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여자배구 이미지(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와 ‘몰카 사건’을 보도한 <주간포스트> 지면. | ||
이는 현재 일본에서 은밀히 유통되고 있는 여자배구 선수들의 ‘화장실 몰래카메라’ 영상의 일부다. 지난해 여름에도 여자배구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목욕을 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어 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 만큼, 일본배구협회는 이번 사건에 곤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배구의 최고 리그인 V리그에 속한 여자 선수 57명의 ‘화장실 몰카’ 동영상. 일본배구협회가 이 네 장짜리 불법 DVD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DVD 판매업자가 고객에게 보낸 샘플 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된 것이 계기였다.
사태의 심각성에 놀란 배구협회는 즉시 협회 홈페이지에 “몰카를 찍은 사람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함과 동시에 변호사 및 경찰서와 상담하여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는 경고문을 게재했다. 이 경고문이 효과가 있었던지 판매업자는 곧바로 판매용 홈페이지를 폐쇄했고, DVD도 더 이상 유포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배구협회의 경고문이 오히려 일부 마니아들의 호기심에 불을 지른 것.
배구협회의 발빠른 대응이 역설적으로 몰카 속 주인공이 진짜 V리그 선수들임을 입증시킨 셈. 이에 뒤늦게 DVD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판매업자들은 “지난해 말까지 극히 일부 고객들에게만 6만 엔(약 51만 원)에 판매를 했는데 그 복사본이 올해 4월부터 유통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종류의 DVD는 한번 유통되기 시작되면 이를 복사해 파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가격이 점점 내려간다. 최근에는 가격이 무려 1만 엔(약 8500원) 정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배구협회의 의도와는 달리 일이 점점 커진 셈이다.
총 네 장으로 구성된 문제의 DVD는 선명한 화질로 화장실에 들어온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첫 번째 DVD는 46분짜리로 34명이 나오고, 두 번째는 48분에 35명, 세 번째는 40분에 31명, 네 번째는 42분에 38명으로 모두 138명의 모습이 찍혀 있다. 평범한 차림을 한 여성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은 유니폼이나 운동복을 입은 여성들이다. 그 중 유니폼에 쓰인 팀 이름 등을 통해 V리그의 선수라고 확실히 알 수 있는 여성은 모두 57명. V리그 전체 열 팀 중 아홉 팀이나 등장한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이 몰카가 지난해 7~8월의 서머리그에 경기장의 화장실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장실 안에서 용변을 보는 것 외에도 땀을 닦거나 옷을 갈아입는 선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몰카 한 장면을 들여다 보자.
흰 티셔츠에 검은 운동복 바지를 입은 여성이 들어와서 변기에 앉아 생리용품을 휴지로 싸서 휴지통에 버린다. 그 순간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여성의 상반신 전체가 나오던 화면이 허리 아랫부분으로 이동한다. 휴지통에 교묘히 숨겨져 있던 카메라를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뀐 카메라의 각도가 다음 화면에선 ‘제대로’ 수정됐다. 범인 중 한 명이 근처에서 무선 카메라의 영상을 수신기로 체크하고 또 다른 한 명은 화장실에서 각도를 수정했다는 얘기. 즉 여성 협력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경찰은 또한 이 여성이 다른 화장실을 ‘점거’함으로써 피해 여성들이 카메라가 설치된 화장실로 들어가도록 유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인 것이다.
이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누굴까. 한 몰카 마니아는 “이번 DVD는 T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T는 지금까지 실업단이나 여고팀 등의 배구대회 화장실 몰카를 비디오나 DVD로 만들어 판매했다고 들었다. 변기 근처의 휴지통에 소형 무선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 그의 수법”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나 아직 T의 정체는 확실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 이후 배구협회는 각 팀에 경기장이나 합숙소를 미리 철저하게 체크하고, 선수와 일반인이 다른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범인을 처벌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범인을 색출하는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소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나서야 하는데 이미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선수들에게 공개적으로 조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몰카’ 처벌(30일 미만의 구류나 1만 엔(약 8500원) 미만의 과태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