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고위직들의 집을 턴 조세형 김강룡과 절도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문일섭 전 국방부 차관(왼쪽부터). | ||
도난 물품과 내용, 수사의뢰 철회 여부 등을 놓고 강 의원 측과 경찰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 과거 절도사건이 발생했을 때 ‘쉬쉬’했던 피해자들의 사례를 연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고위공직자나 부유층을 상대로 신출귀몰한 절도행각을 벌였던 이른바 ‘대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절도범은 많이 털었다고 주장한 반면 피해자들은 사건을 축소·은폐 하려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간 논란을 불렀던 고관대작집 절도사건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봤다.
고관대작들을 상대로 신출귀몰한 절도행각을 벌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원조’ 대도는 조세형 씨다. 조 씨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인 70~80년대 전직 장관, 국회의원, 재벌회장 등 고관대작의 집만을 골라 온갖 귀금속과 금품을 훔쳤다. 조 씨는 사채시장 큰손으로 통했던 장영자 씨의 집도 털었는데 훔친 ‘금은보화’가 2개의 자루를 가득 채우고 남았던 것으로 밝혀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반 서민들은 ‘물방울다이아몬드’의 존재를 조 씨의 절도 행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조 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훔친 귀금속의 피해 액수가 절반 이상 축소됐다고 주장해 고관대작 피해자들의 축소·은폐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제2의 조세형’으로 불렸던 ‘김강룡 절도사건’은 절도범과 피해자인 고관대작들이 절도 물품을 놓고 벌였던 진실게임의 결정판이었다. 99년 3월 부유층 아파트만을 골라 10억 원대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김강룡 씨는 당시 김성훈 농림부 장관, 유종근 전북도지사, 배경환 안양경찰서장 등 고위직 인사들 집에서 억대의 금품을 훔쳤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 씨는 유 지사의 서울 숙소에서 현금 3200만 원, 미화 12만 달러, 진주반지 등 1억 9000만 원 상당을 훔쳤고, 김 장관 자택에서는 패물과 고서화 2점 등 고액의 금품을 털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다른 현직 장관 2명의 집에서 각각 1㎏짜리 금괴 12개와 물방울다이아몬드를 훔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유 지사는 현금과 귀금속 도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미화는 보관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김 장관은 피해 그림이 고가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해 5월 검찰은 절도범 김 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유 지사의 미화 도난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리하고 현직 장관 금품 도난건 등도 ‘증거 없음’으로 결론 냈다.
2001년 3월 발생한 문일섭 전 국방부 차관집 절도 사건도 갖가지 의혹을 증폭시켰다.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던 문 씨 집에서 운전병인 이 아무개 상병이 미화 수만 달러와 현금 및 수표 등 3700여만 원을 훔쳐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사건 발생 후 문 씨와 경찰은 도난 물품 내용 및 돈의 출처를 놓고 엇갈린 주장을 펼쳐 의혹을 부추겼고 급기야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같은 해 4월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문 씨 절도 사건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부각시키면서 국방부의 예산 편성 문제점을 질타했다. 박세환 의원은 “문 전 차관은 현 정부 출범 후 방위력 개선사업을 총지휘한 실세 중의 실세”라며 “세간엔 (도난당한) 거액의 출처 및 사용처와 관련해 방위력 개선사업과의 연관설, 개각 및 차관 인사를 앞두고 인사청탁을 위한 현금가방 준비설 등이 나돌고 있다”고 압박했다.
문 씨가 믿고 아파트 열쇠까지 맡긴 운전병의 절도 행각으로 인해 문 씨는 검찰 수사를 받고 불명예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여권 역시 적잖은 정치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현 여권 핵심 실세로 통하는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도 2002년 9월 발생한 자택 도난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도난당한 현금 1000여만 원은 작은딸이 잡지사 기자로 일하며 모아둔 돈으로 언니가 시집갈 때 보태라고 아내에게 맡겨 보관해둔 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 측은 경찰에 접수한 최초 피해액을 ‘현금 3000만 원’으로 신고했다가 나중에 1000만 원으로 정정해 논란을 야기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 전 의원이 ‘김대업 정치공작진상조사단장’을 맡아 대여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 미뤄 단순한 도난 사건이 아닌 것 같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도 당시 “금고에 있던 돈과 함께 당의 주요 문건도 도둑맞았다”고 밝혀 ‘정치적 절도’ 의혹을 감추지 않았다.
현역 국회의원 승용차가 대로변에서 도난을 당하는 황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2003년 10월 조재환 민주당 의원은 당 관계자들과 식사하려고 서울 시내 대로변에 위치한 음식점에 들렀다가 ‘국회’ 마크가 붙어 있는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도난당했다. 차 안에는 국정 서류와 현금, 수표 등 650여만 원의 금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