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기계에 의해 통제되는 것 같다. 전자감응장치는 교도관이나 재소자 그리고 변호사를 구별하지 않는다. 전자출입증이 없으면 그 순간 벽과 철창 사이에 갇혀버릴 것 같다. 구치소 내부는 마치 마술 상자 같은 느낌이었다. 상자안에 다시 작은 상자가 들어있고 그 안에 다시 더 작은 상자가 있다.
구치소 내부는 전자출입증을 대면 철문이 열리고 혼자서 회랑 같은 긴 복도를 걷다가 다시 철문 앞에서 전자출입증을 대면 스르륵 철창이 옆으로 열렸다. 미로 같은 그 안에서 깊은 내부로 들어가는 철창 앞에 서서 방향을 잃고 망설일 때 옆에 지나가는 교도관을 보고 물었다.
“여기 밖으로 나가는 방향이 어디죠?”
“저희도 처음 근무해서 이 안을 잘 모릅니다.”
전자적 폐쇄장치에 인간들이 통제당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간신히 변호사 접견실에서 구속되어 있는 대학동창을 만났다. 구치소에 수감됐던 모든 사람들이 새로 지은 구치소로 옮겨졌다.
“새로 만든 구치소 방이 어때?”
“같은 방에 네 명이 있는데 그럭저럭 지낼 만 해.”
“소설가 황석영의 감옥생활을 그린 글을 보면 반 수세식 화장실 변기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와 페트병으로 평소변기구멍을 꽉 막아둔다고 하는데 어때?”
“수세식 화장실이야. 그리고 넓어. 좋아졌어.”
“예전에는 밥을 먹고 식기 판을 화장실에서 씻었는데 지금은 어때? 강금실 법무장관 때 교도소 감방마다 싱크대 한토막씩 넣어줬다고 하던데 말이야.”
“맞아 싱크대가 있어서 거기서 식기를 씻어.”
“감방에서 창을 통해 하늘은 보여?”
“가장자리에 있는 건물 위에서는 하늘이나 흘러가는 구름이 보이겠지만 중심에 있는 우리 방에서는 안보여. 작은 창이지만 멀리 하늘 한 조각이나 야산자락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배식되는 밥을 먹고 성경을 보지. 매일 구약 네 장 신약 네장 정도 읽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 며칠 전 법정에 가는 날 아침에 구약을 펼쳤더니 ‘보라 이제 구원이 임했도다’라는 말씀이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좋은 징조다 라고 생각하고 법정에 갔었어.
그런데 검사가 나한테 징역 11년을 구형을 하더라구. 저녁에 담당 교도관이 나를 찾더니 구형이 너무 세게 나왔다는 거야. 그 다음날 다시 성경을 봤어. 그랬더니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튀어나오는 거야. 석방이 되는 게 구원이 아니라 내 영혼이 새로 태어나는 게 구원인 가봐.”
“이 안에서 집필은 허가가 되는 거야?”
내가 물었다. 소설가 황석영의 감옥체험기를 보면 그 안에서 글만 쓸 수 있다면 작가에게는 감옥이 집필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집필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볼펜으로 편지를 쓸 수 있어도 저녁이면 볼펜을 회수해서 교도관의 책상서랍에 보관했다고 한다. 국회의원과 장관이 된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도 내게 감옥 안에서 틈틈이 교도관 모르게 책의 여백에 시를 쓰던 얘기를 했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나 산다.
“이제는 집필을 할 수 있어. 쓴 글들도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말이야.”
친구의 대답이었다.
“그래 감옥생활도 어차피 인생의 한 부분인데 이왕이면 그 안에서지만 잘 살아야 겠더라는 글을 쓴 사람도 있더라. 이왕 징역 살 거면 각오하고 잘 살기 바란다. 거기도 사람이 사는 사회 아니겠니.”
“그럴 생각이야.”
선고를 앞둔 친구가 말했다. 변호사 생활 삼십년에 틈틈이 감옥풍경을 세상에 전했다. 청송교도소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흑의 방부터 시작해서 짐승우리 같은 징벌방을 폭로하기도 했었다. 그건 감옥을 드나들며 재소자들과 만나는 변호사의 인권옹호를 위한 부수적인 임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런 작은 글들이 그 안에 희미한 빛이라도 비치면서 조금씩 담장안의 세상을 변해가게 하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