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판정승한 뒤 스모 요코즈나 아사쇼류와 함께 감격해 하는 가메다 고키. 로이터/뉴시스 | ||
8월 2일 열린 WBA 세계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일본의 가메다 고키가 베네수엘라의 후안 란다에타(27)를 판정으로 물리쳤다. TV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달려가 무동을 타는 고키의 모습이 비쳤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나가는 동안 시합을 중계한 방송국 TBS에는 5만 통이 넘는 항의전화와 메일이 쏟아졌다. “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불만이었다.
1라운드부터 다운을 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12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공격 몇 번 못한 채 버티기만 한 고키가 2 대 1이라는 판정승으로 승리를 했으니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펀치수를 비교해 봐도 고키 454타, 란다에타 1046타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합 후 인터넷 조사에서 일본 네티즌의 94%가 “가메다 고키의 패배”라고 단언할 정도로 일방적인 시합이었다.
이 소동의 장본인인 가메다 고키는 인기를 잃어가던 일본의 권투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다. 고키의 두 동생도 권투선수다. 일본에서 이들은 ‘가메다 삼형제’로 통한다. 또한 이들은 거친 말투와 나쁜 매너로도 유명하다.
특히 고키는 “경어는 존경하는 사람에게만 쓰는 것”이라고 공언하며 공석에서도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반말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또한 체중 감량 중인 시합 상대가 보는 앞에서 햄버거를 먹는 등의 도발적인 퍼포먼스를 해 화제를 모았다.
삼형제의 아버지이자 트레이너인 가메다 시로의 예의 없는 태도도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아사히 TV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만화가인 야쿠 미쓰루와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설전을 벌였던 것. 방송에서 야쿠 미쓰루가 가네다 부자의 거친 말버릇과 태도를 대놓고 문제 삼자 이에 흥분한 가네다 시로가 강하게 맞받아치다가 끝내 “나중에 밖에서 보자”는 ‘뒷골목식 협박’으로 말을 맺었다. ‘부전자전’은 이들 부자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닐는지.
▲ 이 시합의 판정시비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일본 주간지들. | ||
한 권투 관계자는 “이번 시합의 흥행권을 교에이가 WBA로부터 사들이면서 결과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심판 선택과 같은 모든 결정권이 보수를 지불하는 쪽인 교에이로 넘어가면서 고키는 처음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란다에타 쪽도 ‘이 시합은 KO가 아니면 승산이 없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압도적인 시합을 펼치고도 승리를 빼앗긴 란다에타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고키와는 대조적으로 평온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2000만 엔(약 1억 66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개런티를 받고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지만 란다에타 본인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린 심판들도 비난받고 있다. 이번 시합에는 각각 파나마와 프랑스 그리고 한국의 심판이 있었는데, 파나마 심판을 제외한 두 명이 고키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에 일부에서는 ‘심판매수설’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교에이의 선수들은 과거에도 몇 번이나 이번과 비슷한 판정 의혹에 휘말린 바 있다. 1982년에는 상대방 선수에게 설사약을 넣은 오렌지를 보낸 것이 발각돼 당시 교에이의 회장이었던 가네다이라 씨가 프로모터 자격을 박탈당했다. 당시 가네다이라 회장은 “이런 일은 복싱계에서는 상식”이라는 발언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현재 회장은 그의 아들로 아버지 못지 않은 야심가로 유명하다.
교에이의 한 관계자는 “매번 선수만 바뀔 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회장이 돈벌이를 위해 선수들을 희생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할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합을 비롯하여 교에이 선수들이 출전해서 판정 의혹이 제기된 시합은 모두 TBS에서 방송됐다. TBS는 ‘가메다 삼형제’가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밀착 취재하며 그들을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이번 시합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합은 저녁 9시에 시작이지만 7시 30분부터 가메다 가족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등 ‘가메다 띄우기’는 끝이 없었다. TBS는 오는 8월 20일에도 차남인 가메다 다이키의 시합을 중계할 예정이다.
버릇 없는 스타선수, 승리에 눈먼 프로모터, 시청률에 목맨 방송사가 벌인 ‘합작 사기의혹극’의 여파가 한동안 일본 스포츠계에 상처로 남을 듯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