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12월 31일 ‘이노키 봄바이에’에 출전한 표도르의 경기 장면. | ||
방송사와 격투기, 그리고 폭력단의 관계를 폭로한 주인공은 격투기 이벤트 회사 ‘케이컨피던스’의 가와마타 세이야 사장. 그는 니혼TV가 중계하는 격투기 대회에 유명 선수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폭력단을 끌어들였다가 나중에 되레 협박받았다고 한다. 그 유명 선수는 현재 세계 종합격투기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였다. 니혼TV는 폭력단의 개입과 가와마타 사장의 신변에 위험이 닥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했으며, 나중에 문제가 되자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격투기계와 폭력단의 연루설은 방송가에 떠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그 관계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단은 TV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에서 비롯됐다.
NHK의 <홍백가합전>은 매년 12월 31일 방송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연말특집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3년 일본의 민영 방송 3사는 <홍백가합전>과 같은 시간대에 일제히 격투기 이벤트를 내보냈다. TBS는 ‘K-1 다이너마이트’ 후지TV는 ‘프라이드 남제’ 니혼TV는 ‘이노키 봄바이에’를 중계했다. 방송사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격투기라는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혈투’를 벌인 것이다. 출전시킬 수 있는 스타 선수들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수 섭외과정에서 충돌과 알력이 생기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뒤늦게 격투기 이벤트에 뛰어든 니혼TV는 가와마타 사장과 계약을 맺고 ‘이노키 봄바이에’의 방영권을 따낸다. 사실 그는 이미 후지TV와 교섭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지만 결국 니혼TV가 제시한 계약조건을 받아들였다.
당시 가와마타 사장은 ‘이노키 봄바이에’에 출전시키려던 미르코 크로캅이 갑자기 불참을 통보하는 바람에 급하게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섭외했다. 표도르는 같은 날 대회를 치르는 ‘프라이드’의 간판스타. 그는 섭외과정에서 폭력단이 개입될 수 있음을 직감했고, 니혼TV 프로듀서에게 이를 경고했다. 그런데 이 프로듀서는 “더 강한 폭력단에게 부탁해서라도 표도르를 출장시켜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 가와마타 사장(왼쪽)과 이노키. | ||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사카모토는 태도가 돌변하더니 돈을 요구하며 가와마타 사장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벤트 다음날인 2004년 1월 1일 사카모토는 가와마타 사장한테 “표도르의 출전은 우리 덕분이니 그 대가로 2억 엔(약 17억 원)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 ‘이노키 봄바이에’의 시청률이 저조했던 탓에 가와마타는 니혼TV로부터 계약파기를 통고당하고 약속했던 금액도 일부만 지불받았다.
이래저래 궁지에 몰리게 된 가와마타는 2004년 5월 니혼TV를 제소하고 해외로 피신했다. 재판을 위해 올해 귀국한 가와마타는 사카모토를 ‘공갈미수’로 경찰에 고소했다. 지난 2월에 사카모토가 체포되면서 격투기계와 폭력단의 은밀한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이와 관련, 각종 격투 이벤트를 중계하는 방송사들도 비난받고 있다. 이러한 커넥션을 알고도 묵인한 듯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니혼TV는 “폭력단이 개입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가와마타 사장이 폭력단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일을 부탁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발뺌하고 있다. 프라이드 경기를 중계한 후지TV는 “DSE에 모든 일을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 섭외 등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코멘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와마타는 경찰 조사에서 후지TV도 폭력단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후지TV 프로듀서는 (폭력단이 연루된)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DSE 사카키바라 사장이 잘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 없다고 말했다.”
다른 격투이벤트 회사 사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본래 사카모토의 야마구치 조직은 가와마타 사장의 뒤를 줄곧 봐줬다. 그런데 ‘이노키 봄바이에’이 끝나자 같은 편이었던 사카모토가 갑자기 돈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마찬가지로 DSE도 선수 섭외를 위해 폭력단에 상당한 액수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TV 방송사는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만 이벤트 회사가 모든 궂은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일이 커지자 가와마타 사장이나 DSE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TV방송사의 무책임함을 비난하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