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 ||
일명 ‘게토레이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제임스 키언(31). 아내인 줄리 키언(31)을 독살했다는 혐의로 지난 연말 기소되었던 그는 결국 법정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으며, 현재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줄리의 가족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망 직전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행동들로 미루어 보건대 분명히 그가 아내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게토레이 음료와 이번 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사건이 발생했던 무렵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2004년 여름. 줄리는 몇 달 동안 계속되는 심한 구토 증상으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 발음도 샜고, 머리도 어지러웠지만 별다른 원인은 없었다. 더욱 답답한 건 병원에 다녀 봤지만 의사들 역시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끝나갈 무렵, 줄리의 상태는 호전되는 듯 보였다. 물론 남편인 제임스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전부였지만 그녀의 친구와 가족들은 멀리 사는 그녀의 안부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 그녀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한 절친한 친구에게 보낸 9월4일자 이메일에서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만난 걸 정말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일도 열심히 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또 내 병간호도 극진히 해준다”면서 남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일 후, 줄리는 또 다시 복통을 호소하면서 병원을 찾았다. 당시 그녀를 검진했던 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불과 8~10시간 전에 부동액의 원료인 에틸렌 글리콜을 잔뜩 마신 상태였던 것이다. 마신 양은 치사량이었으며, 심각한 상태였던 그녀는 어떻게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그녀가 어떻게 해서 부동액을 마셨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별다른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가장 먼저 남편인 제임스를 의심했다. 그녀가 독살되었다고 확신한 가족들은 즉각 수사를 의뢰했으며, 마침내 사건이 발생한 지 14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제임스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했다.
▲ 남편 제임스 키언(왼쪽)과 숨진 아내 줄리. 남편은 독살 혐의로 법정에 섰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 ||
게다가 장례식 직후 그가 친구에게 몰래 보험금에 대해 귀띔한 사실도 밝혀졌다. 갑자기 떨어진 돈벼락 때문에 한층 들떠 있었던 그는 “보험금을 타면 제일 먼저 BMW Z4 오픈카를 살 거다. 그리고 고향인 미주리주로 돌아가서 새로 집을 지을 작정이다”고 자랑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애처가로 소문이 나 있었던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갑자기 돌변했다. 한 친구에게 “언제까지 결혼반지를 끼고 있어야 될까”라는 이상한 질문을 했는가 하면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새로 여자를 사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재미 삼아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아내에 대한 추모나 애도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새 애인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유가족의 주장대로 독살이 사실이라면 과연 그는 언제부터 범행을 계획했고 또 언제부터 실행에 옮겼던 걸까. 추측하건대 제임스의 범행은 지난 2003년 말 무렵부터 천천히 시작된 듯하다. 당시 캔자스시티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던 제임스는 어느날 갑자기 아내에게 보스턴으로 이사 갈 것을 제안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고 말한 그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서 아내를 설득했다.
간호사였던 줄리는 남편의 뜻대로 2004년 1월 매사추세츠로 이사를 갔으며, 그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아내에게 말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아니라 하버드대의 공개 강좌를 듣는 것이 전부였으며, 이마저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간 걸까. 수사관은 그가 일부러 가족들의 의심이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이사를 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그녀가 메스꺼움과 위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도 이사를 간 직후부터였다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그가 게토레이 음료를 사용해서 아내를 천천히 독살했다는 주장은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생전에 그녀의 집을 방문했던 가족들은 냉장고 안을 보고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잘 마시지도 않던 게토레이 음료가 한 박스나 들어 있었던 것. 또한 줄리와 통화하던 한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제임스가 “줄리, 게토레이 마실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또한 누군가를 독살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음료는 없다는 것이 수사관의 설명이다. 음료의 단맛이 에틸렌 글리콜의 달콤한 맛을 감추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
하지만 갖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그는 무혐의로 석방됐다. 그가 과연 게토레이 음료를 사용해 아내를 독살했는지, 아니면 그녀가 단지 억세게 운이 나빴던 것인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가족들은 애간장만 태운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