권은 이번 직불금 국조를 통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동시에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정을 철저히 밝혀내 정국 대반전을 모색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여권은 비록 직불금 사태가 현 정부에서 불거지긴 했지만 여러 정황상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해 청와대의 지시로 쌀 직불금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실시된 바 있고 명단 비공개 결정 및 명단 삭제 과정에 참여정부 핵심부의 개입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권은 특히 한미 FTA 비준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직불금 사태의 책임을 어떻게든 참여정부에 전가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직불금 사태로 들끓고 있는 민심을 고려할 때 ‘현 정부 책임론’ 딱지를 떼지 못할 경우 FTA 비준안 처리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권이 이번 국조 과정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 여야는 쌀 직불금 국정조사에 올인할 기세다. 홍준표 원내대표(왼쪽)와 정세균 대표. | ||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도 “정부와 사정기관이 직불금을 부당하게 수령한 명단에 구 정권 고위인사 및 그 친인척들이 포함됐는지 색출하는 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구 정권 거물급들의 실명이 구체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민주당은 현 정부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강·부·자’ 정권의 도덕적 해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을 압박하는 동시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10·29 재·보선에서 예상치 못한 참패를 당한 만큼 당력을 총동원한 ‘올인’ 전략으로 야성과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국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당내 진상조사위가 이미 발족된 상태라 수령자 명단이 확보되는 대로 시·도당 등 전국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스크린 작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또 직불금 사태를 부당 수령자들의 ‘부동산 투기’와 ‘양도세 탈세’ 문제 등으로 전선을 확대해 현 정부의 실정 및 고위 공직자들의 일그러진 도덕성을 부각시키는 데 공세의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부당 수령액 전액 환수와 책임자 처벌, 제도 개선 문제도 적극적으로 다뤄 대안 야당의 입지도 구축하기로 했다.
10월 29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직불금을 보고받은 사실이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 현 정부가 ‘참여정부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국조 활동이 본격화되면 직불금 사태의 본질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처럼 직불금 국조를 앞두고 여야가 치열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이번 국조가 진실 규명과 제도 개선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전·현 정권 간의 꼴사나운 정치 공방전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여야는 증인 채택 문제나 수령자 명단 공개 등 민감한 사안을 국조 활동 개시 이후에 결정하기로 한 상태여서 초반부터 지루한 힘겨루기와 정쟁으로 파행에 파행을 거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증인 채택 문제는 국조 개시 전부터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 이호철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 등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민주당은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과 직불금을 수령한 김성회 김학용 한나라당 의원 등 현 여권 인사들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 문제는 국조 풍향을 가늠할 수 있는 최대 화약고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감사원 명단 은폐 의혹과 참여정부 청와대의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 대통령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맞불을 놓고 있고, 노 전 대통령도 “국회에서 부르면 출석할 수도 있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초강수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차츰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되고 있어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승부사인 노 전 대통령이 ‘출석’ 카드를 강행할 경우 이번 국조는 전·현 정권 간 파워게임으로 치달으면서 극심한 정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불법 수령자 명단 공개 여부도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커 힘겨운 줄다리기가 예상되고 있다. 여야는 명단 공개 기준은 특위에서 결정하고 정치인·고위공직자·공기업 임원·언론인·고소득 전문직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 명단을 우선 공개키로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민주당은 불법 수령 의혹자 명단을 전부 공개하자는 입장인 데 반해 한나라당은 ‘마녀사냥’식 국조를 경계하며 ‘전부 공개’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야권이 불법 수령자 의혹 명단을 확보해 이를 공개할 경우 직불금 사태가 정치권과 공직사회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전돼 온 나라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태풍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